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순 녹취록'의 언론장악 10대 예언
(미디어스 / 홍성일 / 2008-9-24)
<20세기 소년>이란 만화가 있다. 일본의 유명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인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곧 개봉 예정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0년대 후반, 동네 어린아이들이 모여 '예언의 서'라는 지구 멸망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꾸몄는데, 그것이 세기말에 실제로 실현되어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다. '예언의 서'를 만든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예언의 서'가 대한민국에서도 논픽션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6년 늦가을, 일군의 어른들(강동순 전 방송위원, 유승민 한나라당 국회의원, 신현덕 전 경인방송 대표, 윤명식 KBS 공정방송노조 위원장, 모 프로덕션의 J 대표)이 한 일식집에 모여, 대선에서 정권을 쟁취한 후 해야 할 것들을 논의하였다. 오고 가는 대화는 초등학생 뺨치게 원초적이고 말초적이다. 이른바 강동순 녹취록으로 전해지는 이 '예언의 서'는 오늘의 우울한 대한민국 방송가를 정확하게 예언했고, 더욱 무서운 것은 아직 예언 중 일부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 예언의 서'라고 부를 만한 강동순 녹취록을 다시금 살펴보는 작업은 그들 블록의 놀라운 주도면밀함에 경탄하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서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방송 새 판 짜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녹취록에서 얻을 수 있는 10대 예언을 꼽아 세 차례 나눠 살펴본다.
1. 시사 보도 프로그램 기자/PD에 대한 대대적 압박
"걔네들이 안 해. 눈치 보느라고. 왜냐하면, 추적 60분에 갖다 박은 PD들이 전부다 '정(연주)빠'거든. 시사보도,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전부다 '정빠'들 잡혀 있어.
그래서 관리자 1직급 이상 부장급 노조가 필요하다는 게 뭐냐 하면 지금 선거 앞두고 무슨 드라마가 어떻게 됐든 무슨 쇼가 코미디가 어떻게 됐든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시사보도 교양 프로그램,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PD가 누구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PD가 전부다 정빠란 말이야. 걔네들을 갖다가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부장급 이상밖에 없어요. 걔들이 어떻게 사악한 짓을 하는지 부장급 이상은 다 알거든. 그거밖에는 방법이 없어."
지난 9월 17일 늦은 밤, 정연주 사장을 대신한 신임 KBS 이병순 사장은 피의 보복 인사를 단행했다. 주요 내용은 그동안 진보적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취임을 저지했던 KBS의 인력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인사였다. 그 구체적 내용은 한국 PD 연합회가 다음날 발표한 성명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KBS PD협회장이자 본회의 회장과 방송인총연합회 회장으로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던 양승동 PD는 심의실로 인사 조치됐다. <KBS스페셜>과 <환경스페셜>을 통해 한미FTA, 유전자 조작식품 등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대변하고 알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강택 PD는 KBS 수원센터로 보내졌다. KBS 노조위원장을 지내고 최근의 '공영방송 사수 투쟁'에도 제 한 몸 사리지 않고 나섰던 현상윤 PD는 시청자센터로 발령받았다. KBS의 최우선 당면과제인 '수신료 현실화'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고, KBS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과 그 누구보다 함께 했던 최용수 PD는 난데없이 부산으로 내쫓겼다.
PD들뿐만이 아니다. 공영방송 KBS의 위신을 세우는 데 탁월한 공을 세우며 KBS의 자랑으로 자리 잡은 '탐사보도팀'은 해체에 직면할 정도의 '숙청'을 당했다. 외국에서 선진탐사보도 기법을 배워 KBS에 도입함으로써 '탐사보도팀'의 산파 역할을 한 전 탐사보도팀장은 별안간 부산으로 보내졌고, 탐사보도팀의 주축 역할을 하던 기자들이 스포츠 중계팀으로, 뉴스 네트워크 팀으로 하나 둘 뿔뿔이 흩어졌다.
