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행일지

소래산, 어르신은 기다리시다 지쳐서 가시고...

by skyrider 2008. 7. 26.
제 133회 비행일지
2002.04.21(일) 소래산(해발고도 299.4m) 날씨; 맑음
비행시간;1시간 30분(?)

원래 봄은 비행자들에게는 수난의 계절이긴 하나 금년 봄은 유난히도 바람이 거칠어 지난 3월2일 이후 비행을 못한지라 마침 간 밤에는 친구네 집들이에서 술도 한잔 했겠다 해서 오늘도 나가 봐야 허탕칠것, 잠이나 더 자는게 버는거다(?)하며 뒹굴다가

 

문득 며칠전 성낙윤 어르신께서 그 동안 본지 오래됐다며 전화가 왔던 생각이 났다.


그래 소래산에 나가 어르신이나 뵙고 오자 하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 11시 미사후에 집을 나섰다.

날씨는 화창하고 황사도 걷힌 듯 멀리까지 선명하다.
길도 밀리지 않아 한 걸음에 착륙장에 다달으니 지난 주에 만개됐던 길옆의 벗꽃들은 다 졌지만 소래산은 연두빛 신록이 우거져 바야흐로 비행의 계절이 다시 시작되는 듯하다.


정상의 깃발은 남풍인 것 같고 이륙장에는 아까부터 펼쳐 논 캐노피가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가 잠깐 들어 온 정풍을 놓치지 않고 불안하게 이륙한 기체도 몇번의 릿지 시도 끝에 포기하고 바로 착륙장으로 방향을 튼다.

 

좀 더 기다리는 게 좋을듯 해 가지고 온 커피를 한잔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바람이 정풍으로 바뀐듯 하다.

마침 송골매팀의 이영복 팀장이 보여 물어보니 지금부터 괜챦을 듯 하니 빨리 올라 가란다.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급히 산을 오르려니 거의 한달 이십일만에 장비를 지니 무척 숨 가쁘다. 어르신께 전화를 하니 1/3쯤 올라 가시고 계시는 중이란다.
헉헉대며 올라가려니 패러 이륙하는 장면을 구경하겠다고 따라 오르던 낯 선 청년이 자기가 한번 져 보겠단다.


전에는 한번도 안 쉬고 오르던 산인데 안 쉬고는 안되겠기에 쉬었다 다시 출발할 때 못이기는 척 하며 청년에게 장비를 맡겼다. 그 청년도 얼마 못 가 땀을 비오듯 흘리며 헉헉대기에 장비를 다시 넘겨받아
오르려니 그 청년이 나이를 묻는다.


2/3쯤 올라가니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어르신 연세가 71세라 하니 그 청년은 입을 못 다문다.


드디어 정상- 가족들과 함께 나온 등산객들과 모처럼의 부드러운 바람에 설레이는 패러 매니아들로 정상은 어지럽다. 바람은 완전히 정풍으로 바뀌고 써멀성 바람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있다.


너도나도 바삐 이륙준비를 마친 비행자들은 기체를 허공에 뛰우자 마자 엘리베이타를 탄 듯 그 자리에서 둥실둥실 떠오른다.

 

어르신은 늘 지니고 다니시는 디지탈 카메라로 비행하는 사람마다 비행모습을 촬영하시기 바쁘시다. 늘 남들만 찍어 주시니 정작 어르신 당신 비행사진은 별로 없어 제가 찍어 드린다니 극구 사양을 하시며 내가 먼저 이륙하라고 하신다. 전에도 여러 번 찍어 주신터라 사양을 했다.

웬만큼 이륙들을 해 이륙장이 좀 한가해 지고 하늘엔 온통 울긋불긋한 기체들로 장관을 이룬다.


지금 뜨면 바람은 좋으나 잘못하면 공중충돌 사고라도 날까 겁도 나고 해서 좀더 기다리고 있는데
비행 시 늘 빨간 긴 리본을 늘어뜨리며 비행하는 독립군(?)이 나보고 먼저 이륙하란다.

떠밀리다 싶은 기분으로 이륙준비를 마치고 나니 바람이 약해져 있다. 리버스로 이륙하는 순간, 이크 창피- 이륙실패.


약 50일만의 비행이라 감이 약간 떨어진데다 역시 남에게 떠밀려서 이륙하면 안된다는 평범한 규칙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후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나무에 걸린 기체를 회수하여 재이륙하니 역시 바람이 약해 바로 고도가 떨어져 '오늘은 틀렸구나' 하다가

그래도 다시 한번.. 산에 가깝게 붙혀 릿지를 시도하니 몇번만에 어렵게 어렵게 고도가 오른다. 이윽고 정상-. 등산객들이 손을 흔든다.

오늘은 시계가 좋아 멀리 시화 방조제가 길게 바다를 가르며 대부도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월미도 앞바다가 햇빛에 반짝이고 이쪽은 인천, 저쪽은 부천, 멀리 서울 시가지 끝자락도 보인다. 아래로는 소래산 이륙장도 조그맣게 보이고- 아! 난 드디어 한 마리 새가 됐다.

이륙장 상공을 지내칠 때마다 손을 흔드는 등산객들에게 답례로 마주 손을 흔들어 주며 한참을 여유롭게 하늘 소풍을 즐기다가 보니

어느듯 착륙장에 비행자들의 차가 별로 안 보이고 어르신차도 안 보여 착륙해보니 어르신은 가시고 안 계시다.

 

나중에 어르신한테서 전화가 왔다. 착륙 후 1시간이상을 기다려도 안 내려와 그냥 가셨다며 못 기다려 미안하시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