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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글,뉴스

당분간 우린 이런 정치가는 만나기 힘들 듯,좀 더 일찍 대통령이 됐어야...

by skyrider 2009. 8. 28.

DJ에 경탄했던 세계적 지도자와 석학들

한겨레21 | 입력 2009.08.28 18:10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광주

 




[한겨레21] [2000. 12. 10 평화를 새기다]
바이든·시진핑 "존경하는 정치인"…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 울리히 벡, 앨빈 토플러 등 날카로운 질문에 놀라

2000. 12. 10 평화를 새기다

노르웨이 오슬로시청 중앙홀에서 노벨평화상을 받고,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역대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세계적인 인물이다.

8월19일 밤 9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인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최경환 비서관이 "잠시 브리핑할 것이 있다"며 임시 기자실을 들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은 오늘 저녁 전세계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친구들 500~600명에게 장례 일정에 대해 전자우편으로 알렸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등 정치권에 있는 분들과 교수님 등입니다."

'김대중의 친구들' 화려한 면면

'김대중의 친구들' 면면이 공개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해마다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와 지도자들과 신년 우편을 주고받아왔다. 올해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아키히토 일왕,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교황 베네딕토 16세,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 부부, 미국 하버드대의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 등에게서 연하장을 받았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새해 선물을 보냈다. 르완다 여성들이 만든 전통 공예품인 '평화의 바구니'(Peace Basket)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방한해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그 공예품은 르완다 부족 분쟁에서 살아남은 르완다 여성들이 생산한 공예품이다. 그것을 보고 당신의 민주주의를 위한 생애, 민족 화해 노력이 생각이 나서 보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만찬을 마치고 떠나는 김 전 대통령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식탁에서 일어나 휠체어에 오르는 그에게 "다리가 불편하신 것은 '명예의 상징'이다. 얼마 전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분도 20∼30년간 좁은 감옥 생활에서 다리 근육이 약해져서 크게 불편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을 지성인의 덕목으로 치는 영미계의 전통에서 비롯된 명예일 터이다.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이 때문에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를 말할 때 김 전 대통령을 첫손으로 꼽아왔다. 두 사람은 1983~84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에 첫 인연을 맺었다. 2001년 바이든 부통령이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김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 바이든 부통령이 "넥타이가 멋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럼 넥타이를 바꿔 맵시다"라며 넥타이를 풀어 건넸다. 김 전 대통령이 건넨 넥타이에는 오찬 때 스프가 흐른 얼룩이 있었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를 개의치 않고 중요한 행사 때 그대로 매고 나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매던 넥타이"라고 말하곤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바이든 부통령이 임명됐을 당시 DJ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바이든 부통령의 폭넓은 이해와 자신과의 인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그런 점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외교를 전담하면서 바이든 부통령이 보건복지 분야를 맡게 된 점은 조금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유럽에서도 그를 존경한다는 이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은 "친구를 넘어 인류애를 갖춘 인격자"라고 김 전 대통령을 평하곤 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람머트 독일 국회의장도 그 영향을 받은 이였다. 람머트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독일에서 당신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한국인)은 없다"고 거듭 말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환경장관 "저의 개인적 영웅"

지난해 9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개막식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중심에 있었다. 호콘 망누스 노르웨이 황태자는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그 자체를 살아오신 분"이라고 말했다. 에리크 손하임 환경개발부 장관은 "저의 개인적 영웅이다. 다른 나라에서 하지 못했던 평화에 대한 많은 일을 하셨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 교수도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middle wing)이며 대단히 인도주의적인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제적으로도 큰 뉴스가 됐다. < 뉴욕타임스 > 와 〈CNN〉 등 주요 언론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전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제적 비중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한국이 아니라 전세계가 큰 지도자를 잃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민주화운동 전력 때문만은 아니다. 통찰력과 지성에 대한 감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이들은 늘 '한 수 배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지난 4월 중국 방문을 동행한 정세현 전 장관의 말이다. "중국의 차세대 주석으로 첫손 꼽히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을 비롯해 중국 최고의 학문기관인 사회과학원의 교수들과 이야기할 때도 김 전 대통령이 중국의 역사 저변에 흐르는 개념을 지금의 국제 정세에 대입해 듣는 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입한 개념은 '천하태평'의 현대사적 의미였다고 한다. 딩시 대화의 일부다.

