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토론" 손석희의 한숨, "불안한 마음" 유시민의 한 방
[하성태의 사이드뷰] JTBC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 관전기
▲JTBC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 사회를 맡은 손석희 앵커ⓒ JTBC
"토론이 기승전결이 있으면 좋은데, 워낙 이 문제가 뜨겁고 여러분들이 아시는 주제라서 기승전결 없이 여러분들 의견을 가감 없이 다 듣고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듣지 않고. 네 분이 워낙 뜨겁게 토론해서, 좀 치열하다 싶어서 제가 가끔 가볍게 진행했습니다."
마무리 멘트를 하던 손석희 앵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손 앵커가 편성 시간에 맞춰 토론자들의 마무리 멘트도 듣지 못하고 토론을 끝내야 한다고 하자, 유시민 작가는 "사장님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100여 분에 가까운 토론을 이끌어서인지, 손 앵커의 얼굴엔 피곤이 역력해 보였다.
2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신년특집 대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는 그렇게 진행자도, 시청자도 조금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토론이었다. 평소 정치 영역과 달리 한국경제 위기론과 최저임금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집중한 이날 토론은 어지러운 현 한국경제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토론자 모두 지표를 떠나 경제현실의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진영 토론이 무릇 그렇하듯, 관점과 해석에 따라 한국경제의 지금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는 시각차는 뚜렷했다. 최근 '한국언론 오도독' 시리즈 기사로 반향을 일으킨 KBS 최경영 기자도 토론 직후 "JTBC토론 보며, 유시민 작가 신세돈 교수 토론 지켜보니까 더 확신이 강해졌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촌평을 남겼다.
"(한국경제의) 병이 역사적이고 구조적이란 비판은 한국경제 좀 아는 사람은 가혹하게 다 비판할 수 있구나."
"누구도 확실한 대안은 없고 결국 이리저리 겨우겨우 가는 것이 경제정책의 운명이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은 한국경제의 병이 1년 반 된 대통령 정부 탓이라고 우기는구나.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변자라 할 만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특히 "엄중"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김 위원장에게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고생이 많다"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 유시민 작가는 비관적 전망 가운데서도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반면 한때 '박근혜의 경제교사' 중 한 명이었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시종일관 고성을 유지해 (여러 의미로) 눈길을 끌었고, 김용근 경총 부회장은 조근조근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방청석도 들썩인 유시민의 최저임금 발언
▲JTBC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에 패널로 참석한 유시민 작가ⓒ JTBC
"그리고 제가 최근에 어떤 신문의 보도를 보니까,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30년 함께 일해온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 이런 기사를 봤는데 제가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니, 30년을 한 직장에서 데리고 일을 시켰는데 어떻게 30년 동안 최저임금을 줄 수가 있어요.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러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애로가 있겠지만."
방청석이 들썩였다. 유시민 작가의 이 발언은 아마도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멘트였으리라. 2부 막바지 유 작가가 이렇게 최저임금 관련 발언을 이어가자 김용근 부회장은 "최저임금이 낮은 단계에서는 다 수용하지만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처럼 되는 순간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라는 반박 논리를 폈다.
이에 유시민 작가는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이라며 "그 이상 주라는 거지 거기까지만 주라는 게 아니다"라고 맞섰다. 물론 유 작가는 앞서 이런 전제를 깔고 발언을 시작했다. 유 작가는 "저는 경총에서 따뜻하게 안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기업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라 강조했다.
"물론 법제적으로 약간의 마찰도 있고 또 굉장히 빠르게 최저임금이 인상된 데 따른 경영 압박이나 이런 것을 느끼는 기업들도 많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제 연봉 5000 되는 근로자들도 적용받는다 이런 것들도 사실은 그건 임금체계가, 통상 임금을 줄이기 위해서 이상한 식으로 만들어놔서 그런 거고요. 그것은 노사 간 잘 협의하면 되리라고 보고요. 저는 제일 중요한 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500만 명 이상이라는 거 아니에요."
누가 경제위기론을 지피는가
▲JTBC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 JTBC
"지표상 나타나는 걸로 보면 경제가 어렵죠. 그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일이라고 보고요. 다만 지금 보수정당, 보수언론, 그리고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신문, 대기업을 광고주로 하고 있는 언론의 경제면 기사, 여기서 퍼뜨리고 있는 경제위기론은 사실에 의거해서 이론적으로 뭘 규명하고 있다기보다는 기존의 기득권층의 이익을 해치거나 또는 해치고 있지 않지만 혹시 해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는 정책에 대해서 그걸 막아버리려는 시도라고 저는 봐요.
그러니까 좀 심하게 표현을 하면 우리나라 보수기득권층의 이념동맹 또는 이해동맹, 이익동맹. 이것이 지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시절과 똑같은 것으로 돌려놓기 위한 작업이라고 저는 봐요. 저는 국가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분야든 언제든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 특히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건 굉장히 힘듭니다. 저는 그냥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걸 보고 있고요."
