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 3권분립 수호자인가 이미지 정치가인가
경향신문 원희복 선임기자 입력 2016.01.16. 18:34
대한민국 공식 의전서열을 따지면 1번이 대통령이고, 2번이 국회의장, 3번이 대법원장이다. 이 1·2·3번은 공화국의 기본 뼈대인 행정과 입법, 사법 등 3권분립의 최고 책임자이다. 지금 국가 의전서열 1번과 2번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충돌’하고 있다. 청년실업 위기, 국가경제 위기, 북핵위기를 말하지만 국가 최고와 차석 책임자가 갈등을 빚는 그 자체가 더 심각한 위기가 아닐까.
갈등의 원인은 노동관계 5개 쟁점법안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정 의장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경우를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있는데, 정 의장은 지금을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직권상정하면 야당은 국회의장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요청할 것이고, 이는 국회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이 된다. 법으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할래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자신이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의 20대손으로 할아버지의 정신을 자신의 정치신념으로 삼고 있다고 자부한다. /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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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건배사로 박근혜 정부에 ‘훈수’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정 의장은 이병기 비서실장과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선거구 획정과 쟁점법안은 연계처리할 수 없음을 전달했다. 이에 청와대가 격앙했다. 청와대는 민생법안을 우선 처리해 달라고 했지, ‘연계’라는 말은 쓴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정 의장에 대해 “자기 이미지만 관리하는 이미지 정치를 펴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날 정 의장은 건배사에서 다산 정약용의 ‘식이정수(食以政首·먹이는 것이 정치의 으뜸)’를 빗대어 화합이 정치의 으뜸이라는 ‘화이정수(和以政首)’라는 4자성어를 지어냈다. 이 역시 고도의 복선이 깔린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혼용무도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정 의장의 건배사는 이런 평가를 받는 박근혜 정부에 점잖게 ‘훈수’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행정부 수장과 입법부 수장의 충돌은 2014년 5월 23일 국회의장 선출을 위한 새누리당 의총에서 정의화 의원이 청와대가 미는 황우여 의원(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보다 2배 이상 득표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분명한 ‘비박’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비박의 반란은 2014년 7월 14일 청와대가 미는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의 대표 당선으로 절정에 올랐다. 그리고 2015년 2월 2일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가 미는 이주영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비박에 대한 청와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찍어내린 ‘배신의 정치’와 맞서다 155일 만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유 원내대표는 사퇴하면서 “내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면서 “그 가치는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는 모처럼 의정사에 보기 드문 ‘명연설’을 남겼다.
과거 정치공식으로 보면 이런 행위는 ‘항명’이며 ‘괘씸죄’에 해당된다. 1971년 청와대의 뜻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안에 찬성한 중진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의원이 정보부로 끌려가 콧수염이 뽑히고 초주검을 당하는 고문을 받았다. 길재호 의원은 고문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다녔고, 네 사람 모두 정계에서 퇴출됐다. 45년 전 정치공식이 다시 적용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시대착오적 괘씸죄를 눈앞에서 봤지만 정 의장은 흔들림이 없다. 비박의 좌장인 김무성 대표가 ‘납작’ 엎드려 있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정 의장의 한 측근은 “정 의장은 국민의 대표자를 뽑아 국회로 보내는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그는 의회가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보다 앞선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다.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자신을 찾아 “경제·노동법안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는 청와대 뜻을 전했을 때다. 이수원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청와대 비서실장도 아닌 수석이 와서 그런 말을 할 때 의장께서 굉장히 화가 나 ‘앞으로 청와대 수석은 비서실장이 만나라’고 일갈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에 노골적 불쾌감 표시하기도
정 의장은 지난해 12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 추도사에서 “의장께서 투철한 신념과 원칙으로 어렵게 지켜내신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의장님의 빈 자리를 더 커 보이게 한다”고 회고했다. 3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의장이 “3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 발언은 충격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3권분립을 훼손하고 있다는 발언 수위는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유 전 원내대표의 발언을 훨씬 능가하는 용기이자 모험이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해도 되느냐고 걱정할 정도다. 20년간 그를 가까이서 모신 이수원 전 비서실장은 “원래 성격이 급하고 솔직해 속에 있는 얘기를 담아두지 못하고 말하는 스타일”이라며 “집무실 벽에 참을 인(忍)자를 써놓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미 청와대와 넘어설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관측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정 의장이 실질적 소유주인 부산 동래봉생병원에 대해 내사를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정 의장의 지금 모습을 보면 고려말 ‘단심가’를 읊으며 고집을 꺾지 않은 포은 정몽주를 떠올리게 한다. 요즘 인기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 나오는 정몽주의 캐릭터와 비슷하다. 사실 그는 정몽주의 20대손(포은공파)으로,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정 의장은 “나는 최소한 그분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후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아니 이 시대의 정몽주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정의화, <이름값 정치-건강 사회를 꿈꾸며>, 2011)
