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0일, 11일, 12일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소장 가치가 있다. 특히 언론학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면 꼭 해당 신문을 구해서 보관하기를 바란다. 한국언론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11일 현명관 제주도지사 후보에 대한 공천 취소 결정을 내렸다. 집권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를 내지 않은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다는 의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주도는 물론 전체 지방선거를 망치겠다는 위기감이 여당 지도부를 움직이게 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사상 초유의 일을 결정할 만큼 심각한 사건이라면, 게다가 '돈 선거'와 관련한 사건이라면, 언론의 동물적 감각을 살려 대서특필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언론도 있었다. 경향신문은 10일자 1면에 <현명관 동생 '돈 살포' 영장 신청>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
|
|
|
▲ 동아일보 5월10일자 14면. |
|
|
|
|
|
|
▲ 동아일보 5월12일자 6면. |
|
|
세계일보는 이날 사설을 내보냈고, 한겨레 역시 사설을 내보냈다. 이들 언론이 현명관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바로 다음날 한나라당은 전격적인 현명관 공천 취소 결정을 내렸다. 얼마나 상황이 긴박하게 흘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5월10일자 11일자 기사는 천하 태평이다. 조선일보는 10일자 12면 단신 기사, 동아일보는 14면 단신 기사, 중앙일보는 27면 단신기사로 처리했다. 신문을 대충 훑고 넘어간다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기사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가 아니라 "꼭꼭 숨겨라 한나라 '돈 선거' 보일라"이다. 5월11일자 지면도 마찬가지다. 동아는 11일자 16면에 <'현명관 동생 파문' 공방치열>이라는 단신 기사를 내보냈다. 여당이 사상 초유의 일을 선택할 만큼 심각성을 느끼는 사건을 단순 공방으로 전달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한명숙을 키워주면 됩니다" 노무현 1주기 콘서트 돌출발언 선관위, 선거법 위반 여부 조사>라는 11일자 5면 기사 말미에 제주 '돈 선거' 사건을 끼워 넣었다. 한명숙지지 선거법 위반 논란을 제목으로 부각시켜놓고 슬며시 현명관 사태를 언급했다.
보도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고 이런 것을 '면피용 기사'라고 해야 하나. 조선일보는 아예 11일자 지면에 현명관 사태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이런 보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했던 11일 한나라당 지도부는 현명관 공천 취소 결정을 내렸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화들짝 놀랄 일이다. 아니 쥐구멍을 찾아야 할 일이다. 이렇게 언론 체면이 안 서는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5월10일자 11일자 지면에 그토록 꼭꼭 숨겼던 사건을 5월12일자에는 전면 배치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놓였다.
|
|
|
|
▲ 중앙일보 5월11일자 5면. |
|
|
|
|
|
|
▲ 중앙일보 5월12일자 4면. |
|
|
예상은 그대로 들어 맞았다. 동아일보는 12일자 1면에 <현명관 후보 제주지사 공천 취소>라는 기사를 실었고, 중앙일보도 1면에 <현명관 "공천취소…제주 후보 안 낸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2면에 <"금품 살포, 놔두다가 번진다" 한나라, 현명관 제주지사 공천 박탈>라는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12일자 4면 <한나라 "미적대다간 전체 선거 망칠라">라는 기사에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렸다. 현씨 사건으로 현지 여론이 급속히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보도를 놓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5월10일자 5월11일자 지면에는 왜 꼭꼭 숨겼는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한나라당이 '돈 선거' 처리에 대한 손발이 맞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조중동 입장에서 '돈 선거' 보도를 외면하면 조용히 넘어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이유가 무엇이건 참 부끄러운 장면이다. 참 나쁜 언론이다. 언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꼭 5월10일자 11일자 12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구해서 탐독하고 "우리가 언론인이 되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교훈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