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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에겐 다른 길이 없었다 | |||||||
[기고]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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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예측해 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노무현 앞에는 대한민국을 움켜쥔 사익추구세력의 조롱과 멸시와 천대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주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노무현을 호명하여 괴롭히고 모욕할 것이 자명했다. 노무현의 가족들과 측근들 역시 사익추구세력의 희생양 신세를 벗어날 길이 영영 없었다. 완전히 떠나버린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올 리도 만무했다.
결국 노무현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 뿐이었다. 욕된 생을 견디느냐 아니면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느냐. 노무현은 후자를 택했다. 그의 유언처럼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원망도, 미움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자살(?) 이후에야 국민들은 그의 진심을 알았다. 그에게 쏟아졌던 분노와 미움과 실망이 고스란히 애도와 슬픔으로 변했다. 그 변화의 과정이 너무나 극적이고 갑작스러워서 도리어 당혹스럽고,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과 흠모의 마음이 지나치게 절절해 감정의 과잉으로 느껴질 정도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노무현을 조문했던 국민 중 대다수가 노무현이 곤경에 처했을 때 침묵했거나 윤리적 매질에 동참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설령 노무현의 죽음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을지라도 그의 죽음이후 표변한 민심은 부박(浮薄)하기 그지없고 무엇보다 무섭다.
▲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앞에서 한 모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노무현의 죽음 이후 많은 것이 바뀌고 변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야권과 친노(親盧)진영은 일패도지 상태에서 벗어나 전열을 정비할 계기를 얻었다. 살아있을 때 진보, 개혁진영의 원심력으로 작용하던 노무현이 죽어서 진보, 개혁진영의 구심력으로 작용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곧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한나라당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무현의 존재감이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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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자연인의 자살 이후에야 병든 한국사회의 성찰이, 시민들의 각성과 다짐이 본격화됐고 이를 계기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정서적 울림을 준다. 일신에 사(私)가 없었던 한 인간의 불꽃같은 삶을 송두리째 삼킨 후 전진하는 역사란 얼마나 냉혹하고 무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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