수신료프로젝트팀, DTV프로젝트팀 등에서 더 나은 공영방송 KBS를 위해 일했던 기술직 직원들은 양주로, 김제로 줄줄이 지방과 벽지로 내몰렸다. 높아진 KBS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일했던 홍보팀 직원들 또한 모두 어딘가로 내쫓겼다."
2.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PD들에 대한 대대적 압력
윤명식: 지금 저기 어제 들었는데, 저기 저 드라마 PD들 지금 내사 들어갔답니다. 검찰에서.
강동순: 뭐 돈 먹은 거 있다고?
윤명식: 작가, 작가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먹는답니다. 드라마 작가들이.
J 대표: 걔들이 캐스팅하니까.
윤명식: 드라마 작가들이 탤런트들한테 돈 무진장 받아들여. 그래가지고 지금 검찰에서 내사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 드라마 작가들이 탤런트한테만 받겠어? 정권한테도 받아요. 일일연속극 보십니까? <열 아홉 순정>. 거기에 연변에서 온 아가씨 이름이 뭡니까?
강동순: 양국화.
윤명식: 양국화 아닙니까? 양극화라고 하는 정치적 레토릭을 그렇게 해서 작가한테 요청하는 거에요. 이거 한나라당에서 진짜 심각하게 보셔야 됩니다, 이거.
강동순: 그건…
윤명식: 예. 그래서 한나라당한테는 정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방송에 관심을 무진장 가지셔야 돼.
최근 예능/드라마 PD들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이루어졌다. 9월 22일 자 기사에 따르면,
"연예기획사들로부터 로비를 받은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방송사 예능 부문 전ㆍ현직 프로듀서(PD) 9명이 사법처리 대상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문무일 부장검사)는 22일 이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연예기획사로부터 소속 연예인들의 출연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이용우 전 KBS 책임프로듀서(CP)와 고재형 MBC CP를 배임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하고, 달아난 박해선 전 KBS 예능팀장을 지명 수배했다.
검찰은 또 경명철 전 KBS TV 제작본부장과 김시규 KBS CP 및 SBS 배철호 라디오국장 등 4명의 전ㆍ현직 PD들을 같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고 비교적 수수액이 적은 PD 2명은 약식 기소했다." (경향신문, "검찰, '연예비리' 방송사 PD 9명 사법처리", 2008년 9월 22일)
PD들과 연예 기획사 간의 유착은 연예 산업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시정은 마땅히 요구되는 바다. 허나, 문제는 그 수사의 시점과 수사의 목적이다. 위 녹취록은 이번 검찰의 수사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그들의 손길은 예능/드라마에도 뻗어 있는 것은 아닐까?
3. KBS 노조의 무력화
강동순: 나는 그 동네 움직이는 것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거든. 지금 정연주가 되는 거는 정해진 거지만 마지막 마지노선이라는 거는 노조를, 노조를 잡아와야 돼.
윤명식: 노조를 잡아놔야 된다구.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되거든.
강동순: 노조가 막강합니다. 내년 대선 때 노조가 제대로 들어서면 반은 정연주를 견제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게.
유승민: OO한테 내가 그 이야기 했어.
OOO한테 골프 치는데 "형, 나 노조위원장 나갈지도 몰라."
"야, 이 새끼야. 기자가 기사나 똑바로 써라. 무슨 노조위원장 나가노?" 이랬더니,
"형, 나 할 수 없이 나간다." 이카더라구.
어제 전화가 왔더라고. 내가 "야, 나갔으면 돼야 된다." 무조건 되어야 되지.
강동순: 내가 박승규를 한번 만나볼까 하다가 안 만난 게.
윤명식: 만나지 마세요.
강동순: 만나면 괜히 쓸데없이 오해를 받아.
윤명식: 절대 만나지 마세요.
유승민: 우리끼리 만날게요.
윤명식: 제가 만나기로 했어요.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강동순: 지금 KBS 노조 매우 중요합니다. 국회의원 몇 분 당선되는 것보다 KBS 노조가요. 걔네들이 쌍권총이거든요. 채널이 두 개고 그러면 뉴스가 두 개에요.