"여러분의 조상이 한나라 혹은 명나라, 송나라 시절이었을 때 중국 대륙이 천하였다. 당시의 최고 이상은 '천하태평'이었다. 이제는 지구를 하나의 천하로 보는 천하태평을 추구해야 할 때다. 중국이 먼저 동북아의 천하태평에 역할을 하고, 그 다음에 동아시아, 나아가 전세계의 천하태평을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양대 세력이 되었다. 미국과 중국이 잘 협력하면 세계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고, 그것이 잘 안 되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시진핑 부주석은 "각하의 높은 식견에 감사하고 귀중한 의견들을 신중히 검토하겠다. 앞으로도 귀한 의견 들려주시기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앉는 순간부터 "대학 초년 시절부터 존함을 익히 들었다. 도쿄 납치사건 이후로 사선을 넘나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건 정치인으로 존경해왔다"고 인사했다고 한다. 시 부주석은 한국으로 치면 72학번(1953년생)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셈이다. 실제로 시 부주석은 지난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 시절에도 김 전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초청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눴던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도 대화 중간중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당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포용정책부터 시작해 빈부 격차로 인한 지구촌의 남북 갈등, 기후변화 문제를 거쳐 중국 민주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벡 교수는 "분명한 분석(precise analysis), 설득력 있는(convincing) 주장에 놀랐다. 많은 정치가들을 만나보았으나 이렇게 명확한 비전을 가진 분은 만나지 못했다" "완전히 설득당했다" 등의 감탄을 연달았다. 위르겐 하버마스와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현대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교수다.

특히 김 대통령이 "중국에서도 부정부패, 빈부 격차는 자본주의 때문이니 이를 폐지하고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신좌파도 있지만, 이를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으로 보고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 감시 체제가 마련돼 오히려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신우파도 있다. 그들은 나아가 일당 지배가 아니라 복수당을 지향해야 하며 종국에는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중요한 것은 후진타오 주석도 이런 주장에 찬성했다고 한다"고 말하자 벡 교수는 "유럽에도 당신과 같은 비전을 가진 정치가가 있었으면 한다"며 말을 맺었다. 비슷한 시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미 당시 만난 드루 길핀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도 '감명'을 받은 인물로 통한다.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도 감명

파우스트 총장을 만난 김 전 대통령은 대화 막바지에 "총장께서 미국 역사를 전공하셨으니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질문은 이랬다. "링컨이 남북전쟁 후에 남부 사람을 처벌하는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겠느냐. 당시 미국은 결국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았을까?" 파우스트 총장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흥미로운 질문이다. 언제나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고 어려운 문제다. 링컨이 없었다면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웃으며 이 말을 되받아 "미국의 남북전쟁은 과거의 얘기지만 한국은 지금도 분단돼 있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링컨의 교훈을 배우고자 질문해봤다"고 배경까지 설명했다. 미국 남부 역사, 특히 남북전쟁을 전공한 파우스트 총장을 해당 분야의 질문으로 놀랜 것이다.

비슷한 일화는 지난 2007년 5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의 면담 때도 이어진다. 김 전 대통령은 "언젠가는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때가 올까. (역사학자) 토인비에 따르면 인간이 육체와 관련해서 의학 연구를 해온 것은 수천 년 전부터이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해온 것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프로이트나 융의 연구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극히 최근 일이고, 심층심리학 등은 (아직) 어린이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몇백 년이나 1천 년씩 연구를 해나가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정작 토플러 박사는 "그런 논쟁은 1천 년이 지나도 계속되지 않겠느냐"며 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논쟁적인 저작인 < 만들어진 신 > 이 미국에서 출간되고 얼마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외교안보 분야에서 보좌해온 한 전문가의 말이다.
"당분간 공백 메우기 힘들 것"

"지난 2월 방한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출국 전 기내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전화한 당시의 일이다. 제가 '바빠도 잠깐 들르면 될 것을, 왜 기내 전화로 하냐'고 하자, 김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클린턴 장관의 판단'이라고 설명하셨다. 국제법상으로 전용기의 기내는 그 나라의 영토이므로, 미국의 영토인 기내에서 전화한 외교상의 전략이었다는 설명이다. 국제법에 달통했다는 저인데, 그 혜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이는 쉽게 나오기 힘들 것"이라며 "한국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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