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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잘 돌아가나?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아 가는 어른들은 책임을 지라는 16살 그레타 튠베리에게 부끄럽네?

by skyrider 2019. 9. 28.

아시아경제

[요즘사람]당신은 '요트 소녀'를 조롱할 자격 있나?

김종화 입력 2019.09.28. 09:00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미국 백악관 밖에서 열린 기후변화 항의 시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모습. [사진=AF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스웨덴 출신 16세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영국 플리머스항에서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 뉴욕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툰베리는 비행기로 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요트로 가는 바람에 2주나 걸려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행동을 통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지요.


툰베리는 정상회의 연설에서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라고 세계 정상들에게 거친 비판을 토해냅니다.


정상들이 듣기가 거북했을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밝은 미래를 고대하는 행복한 소녀"라고 조롱인 듯한 트윗을 날렸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청소년들의 제안은 너무 급진적"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 미국 폭스뉴스의 패널은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다", "부모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어린 소녀의 열정을 조롱으로 되받는 어른들의 태도는 안타까울뿐 입니다. 그것도 세계의 일류 리더들이라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실제로 툰베리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최근 3년간 감소세였던 탄소배출량이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1.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노력한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툰베리가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요트를 이용했던 것은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이라고 불리는 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 입니다. 플라이트 셰임, 우리말로는 '비행의 부끄러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때에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를 탑승하며 느끼는 죄책감 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항공 여행 대신 친환경적인 여행 방법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항공 여행은 환경론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으며 항공사와 여행사, 심지어 정치인들도 항공 여행을 줄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비행기는 다른 교통수단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합니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를 이동하는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비행기가 285g, 버스 68g, 기차는 14g 정도입니다. 비행기는 버스의 4배, 기차보다 20배 가량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 것이지요.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가는 비행기를 이용하면 '탄소예산(carbon budget)'의 5분의 1을 소비하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탄소예산은 2030년까지 치명적인 수준의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한 사람이 1년 동안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을 말합니다.

유럽인들의 대부분은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 대신 기차 등을 이용하는 '플라이트 셰임'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플라이트 셰임 운동에 유럽 주요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현재 비행에 대해 내년부터 '환경세'를 도입합니다. 환경세는 승객 1인당 1.5~18유로에 달합니다. 환경세로 걷은 약 1억8000만 유로(한화 2363억원 가량)는 철도 같은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에 재투자될 예정입니다.


영국도 지난 1994년부터 '항공 여객세'를 도입했고, 지난해부터 세율을 인상해 450파운드(한화 67만원 가량)까지 세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2021년부터 환경세를 도입하는 것과 아울러 항공사들이 환경세를 피하기 위해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 대륙 전체에 항공세를 부과하도록 유럽연합을 설득하는 작업에도 돌입했습니다.


플라이트 셰임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던 스웨덴에서는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스웨덴 국내선 이용객이 3% 줄었고, 세계자연기금(WWF)은 같은 기간 스웨덴 국민의 23%가 비행기 여행을 줄였다고 발표했습니다.


플라이트 셰임 운동에 참여하면, △비행기보다는 가급적 기차 타기 △국제회의는 가급적 화상통화(skype)로 대체 △비행기를 꼭 타야한다면 승객 한 명당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에 가급적 승객을 많이 싣는 편을 타기 △1등석이나 비즈니스석 보다는 이코노미석 타기 △비행기 연료를 줄이기 위해 수화물 무게를 줄이기 △항공편을 이용한 해외 직구를 가급적 하지 않기 △단거리 항공편은 장거리보다 연비가 좋지 않으므로 최대한 타지 않기 등의 행동강령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 같은 운동이 달갑지 않습니다. 유럽은 기차 인프라가 잘 돼 있으니 플라이트 셰임을 벌일 수 있겠지만 한중일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기차 인프라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버스나 보트 등 다른 대안들은 위험하거나 불편하고, 낡아 건강이나 환경에 해를 끼칠 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유럽처럼 철로가 촘촘히 깔려 있고 국가끼리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륙이 아니라면 장거리를 이동할 때 비행기를 대체할 교통수단이 마땅하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 국가와 다릅니다. 한국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가 잘 구축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병든 지구의 사정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습니다. 다 큰 어른들이 어린 소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조롱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말이지요. 툰베리는 "우리가 자라서 책임을 질 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릴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4800㎞의 바다길을 험난한 파도와 싸워가면 행동에 나선 소녀를 조롱할 자격이 당신에게 있나요? 요즘사람들 해외여행 자주 나갑니다. 바다 건너 여행갈 때는 지리적 요건상 어쩔 수 없더라도 국내에서는 기차로 이동하는 것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아픈 지구를 향한 가장 따뜻한 말은, 툰베리가 정상들을 향해 쏟아낸 쓴소리가 아닐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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