정권이 KBS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고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전 방위적 압력을 펼칠 때 KBS 노조(위원장: 박승규)는 별다른 저항을 펼치지 않았다. 그들의 논리는 정연주 사장 역시 이전 정권의 낙하산 인사였기 때문에, 공영방송 KBS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정연주 사장의 후임 인사가 또다시 정권의 낙하산 인사가 될 경우 그때에는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총파업을 벌이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사실상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후 이병순 사장이 취임 뒤 KBS 노조의 행보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그들은 "총파업투표에서 85.5%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지만 그것은 낙하산 저지 총파업투표였다.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지녔고 방송 전문인에다 도덕성에 문제가 없다면 낙하산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사실 김은구 씨도 밀실 인사 논란만 없었으면 낙하산으로 규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병순 씨는 이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낙하산으로 볼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며 파업포기 선언을 했다. (노컷뉴스, "낙하산은 과학이 아닙니다. 정치입니다." 2008년 8월 26일)
더욱이 이들은 신임 이병순 사장의 '피의 보복 인사'에 대해서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동료 조합원들이 좌천되고 뿔뿔이 흩어진 그 이튿날, '정연주 사장 퇴진,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해단식을 치르기 위해 1박2일로 선유도로 떠났다. (미디어스, "선유도 회 맛은 좋습디까?" 2008년 9월 19일)
현재 KBS 노조의 게시판은 무력화된 KBS 노조를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댓글로 가득하다. 하지만, 또한 온갖 성인광고로 도배된 KBS 노조 게시판은 얼마나 이들이 외부의 목소리에 둔감하고 자기 최면적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처럼 보인다.
4. 비판적 언론/언로를 옥죄기 위한 권력+검·경찰+사법부와의 블록 구성하기
윤명식: 아니 의원님. 정말 여러 가지로 바쁘시고 머리도 아프시겠지만 요게 저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승민: 잘 알아듣겠습니다.
윤명식: 내일이라도 손을 쓸 수 있으면…
유승민: 판사 이름이 뭐라고 해요?
윤명식: 판사는 아직 배정 안 된 것 같습니다.
신현덕: 내일 가서 좀 확인을 하셔가지고.
윤명식: 빨리 돼야 돼.
신현덕: 그럼 내일.
유승민: 요즘은 판사들이 하도 바뀌어 가지고 또 안 통하는 판사도 많고.
강동순: 돌아이들이 많아.
유승민: 젊은 판사는 좀 그런 게 있습니다. 판사들 요새 인사가 옛날하고 달라져가지고 좀 어떻게 잘 보여야 올라가는 그런 식으로 돼버려 가지고 판사들이.
강동순: 문제가 있구먼.
윤명식: 이거 반드시 해야 돼. 안 그러면 내년에. 이거 되면 정권을 찾아오는 데 일조할 수 있어.
광우병 관련 보도를 한 <PD수첩>에 대한 유례없는 검찰 조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서울 남부지법은 <PD수첩>에 정정 반론 보도 판결을 내렸다.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을 벌인 누리꾼에 대한 검찰 조사 역시 계속되고 있다. 정권의 취향에 반하는 언론/언로에 대한 검찰·사법권의 공안 정국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5.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시민사회+보수언론+권력과의 블록 구성하기
강동순: 우익 시민단체에 모니터하는 팀이 있어야 되거든. 이게 돈이 드니까는 내가 우익 시민들한테 몇 사람한테 이야기해. "모니터 그룹을 만들어라." 뭐냐 하면 뭔가 일을 모니터해야지 거기서부터 첫 단추가 시작되는 거 아니에요? 뭐가 잘못된 그것을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지 이게 비롯되는데, 그런데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
(중략)
강동순: 사실은 우익 시민단체에서 그걸 와서 시위를 해야 되요. 예? 그게 좌파들의 그 끈기 있는 투쟁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저 목동 방송회관에 와서'야, 이렇게 하려면 방송위원회 문 닫아라'하고 시위를 해줘야 됩니다. 그러면 조선, 동아에서 기사화하고. 그러면 이게 '파리, 모기 끓어서 안 되겠구나. 이게 좀 우습게 볼 수가 없구나.' 하고 인비틴으로 가는 거죠. 그런데 이런 극악스러운 것이 우리 우파한테 없다는 거죠. 그런데 이 당에서도 좀 관심을 가져주고. 물론 당에서 돈을 직접적으로 어디 지원할 수 없죠. 그러나 제가 오죽하면 저 윤명식 위원한테 우리가 저 목사님.
