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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지난 4월10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그리고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서프라이즈>의 신상철 대표이사를 고소했다. 이종걸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정희 의원은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조선일보>의 특정 임원이 이른바 ‘고 장자연씨 사건’과 관련된 것처럼 공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였다.
<한겨레21>은 두 의원을 만나 이른바 ‘○○일보의 특정 임원’을 밝히게 된 동기와 법적인 판단, 그리고 발언 이후의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4월16일 국회 이종걸 의원실에서 진행됐다. 두 의원은 이종걸 의원의 대정부 질문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이들은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할 일을 했다”고 했다.
=이종걸: 제가 유명한 페미니스트 변호사였습니다. (웃음) 성접대라든지 해서, 결국 자살까지 간 건 사실상 살인입니다. (장자연씨는) 그런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한 겁니다. 그런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사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런 종류의 사건에) 저명인, 지도층, 유명한 인물이 관련됐다면 여태까지는 (이름 공개까지) 사흘이 안 걸렸습니다. 처음에 (신문에) 영어 이니셜이 나오고, 그 다음날에는 김아무개씨라고 나오고, 사흘째에는 실명이 탁 나와요. 장자연씨 사건의 경우에는 애초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하는 것이 이상한 거예요. 처음에는 ‘조사한다’ ‘혐의를 밝힌다’고 했다가 점차 수사가 줄어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죠. 거기 보니까 거대 언론사의 특정 임원이 관련돼 있다고 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대정부 질문을 앞두고 정보라인을 가동해서 취재원에게 접근하게 됐고, 이번 대정부 질문에선 (공개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정희 의원께는 사람들이 ‘법적 판단과 관련 없이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말을 하던데요. =이정희: (이번 사건은) 굉장히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잖아요. 특히 젊은 여성이 이렇게 된 거고. 저는 ‘이 사람이 이 문서를 피로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대로 수사되고, 그동안 비일비재했던 문제들을 툭 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수사는 너무 지지부진했죠. 이종걸 의원의 대정부 질문과 이후 며칠간의 상황이 제가 발언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죠. 방송에서 물어오기 시작했죠. 이종걸 의원께서는 대정부 질의에서 말씀하셨고, <조선일보>는 그것이 면책특권 범위 안에 있지 않다는데, 그에 대한 제 판단은 뭐냐고 묻는. 그런데 <○○일보>라고만 이야기해놓고 ‘그건 명예훼손입니다’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토론을 하려면 도대체 뭐라고 했는지가 분명해져야 하고. 그 뒤에 명예훼손인지 아닌지 이야기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또 하나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어요. 이미 (이종걸 의원이) 말씀은 하셨고, (발언 내용은) 국회 방송에서 다 볼 수 있고, (국회) 사이트에서 볼 수 있고, 아는 사람은 다 알고. 근데 입을 다문단 말이죠. 입을 다무는 것이 ‘명예훼손이냐 아니냐’는 지점보다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이 칼럼에서 조선일보사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썼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정희: 저희가 <중앙일보> 사건을 경험하면서 본 것이 있죠. ‘회장님 힘내세요’라는. 만약 회사의 공식 업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조직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법인의 명예일 텐데, 이런 건 순전히 회사 업무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개인 일을 회사가 끌고 들어오지요? 왜 회사가 나서 고소하지요? 논리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최근 들어 ‘<○○일보>의 특정 임원’이라는 표현이 일종의 유행어가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알 권리와 명예훼손의 긴장관계가 쟁점인데요. 두 의원 모두 변호사인 만큼 이에 대해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종걸: 수사가 이뤄지는 피의자에 대해 혐의가 확정되기 전에 외부에 공표되는 것은 법에도 금지되고 있지요. 그런데 이것만큼 100% 무시되는 법 조항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전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번 건은 경찰이 조사를 거부한, 조사를 두려워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리스트에 거론되는 이들이) 전형적인 의미의 피의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굴절되는 과정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누구냐, 이것은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고, 알려줘야 할 대상이라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사실 적시 행위가 명예훼손이 된다는 건 우리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공익의 목적인 경우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진실성 증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성에 대해 믿을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 위법성이 없다고 봅니다. 또한 미국 법원에서 정리된 얘기긴 하지만, 공적 인물, 즉 공인의 경우엔 명예훼손 주체가 되기 힘들다고 보는 겁니다. 지금 <○○일보> 특정 임원은 공인이죠. 공인인 경우엔 명예훼손을 주장할 실익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겁니다. 게다가 국회에서의 발언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국회 발언의 경우는, 직무상 발언은 국회 밖에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명백한 헌법상 규정이 있습니다.
