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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좋은 글

[스크랩] 우동한그릇 2

by skyrider 2008. 8. 15.
** 우동 한그릇 (2) **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여느해보다 더욱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긴 참이어서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벽에 붙어 있는

메뉴표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여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반이 되어, 가게 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모자 세 사람이 들어 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 우동...... 이인분인데도......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라며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인분!"

그걸 받아,

"우동 이인분!"이라고 답한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집어 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도 활기가 있음을 느껴졌다.

카운터 안에서, 무심코 눈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짓는 여주인과,

예의 무뚝뚝한 채로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아,.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만큼을,

매월 5만엔씩 계속 지급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몸도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 약속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넷!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지. 형아는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한

덕택에 회사로부터 특별 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나도 신문 배달, 계속할래요. 쥰이하고 나,엄마한테

숨기고 있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로부터 쥰이의 수업 참관을 하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때 쥰은 이미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이 작문을 쥰이 낭독하게 되었데요.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를 해서라도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그걸 감췄어요.

그걸 쥰의 친구들한테 듣고,내가 참관일에 갔었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드릴께요.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실은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것,

내가 조간 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 전부 씌여 있었어요.

그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것....

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에 웅크린 두 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작문 읽기를 끝마쳤을 때 선생님이, 쥰의 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 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형아는 어떻게 했지?"

"갑자기 요청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동생은 매일 저녁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동생이 <우동 한그릇>이라고 일기 시작했을때......

나는 처음엔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을, 주인과 여주인은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전송했다.


- 낼은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출처 : 언덕위에 바람
글쓴이 : 흙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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