윤명식: 000 목사.
강동순: "한번 만나자." 그래 가지고 그 양반 한번 만나가지고 우익 시민단체에서 방송에 관심을 가져달라... 방송위에서 반복적으로 김대업 건 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그거를 제동을 현장에서 걸지 않으면,
신현덕: 그렇지.
강동순: 우리가 돈이 있지 않습니까? 김대업. 그러면 결정적인 시기에 타격을 입는다고.
윤명식: 그렇죠.
강동순: 예? 그래서 좀 의원님. 그, 계속 우리 문광위원 간사가 이제 저기 최OO 의원이 있는데, 그래서 그 양반한테 그랬어요. 우리 정기적으로 만나서 얘기를 해야 된다. 2기 때는 서로 헐뜯고 말이야. 우리 가끔씩 바쁘시더라도 조찬을 하더라도 서로 만나서 서로 이게 전환이 있으면 서로가 오고 또 당에서 이렇게 좀 해달라고 하면 우리가 또 그걸 받아서 해야 되고. 또 우리 애로점이 있으면 당에서 이해도 해주시고 지원도 해주시고. 물론 이제 통신논리에 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어. 그런데 지금은 뭐 패싸움하는데 그거 따질 수가 있습니까?
보수적 시민단체와 보수적 종교 세력이 자본을 매개로 결합하고, 자본을 대준 보수적 권력과 유기적 블록을 형성하는 가운데 여론이 제조된다. 제조된 여론은 다시 조선과 동아로 대표되는 보수적 언론과 결합해 파급력을 높인다. 다음의 기사는 보수적 여론 제조의 선순환 구조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중도·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언론 연합단체가 탄생한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회,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등 11개 중도·보수 시민단체는 28일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미디어선진화국민연합(가칭)' 발기인대회를 열고 "9월 말까지 정식 창립대회를 열고 가을 정기국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략)
미디어연합은 향후 전개할 주요 정책으로 ▲MBC 'PD수첩' 왜곡 보도에 대한 전 국민 소송 ▲좌파 언론단체의 확성기 역할을 하는 KBS '미디어포커스' 폐지 ▲KBS와 MBC의 기형적 경영구조 개혁 ▲뉴스저작권 보호 ▲유료 콘텐츠시장 활성화를 위한 유료 신문과 주·월간지에 대한 대대적 구독운동 ▲포털의 언론권력화 해소 ▲IPTV시장의 공정성 확보 및 활성화 정책 등 10가지 장·단기 과제를 제시했다. 미디어연합은 또 좌파 언론단체가 매체 비평지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 맞서기 위해 중도·보수 세력의 시각을 담은 매체 비평지 창간도 추진키로 했다. (하략)" (조선일보 "얼치기 좌파(左派)에 점거당한 언론정책 바로 잡자" 2008년 8월 29일)
6. 전 방위적 압력과 더불어 '공정성' 규제 장치 마련
"우리는 안에서 머리띠 두르고 조끼 입고 머리 빡빡 깎고 이거 '물러나라.' 이거는 못하고 언론플레이를 하려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노동조합 이름을 KBS 공정방송 노동조합이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하는 소리는 공정방송 하는 이야기처럼 들릴 거 아닙니까? 밖으로 나가면요. 그게 지금 고법에서 이기면 이제 내년 선거 때 아마 큰일을 할 겁니다."
언론이 공정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으로서의 공정성과 현실로서의 공정성은 구분해야 한다. 이해 당사자를 충족시킬 공정성의 기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부분 공정성은 현실의 세력관계의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나 권력을 갖는 이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공정성을 재단하곤 했다. 기득권 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는 진보적 공정성에 대해 경직된 태도를 심어주었다. 기득권을 위협하고 불안정하게 하는 보도는 불공정한 것처럼 비치기 일쑤였다.