유 작가는 1부에서 이어진 경제위기론 토론에서도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렸다. 과연 누가 '경제위기론'을 끊임없이 부채질하는가, 그렇다면 그 경제위기론으로 누가 이익을 보느냐에 대한 명쾌한 지적이었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이 지적에 신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민생 지수가 나빠졌다"면서 "과거 회귀를 이야기한 적도 없고 저는 보수 대기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기득권 방어라는 말은 더 모르는 사람인데, 그것은 35년 학자에 대한 굉장한 인권모욕"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대해 유 작가는 "신 교수님을 제가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걸로 받아들이셨다면 죄송하다"면서도 "제 표현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유 작가는 취지를 바꿀 생각이 없다며 아래와 같이 '경제뉴스' 비판, 즉 이익동맹을 위해 언론들이 만들어내는 경제위기론의 편향성을 비판했다.
"우리가 지금 시민들이 만나는 경제뉴스를 누가 만드냐를 한번 보시면 대부분 경제신문의 기사더라고요. 그 다음에 일반 언론의 경제면 기사, 방송 포함해서. 그런데 이 경제담론을 주도하는 분들이 다 그것이 옳지 않지만 내가 내 이익 때문에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이렇게 생각지 않아요. 그분들이 만나는 사람, 그분들의 삶의 터전, 그분들이 공부한 거, 평소에 주고받는 정보, 이런 것들이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민생지수' 등 지표상 수치의 하락을 근거로 부각되는 경제위기론에 대해서도 유 작가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경제위기론이 굉장히 심했던 때가 노무현 정부 때"라던 유 작가는 "심지어 경포대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을. 경제포기한 대통령"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민주정부의 경제 정책을 향한 경제뉴스의 비판이 문제라는 시각을 거두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우리 시민들이 만나시는 거의 모든 경제뉴스들이 중립적이거나 또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심각하게 이해관계에 오염되어 있는 경제뉴스라고 저는 봐요. 그리고 이런 보도 때문에 만약 이 정부의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이나 혁신성장이나, 이런 걸 가미해서 중위소득 이하의 소득계층에 속하는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 이 모든 시도들이 최저임금 포함해서 다 좌절된다면, 그러면 지난번 정권교체는 적어도 경제정책면에서는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저는 그렇게 하여튼 불안한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정부의 엄중함 설파한 김상조 위원장
▲JTBC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에 패널로 참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JTBC
한편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그 실천의 어려움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특히나 신 교수가 "취약계층이 더 어려워졌다"고 비판하자, 김 위원장은 "취약계층에 특히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상황이 되었다라는 의미에서 분명히 어렵고 이 부분에 관해서 정부는 매우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좀 더 적극적으로 오해를 풀고 경제 전반의 어려움을 설명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어 김 위원장은 거듭 "정부가 경제현실의 어려움에 대해서 굉장히 엄중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언론이 지피고, 국민들이 수용하는 듯한 경제위기론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이런 어떤 최근의 한국경제의 현실을 70년대의 어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나 또는 97년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의미의, 좁은 의미의 경제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위기로 볼 수 있느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좀 성급하고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입니다.
특히 2019년 경제정책의 방향은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덜기 위해서 경제활력을 제고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경제위기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과장되고 왜곡되면서 더 나아가서 경제정책의 기조를 과거로 되돌리고자 하는 그런 의도라면, 이 부분은 매우 주의 깊게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JTBC 신년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에 패널로 참석한 신세돈 교수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JTBC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시절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발끈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원래 경제정책 방향이 하나로만 되어 있는 게 아니다"라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4개의 요소에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공정경제다. 한 부분만 보고 어떻게 정부의 경제정책의 전부를 평가하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 가치 있는 토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제가 문재인 정부만의 책임이 아닐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려줬지만 정부도 마냥 언론 탓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려줬다고 봅니다."
토론을 지켜 본 한 시청자의 평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실질적으로 출범한지 6분기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작가는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는 언론과 영업이익에만 혈안이 돼 있는 기업의 동맹을 꼬집었다. 반면 김용근 부회장에 비해 월등히 많이 마이크를 잡은 신세돈 교수는 경제위기론자 일반을 대변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혁신을 주문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날 JTBC 신년토론은 이 시청자의 촌평대로 언론 전반이, 그리고 보수야당이 맹폭 중인 경제위기론이 어디서부터 연원했는지, 또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맹폭이 온당한지에 대한 의구심을 던져주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마치 반어법과 같이 "가볍게 진행했다"던 손석희 앵커가 보여준 피곤함에서 알 수 있듯, 정치토론보다 훨씬 더 난맥상으로 얽히고 해법도 불투명한 현 경제의 위기감과 그로 인한 피로감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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