-리스트에 나와 있는 이름에 대해서는 강희락 경찰청장도 국회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숨진 장자연씨가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었을 경우, 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종걸: 작성된 글 자체의 명확성과 분명히 지시하고 있는 내용의 충족성 등에 비춰 공개 정도가 정해져야 할 것입니다. 공적 인물인 경우 일반 사람들의 알 권리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명예훼손이라는 사적인 영역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건 자기가 공인이 된 대가죠. 그런 국면에서는 공인의 이름이 그런 글에 적혀 있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못할 정도의 명예훼손 주체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정희: 언론사가 내는 소송에 대해 법원은 이런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아요. ‘(언론사는) 스스로 언론에 접근할 수 있고 해명할 수 있는데, 개인이 이용하는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제도를 언론이 이용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느냐.’ 이런 얘기를 법원에서 굉장히 많이 하더군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엔 다른 이들도 많이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아직 이름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종걸: 그 특정 임원 때문에 무임승차한 것 같습니다. 특정 임원만 그 명단에 없었더라면, 좀 관심을 받을 만한 공인이었다면 (앞에서 말한 법칙대로) 사흘째 (실명이) 나왔을 겁니다. 맨 처음 수사할 때 분당경찰서 형사과장이 의기양양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다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특정 임원이 있기 때문에 전체가 안 나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주필은 야당 의원들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확인도 안 된, 근거 없는 말들을 뱉어낸다고 주장합니다. =이정희: 면책특권은 숨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책무에 더해서 자연스럽게 헌법이 함께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저는 그나마 면책특권에도 숨지 못했기 때문에. (웃음) =이종걸: 비겁한 제가 말씀드리면 (모두 웃음) 면책특권은 숨으라고 있는 권리입니다. 숨으라고 하는 권리에 숨었는데, 숨었다고 자꾸 얘기하면 더 창피하죠. (웃음) -면책특권은 왕권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지키고, 독재 시절에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의원들이 이런 면책특권 뒤에 숨어야 한다면 현재는 언론 독재 상황인 겁니까. =이종걸: 어떤 사람들은 이정희 의원보다는 제가 좀더 안전하다고 하는데, 이정희 의원이 잡혀 들어가면 저도 같이 잡혀 들어가겠다고 했는데요. (짧은 웃음 뒤 굳은 표정으로) 실제 느끼는 공포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여러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의 말이 있어요. ‘앞으로 처신 잘하라.’ ‘꼬리 잡히면 안 된다.’ 이렇게 저에게 충고해주는 말씀을 들어보면 무던히 공포스럽습니다. -이정희 의원도 그런 공포감을 느끼시나요. =이정희: 저도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마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라고. 그것이 한편으론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저도 역시 <○○일보>라고 얘기하는 게 옳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깨를 펴며) 제가 마음이 부끄럽지만 않으면 겪어가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저곳에서 성원도 만만찮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정희: 제 블로그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글을 남겨주시고 있어요. 그냥 ‘힘내세요’ 이런 차원의 격려가 아니라 많은 감정이 실려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면서도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 하는 아련한 감정이 묻어나는 글들이라 과분합니다. 사실 말 한마디 한 건데,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은 분들이 과분한 감정을 보여주셔서. -말 한마디가 아니라 용기였죠. =이정희: 제가 느끼기엔 국회의원한테 기대하시는 게 큰 게 아니구나, 속 시원한 말 한마디를 요구하시는구나, 그럼 뭐 그렇게 거리낄 게 많다고 그거 하나 충족 못 시켜드리고 살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종걸: 제가 한 것도 단순하고 간단한 얘기였지만, 그런 고통을 감수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려주시는 거죠. 주변 사람들이 잘했다고 하니까 괴롭지는 않습니다. 저와 일생을 같이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정희: 오래지 않아 그런 여론이 다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는 1시간 남짓 만에 끝났다. 두 의원은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재보선 문제로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눈 뒤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두 사람의 악수는 길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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