위 녹취록은 앞으로 있을 공정성의 이름하에 언론에 가해질 전 방위적 규제를 보여준다. 이미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에서 공정성은 규제를 위한 효과적 장치로 입증되었다. 박명진 방통위 위원장은 PD수첩에 대해 "이리저리 불려다니지 않을 팁을 드릴까요? 공정성을 지키시면 됩니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더욱이 박명진 위원장은 지난 2004년 탄핵 국면 때, 한국언론학회장으로 동 학회의 <대통령 탄핵 관련 TV 방송 내용 분석> 보고서가 일으킨 파문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이 보고서는 탄핵 방송 보도에 대해 국민의 의견과는 거리가 있는 '아무리 느슨하게 보아도 공정하지 못했다'란 보수적 결론을 내려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더욱이 최근 박 위원장은 공정성과 관련하여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지,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11월 중에 "공정성 심의 규정이 모호하다는 논란과 관련해 외국 사례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정성 기준을 구체화한 최종 보고서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무래도 이 보고서는 박명진 위원장의 전례(<PD수첩>, <탄핵 보고서>)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보수적인 공정성 개념으로 채워질 공산이 높다. (보수적인 공정성 잣대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앞서 그녀가 했던 공정성 개입이 그 정당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채택해 방송사에 대한 규제 장치로 마련함으로써, 방송에서 이루어질 진보적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꼭 박명진 위원장의 개인적 의지만으로는 보기 힘든데, 이미 강동순 녹취록에서도 공정 방송을 통한 언론 통제 의지가 엿보이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 또한 지난 9월 2일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커지고 있다"면서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 수준이 매우 높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공정성을 중심으로 보수 진영 내의 일관된 목소리가 결집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방송사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움츠릴 것이며, 우리 사회의 진보적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받을 것이다.
7. 소통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
"내가 창, 창 그한테 내가 그 이야기 했거든, 천만 표 이기면 어떠냐? 그러니까 도지사 불러다가 공갈쳐라. 다음에 네 저기 공천은 내가 하니까 뭐 알아서 하라. 그 한마디만 하라고 내가 그랬거든.
그런데, '야, 그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그러더니… 그런데 다음에, 다음에 선거 있잖아요. 다음 선거는 무지하게 중요한 게 국회의원 두 번 자기가 공천하지. 다음 임기 대통령, 그다음에 그 저기 시장, 군수 자기가 또 하지. 무지무지하게 힘센 대통령이에요. 저기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야. 다음 대통령은.
5년 사이에, 5년 사이에 국회의원 두 번 자기가 되자마자 바로 공천하고 말년에 또 공천해야 되니까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야, 이 사람은. 그러니까 다음에 굉장히 중요한 거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레임덕은 단순히 권력자의 임기가 끝날 때 찾아오는 쓸쓸한 권력의 비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임덕은 권력자가 집행한 의사 결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후발 주자들은 기존 권력자의 정책 집행을 평가해 그와 차별적인 위치를 선점하려 한다. 평가의 기준은 여론이 될 터이다. 이전 정부의 과오를 여론으로부터 취합해 자신을 이전 정권과 적극 차별화하며,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 시스템 하에서 선거는 유일하게 제도화된 국민과의 소통의 장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레임덕이 없다. 공천권은 국민에게 쥐어진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손에 쥐어 있다. 무려 두 번이나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겉으로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지만, 실상 소통이 잘 되지, 혹은 소통을 잘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공천권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국민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는 요원한 일이 된다.
이미 선거를 통해 압도적으로 의회를 장악하고 있고, 차기 선거에서도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이명박 정부이다. 다들 권력자의 눈치 보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미 한차례 국회의원 공천권을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소란이 있었지만, 그 최종 승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뼈저리게 공천권의 무서움을 절감했으리라. 임기 말에 있을 또 한 번의 공천권 행사에 눈과 귀가 쏠릴 터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 여론은 2차적 문제로 전락한다. 지나친 자신감은 브레이크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불행이든 혹은 다행이든 간에 말이다. 국민과의 소통 부재는 대통령 당선에 뒤이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되는 순간부터 쉽사리 예측할 수 있는 문제였다.
