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담은 영화 <명량>이 700만 관객을 훌쩍 넘었다. 최단기간 흥행을 계속해서 경신하며 천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고, 그만큼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6일 박근혜 대통령이 관람해 또 다른 이슈가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영화관람이 이슈가 된 것은 지난 1월 <넛잡> 이후 7개월여 만이다.
대통령의 동정은 그 자체로 의미가 부여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명량>을 관람한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명량>을 관람했을까?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영화 관람에 대해 “‘명량’이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이고 국론결집의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영화라는 의미가 있다”며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를 다시 일으키는 리더십을 보이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명량>을 통해 현재 심하게 분열돼 있는 국론을 결집시키고,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배우면서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 같은 목적으로 <명량>을 관람했다면 <명량>이 주는 메시지를 잘못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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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명량'을 관람하기 위해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배우 안성기 씨와 함께 입장하며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사진=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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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은 리더십의 영화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군 선박을 섬멸시켰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민경욱 대변인의 주장대로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함께 위기를 극복한다’는 방식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영화 초반까지만 보면 조선 수군의 압도적 열세와 왜 수군의 거대한 규모, 그리고 왜의 잔혹성으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휘하 장수는 거북선을 불태우고 떠나고 탈영병도 속출한다. 백성들은 공포에 질리고 결국 남아있는 휘하 장수들마저 전투를 거부한다. 전투가 시작됐지만 이순신 장군의 배를 제외한 남은 장수들은 멀찌감치 물러서 있다.
영화의 메시지가 드러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영화는 종반부로 치달아 가면서 휘하 장수들이 전투에 합류하고 백성들이 옷을 벗어 흔들며 참전하는 쪽으로 양상이 바뀐다. 그리고 이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은 오롯이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다. 배 한 척으로 홀로 적진에 남겨졌지만 뛰어난 전술과 기술로 이른바 ‘기적’을 발휘하자 결국 모두 일치단결해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명량>이 주는 메시지를 오늘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국가적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도자가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하는 ‘솔선수범형’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시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가적 무능과 잇따른 엽기적인 범죄들로 인해 국민들의 어깨가 쳐져 있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어떤 리더십을 보였나?
박 대통령은 “일벌백계”, “책임자 처벌”만을 언급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의 화살은 유병언·유대균 부자에 돌려졌고 구조과정에서의 문제점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이 과정에 대한 진상을 알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법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이들의 단식이 30일 가까이 되도록 방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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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량'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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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민·관·군이 똘똘 뭉치자’는 대통령의 말은 ‘나를 반대하지 말라’는 단순한 메시지로 읽힌다. 이순신 장군이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 한 가운데로 들어간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함대 뒤에서 지시만 내리고 패배한 장수들의 책임만 물었다면, 지금의 이순신 장군은 ‘성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말처럼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를 다시 일으키는 리더십을 보이겠다”며 ‘명량’을 관람한 것이라면 대통령은 단식 중인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부터 우선적으로 만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진도 체육관에서 “언제든 나에게 연락하라”고 했던 대통령은, 현재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보기엔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에 서 있다.
대통령이 바쁜 일정까지 비워가며 <명량>을 관람한 성과가 세월호 문제 해결로 나타난다면 박 대통령은 다시 국민들로부터 성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나만 따라오라’는 식의 메시지만 읽었다면, 국민들은 영화표 만 원을 그냥 낭비한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