지난해 12월 28일 의장 공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엄마부대봉사단에게 “저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20대손으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는 사람”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예 의장실 등 뒤에 포은의 대책문(과거시험 답안지)을 병풍으로 만들어 세워놓고 있다. 정 의장은 이 포은 대책문이 일본에서 발견됐다는 보도를 보고, 이를 서예가에게 부탁해 병풍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정 의장은 1948년 12월 18일 경남 창원군 웅동면에서 태어났다. 1955년 부산 동구로 이사 온 뒤 줄곧 부산에서 살고 있다. 부산 중앙초, 부산중, 부산고,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신경외과 전문의가 됐다. 부산 봉생신경외과 병원을 종합병원으로 키우는 등 부산에서 의사로 성공했다. 원래 그는 의사가 되기보다 부친을 따라 법조인이나 정치인이 되려 했지만 “형에 이어 의사가 되라”는 부친의 강권에 의해 의사가 됐다. 결국 그는 1996년 김영삼 정부의 개혁공천(이 공천은 YS의 아들 김현철씨가 사실상 주도했다는 것이 정설)으로 원내에 진출했다. 그는 자신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포은 할아버지의 말 없는 인도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군의관 생활을 전북 김제군 용지면에 있는 한 한센촌에서 했다. 또 전주 예수병원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유독 호남에 대한 애착이 많다. 1991년 영호남민간협의회를 만들어 지역감정 극복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혹시 호남 출신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활동해 여수·광주시 명예시민, 새누리당 최초의 광주명예시민, 조선대학교·전남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에는 당에 지역화합특위를 만들어 위원장을 맡고, 여수엑스포 유치 특별위원회 위원장,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위원장 및 조직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의 정의화 국회의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그간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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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거취에 대해 갖가지 추측 난무
많은 정치인들이 동서화합을 얘기하지만 언행이 일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바로 ‘이미지 정치’에 능한 정치인들이다. 게다가 자신의 불이익을 각오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는 지난해 정부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곡으로 지정하기를 거부하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님’이 북한이라는 일부 보수의 주장에 대해 그는 ‘님은 광주정신이고, 광주정신은 반독재투쟁을 한 민주정신이고, 인권과 평화의 정신’이라고 일갈했다. 종북논란으로 숨을 죽이는 상황에서 이는 대단한 용기였다.
이것 말고도 정부 시책과 다른 ‘삐딱한’ 주장도 많다. 당론과 달리 ‘궁극적으로 학교급식은 국가의 의무’라고 주장하고, 영리의료법인의 도입도 반대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정부 이전을 적극 지지했다. 남북 국회 교류와 평화적 남북통일도 그의 지론이다. 그는 평양 출신인 장인에게 영향을 받아 평양에 병원을 세우는 것을 꿈으로 여긴다. 새누리당보다 더불어민주당 쪽 정서에 부합한다.
이러한 삐딱함에 대해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 의장이 자기도취 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통치보감> <한비자> <관자> 등 많은 고전 해설서를 낸 고전학자이며 정치평론가인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은 정 의장을 춘추시대 송양공(宋襄公)에 비유했다. 송나라 송양공은 13년간 재위했던 군주로, 춘추5패의 한 사람으로 꼽는 군자다. 신 소장은 “송양공을 비롯한 춘추5패의 특징은 스스로 높고 존귀하다는 자존감, 말인즉 옳은 이상주의자, 그리고 현실과 이상이 괴리되는 이중성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치는 이상과 현실을 절충해야 하는데, 정 의장은 포은의 후손이라는 자존감 때문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한 이중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월산 관상역학연구원장은 “중후한 형모에 포용력과 인화력이 좋은 얼굴형으로 동서화합과 국론을 모을 수 있는 관상”이라며 “이마 중앙에서 턱까지 수직으로 이어지는 자오선 기세가 미흡해 더 큰 정치적 도약에는 일부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심의 초점은 정 의장이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정치인은 국회의장을 끝으로 여의도에서 ‘은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 의장의 지역구인 부산 중·동구도 통·폐합 대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4·13 총선 출마 여부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거취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의도에서는 갖가지 억측이 나온다. 항간에는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옮겨 호남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한 측근은 “국회의장까지 지낸 분이 다시 지역에서 심판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정 의장은 국회의원 선수를 늘리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국민의당 영입설이 나왔지만, 정 의장의 국민의당 비례대표 1번설도 나돈다.
정 의장의 정치적 멘토인 정몽주는 절개를 지키며 역성혁명에 반대해 결국 선죽교에서 최후를 맞았다. 신동준 21세기연구원장이 비교했던 송양공은 아직 대열을 갖추지 않은 적을 공격하는 것은 군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 기회를 놓치다 결국 전쟁에 참패하고 죽는다. 일면 정몽주의 운명과 비슷했다.
정 의장은 3권분립의 수호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당당하게 포은 할아버지의 전철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미지 정치를 활용해 할아버지와 다른 정치적 활로를 찾을 것인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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