8. 정치의 미학화
윤명식: 제가, 여기서, 지난번에 어떤 한나라당 의원님한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저 신 사장은 이제 기자출신이지만, 그, 의원님들이 당에서도 이렇게 언론인을 저기 대할 때요. 지난번처럼 기자를 홍보 쪽에 쓰면 안 됩니다. 저기 저 누구죠?
강동순: OOO.
윤명식: OOO씨. OOO씨가 그 홍보 그거 기획하면서 망한 겁니다.
강위원: 둘 다 써야 돼. 기자도 쓰고, PD도 써야 되는데...
윤명식: 그러니까 기자들은, 기자들은,
강동순: 로직한 면에서 잘 따지는데,
윤명식: 예, 기자들은 트래지딕(tragedic)
강동순: 감성적인 면에서.
윤명식: 전략 면에서는 쓰되 전술 면에서는 PD를 써야 돼요.
강동순: 지금은 하나님을 믿어도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가. 그거를 성경으로 입증해준다고 믿는 게 아닙니다. 어떤 성당의 그냥 어마어마한 정문이나 또 어떤 아주 아름다운 뭐 찬송가나 성가. 이런 걸 듣고서 거기서 감성적으로 믿기 시작하는 거죠. 난 정치도 이제는 감성의 시대라고 봅니다.
신현덕: 그래요. 그래.
강동순: 노무현이 같은 엉터리 놈이 된 거는.
윤명식: 스트래티지(strategy)는 기자를 활용하시고 택틱(tactic)은 PD를 쓰셔야 됩니다.
이미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이명박 캠프는 감성적 전술을 적극 차용해 효과를 보았다. 순대 국밥을 먹던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광고는 그 정점이었다. 정권 창출 후 행보도 일관적이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은 정치의 미학화가 빛을 발한 곳이었다. 그는 부지런하게 올림픽 무대를 뛰어다녔고, 그에 힘입었는지 조금씩 지지도가 올라가기도 했다. 스포츠의 감동을 정치적 감동으로 바꾸려 했었다. 그가 이야기한 747 공약(세계 7위 경제, 국민소득 4만 불, 7% 성장)을 스포츠에서 먼저 달성했다(세계 7위)고 좋아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시대착오적인 대대적 개선 퍼레이드까지 열 정도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올림픽이 끝나고 그의 지지율은 다시 내리막 선을 타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기분은 좋아졌지만 정작 자신들의 손에 남는 것은 없었다. 정서적으로는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물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삶의 궁핍함은 더욱 커졌다. 고용 불안정, 물가 불안,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현실은 서민의 삶을 더욱 옥죄고 있었다.
지지율 반등을 기대했던 국민과의 대화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은 치명타였다. 청와대는 스포츠 영웅 장미란을 패널로 출연시키고자 했지만, 좌절되었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여러 논란거리를 남겼는데, 담당 PD에 대한 외압론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기자협회보, "KBS '대통령과의 대화' 후유증" 2008년 9월 11일).
위 녹취록을 따른다면 '전술적으로' 운용 해야 할 PD가 말을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리만큼 통제된 대통령과의 대화(프레시안, "검열·통제, 무늬만 대통령과의 대화였다", 2008년 9월 16일)를 통해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달리 말하면, 이명박 정부는 로직 없는 트레져디(tragedy)였다.
촛불 국면에서 그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 깊은 상념과 후회에 젖었다는 감수성은 높이 살만하다고 하겠으나, 그와 같은 감성만으로는 현실 정치가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정치는 자꾸만 자꾸만 뒤처지기 마련이다. 이를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감성만을 내세운다면, 이는 정치의 미학화요, 정치의 후진화이다.
9. 역사 거꾸로 세우기
강동순: 내가 또 중요한 얘기 좀 해야겠는데 뭐냐 하면 아주 유명하면 뭐 유명하다고 유능한 어떤 드라마 PD가 있데. 김OO 알지? 김OO?
