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던 정치인, 박근혜 이미지가 대통령이 되고난 뒤 달라도 너무 달라진 모습이 당혹스럽다. ‘선거의 여왕’으로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며 ‘친박’ 언론의 화려한 조명속에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못한 국민의 집단착시 현상이었는지 아니면 대통령이 되고난 뒤 본래의 꾸미지 않은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점점 확실해지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언행, 국민의 정서와 거리가 먼 불통의 이미지 변화다. 반복되는 ‘인사실패’와 그에 따른 해명같지 않은 해명을 듣게 되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박 대통령이 6월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밝힌 인사실패의 원인은 ‘국민과 언론’ 때문이란다. 여기다,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시절에 만든 ‘청문회법과 제도’조차 잘못됐다고 한다.

발언을 정리하면,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 언론과 여론의 과도한 검증, 인사청문회 제도 때문에 총리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다는 해명이다. 납득이 가는가. 박 대통령은 총리 유임 문제에 대해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심지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해명이라고 내놓은 세 가지 이유부터 살펴보자.

먼저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부터. 국민의 눈높이가 얼마나 높아졌으며 내놓은 후보들은 어느 정도 검증을 마친 사람들이었는가를 보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전관예우, 논문표절, 병역비리 등 과거에 늘 문제되던 비리세트가 그대로 반복됐다. 박 대통령은 이 정도의 인사가 아니라 ‘차떼기 비리’의 주역을 다시 데려왔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교원대 교수 시절 대학원생들에게 본인 명의의 신문사 칼럼을 대필(代筆)시켰다는 증언까지 나온 인사다.

2009~2010년 김 후보자에게 석사학위 논문 지도를 받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는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방향과 논지로 학생이 글을 쓰고 교수님께서 조금 수정해 (신문사에) 넘기셨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모 신문에 45차례 교육 분야 칼럼을 써왔다. 어디에서 이런 후보를 골라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리백화점 후보다. 국민의 눈높이 특별히 높아지지 않았다. 이런 교육부 장관 밑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슨 개혁적인 교육정책을 기대하겠는가? 따라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주장은 박 대통령의 착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그 다음, 언론탓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민주주의 사회 언론의 사명 중 하나는 총리, 장관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해 세세하게 검증하는 역할이다. 서구의 언론이 얼마나 자세하게 공직자의 도덕성, 자질, 재산축적 문제 등을 검증, 보도하는지 익히 알려져 있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 한국 언론은 고위공직자에 대해 검증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땅투기 문제, 자녀 병역문제, 세금납부 문제 등 언론의 검증은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정착했다. 무슨 언론이 어떤 신상털기를 했다는 것인가.

국무총리, 장관 등으로 한 국가의 얼굴 역할을 할 사람들이 과거 공개적으로 한 말과 행동, 위법사항 등에 대해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사명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언론탓 발언은 KBS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발언 동영상 편집과 관련하여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고의성 편집’에 대해 심의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방향을 제시한 셈이 됐다. 심의위에서 곧 KBS 편집에 대해 징계를 내려 대통령 발언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것은 KBS 보도의 제작과 편집에 대한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 반역사적 심의결과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사청문회 법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여론재판식 청문회를 지적했지만, 내용을 잘 살펴보면 신상털기도 망신주기도 아니다. 사실관계를 따지고 이유를 묻는 식이다. 그 정도의 도덕성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좀 윤리적 문제가 있더라도 일만 잘 하면 된다’는 식의 자가당착의 논리다. 박 대통령은 2006년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이런 청문회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박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 정부의 개각에 대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를 넘어 이럴 수가’라고 논평했다. ‘한마디로 국민을 싹 무시하는 개각’이라고 발언한 동영상이 오마이뉴스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지금 박 대통령이 총리, 장관으로 내세우는 사람 하나하나가 정말 ‘국민을 싹 무시하는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텐가. 박 대통령이 인사실패로 내세우는 ‘국민, 언론, 인사청문회법’이라는 남탓은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과 어울리지 않는다. 인사실패에 박 대통령도 책임지지 않고 인사위원회 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도 책임지지 않고 전부 국민과 언론탓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이런 잘못이 반복될 것이라는 선포다. 국민의 눈높이를 더 이상 낮출 수가 없다.

언론의 검증보도를 부정하는 것은 언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반역사적 행위다. 언론에 잘못이 있다면 법과 제도를 통해 법적 책임을 추궁하면 된다. 박 대통령이 여론의 비판에 귀기울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불행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 제발 성공한 대통령을 기대한다는 점을 잊지말아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