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정말 보수가 있을까? 보수를 내세우는 분들이 오히려 빨갱이들 같은 짓을 하고 있다. 몰려다니면서 무력시위를 하고, 폭력을 저지르고, 상대방의 자유를 억압하고, ‘너 말하지 마. 네가 하는 말은 듣기 싫어. 네가 하는 말은 다 못 믿겠어’ 하며 입을 봉한다. 그것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폭력보다 평화, 무례보다 신사적인 태도, 그리고 전체주의나 억압보다 자유를 옹호한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국정원 직원 사건’에 대한 경찰의 즉각적 수사를 촉구하는 글 때문에 경찰대 교수직을 사퇴한 표창원 전 교수의 일갈이다. 표 전 교수는 최근 발행된 <표창원, 보수의 품격>에서 뒤틀리고 왜곡된 한국의 보수를 맹렬히 비판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처럼 잘못 사용되는 단어도 없다. 보수의 사전적 의미는 ‘보전하여 지킴’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지만 사전적 의미의 보수는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보수는 ‘꼴통’이란 단어와 거의 동일하게 사용된다.

“보수 정신은 사(私)를 멀리하고, 공(公)을 위해 헌신하는 것”

표 전 교수가 이 책에서 내린 진단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는 한국의 보수진영이 혁신에 앞서 붕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냉전논리로 똘똘 뭉쳐 있는 보수진영의 벽을 깨고 분화 과정을 거치는 게 혁신에 앞서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

표 전 교수는 “극우적인 분들은 그분들끼리 모여서 극우 정당을 만들고, 그다음에 다시 참보수, 정통보수도 그에 걸맞은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진보 쪽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양당 체제든 3당 체제든 가치와 이념을 가진 정당 구도가 만들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때가 되면 정말 진보와 보수가 건전한 경쟁 속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집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 전 교수는 한국 보수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선 그동안 용인되어 왔던 불합리한 관행과 인식이 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겪어온 한국의 보수는 헌법이 내세우는 공익적 가치, 공익적 정신이 결여돼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공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표 전 교수는 “보수 정신은 멸사봉공이다. 사를 멀리하고, 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면서 “지금 자칭 한국의 보수라는 분들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 것을 먼저 챙긴다. 결국 보수의 정신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에 참여할 내각인사들과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모로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보수가 바로 서야 우리 사회 정의도 바로 선다

표 전 교수는 재벌에 대한 보수의 모순적 태도도 질타했다. 그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조폭을 동원해 보복 폭행을 했을 때도 그랬고, 탈법적인 증여 문제 등이 드러날 때마다 전경련 등 재벌 단체들은 왜 재벌만 탄압하느냐는 성명서를 낸다. 그런 모습을 보고 국민들이 그들을 이 땅의 경제적 지도자라고 생각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불법과 반칙이 이긴다는 잘못된 신념, 힘센 자에게 줄 서고 충성을 바치면 옳지 않더라도 결국은 나에게 보상이 돌아온다는 잘못된 인식을 보수 스스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의 개혁과 희망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 자체가 요원해 질지 모른다는 게 표 전 교수의 주장이다.

표 전 교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수의 경직된 태도도 문제 삼았다. MB정부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한 것과 관련해 그는 “그만큼 숨기고 싶은 게 많은 것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진정한 보수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표 전 교수는 “BBK부터 시작해서 언론의 자유는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다”면서 “정정당당하면 왜 비판하지 못하게 하나? BBK 사건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두려워하는 대통령을 가졌다. 5년간 정부에 불리한 사안만 발생하면 일단 그 사안에 정면 돌파하거나 정정당당하게 대응하기보다 일단 말을 못하게 하는 다섯 살 아이 같은 태도로 접근해왔다”고 비판했다.

표창원이 제안하는 ‘품격 있는 보수’는…

그럼 표 전 교수가 말하는 ‘품격 있는 보수’란 어떤 것일까. ‘사를 멀리하고 공을 위해 헌신하는 것’ ‘과거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용서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내놓을 것은 내놓는 것’이다. 그가 <표창원, 보수의 품격> 머리말에서 밝힌 내용은 좀 더 구체적이다.

“면제의 대물림을 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의무를 지킨다. 의무를 넘어서 자신을 희생한다.
위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권력으로 치부를 가리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공익을 위하는 것이 보수다.
입을 막고 종북과 좌빨을 외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비판에 당당하다. 자신의 길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이 보수다.
권력의 그늘에서 시민의 피를 빠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수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자, 그는 보수가 아니다. - 보수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과거를 엄정히 평가하고 화해로써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보수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