J 대표: OO이, 김OO. 아, 그 유명한,
강동순: 국제상도 많이 받고.
J 대표: 독종.
강동순: 그러데 OOO 하고 뭐 같이 해가지고 예전에 밥을 먹었더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다큐드라마를 만들겠데.
(중략)
강동순: 14연대 뭐 뭐. 이게, 또 그분이 그대로 그려도 돼. 소위 말이야 대구, 대구 폭동 거기서부터 연루가 되고, 그런 거 그대로 넣어. 아니 우리 이 나라에 친일파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게 그 사람들 이야기는 이…. 저기 OOO 하고 김OO씨 이야기가 알잖아?
윤명식: 네.
강동순: 내가 그대로 차분하게…. 하면서 아주 감동적인 역사의 기록을 하나 남기겠다 이거야. 그러면서 박근혜 대표나 이제 박지만 어느 분이든 그걸 그 저작권 개런티를 해줬으면 하다가 다른 사람이 뺏어 가면 그것도 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좀.
J 대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강동순: 굉장히 할 만한 거 아니야?
J 대표: 할 만하지. 지금은.
강동순: 어떻게 보면 이승만이가 건국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박정희는 응? 이 나라를 빈곤에서 해방시키고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든 양반이라고. 응? 그런데 그 사람을 우상화 시켜서도 안 돼. (중략) 공과를 그대로.
윤명식: 있는 그대로 해도 플러스에요.
광복절을 건국절로 재개념화 하면서부터 새 정권 하에서의 역사는 과거의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라, 논쟁의 역사로 탈바꿈되었다. 이와 같은 논쟁은 역사에 대한 생산적 해석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큰 맥락에서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도가 순수하지 못해 소모적인 측면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꿀 경우 광복 속에 의미화 되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점령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한국의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역사가 자리 잡는다. 당연지사, 친일의 문제 또한 사라질 터이다. 강동순 씨가 묻는 "우리 이 나라에 친일파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어?"란 질문은 친일에 대한 죄의식을 깊숙이 묻어 두려는 현 기득권의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지난 7월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나 결국 9월 16일 이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그는 법안 발의의 순수한 취지와 목적이 일부에서 왜곡되고 16, 17대에서도 발의됐을 때는 관심조차 없다가 지금에 와서 논란이 된 데 대해 유감스럽다"면서 "그동안 건국절 논란으로 인해 고통 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며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개혁추진이 발목 잡혀선 안 된다"며 법안 철회 의사를 밝혔다.
비록, "8월15일은 1945년 해방과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우리에게 모두 소중한 기억임에도 그동안 광복만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건국이념과 정신은 지난 60년간 푸대접을 받아왔다"며 "광복과 더불어 건국도 중요한 역사로 기억돼야 한다는 자성 속에 개정안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개정안 발의의 취지를 설명하긴 했지만(파이낸셜 뉴스, "정갑윤 의원, 건국절 개정안 발의 철회", 2008년 9월 16일), 시민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그의 역사관은 사뭇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논란은 이로써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현대사 전체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한나라당은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교과서 수정 의지를 피력했다.
한나라당의 윤상현 대변인은 22일 논평을 통해 "기적의 대한민국 60년 현대사를 실패한 역사라며 자학했던 좌파정권이 퍼뜨린 삐뚤어진 역사인식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역사 교과서 수정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해방 후 기득권을 점해 오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이후 10년 동안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이뤄진 역사의 재해석에 커다란 불편함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지난 10년의 민주화의 성과가 그들에겐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삐뚤어진 역사"로 보였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당장 내년부터 전면적인 역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다음의 기사를 참조해 보자.
YTN, "근현대사 교과서 257건 수정 검토", 2008년 9월 22일
[앵커멘트]
'좌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수정돼 내년부터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근현대사 교과서 6종 2백57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성문규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교육과학기술부가 검토를 의뢰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입니다. 고등학교 2~3학년용으로 지난 2002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가운데 모두 257곳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부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는 분단 상황을 이용해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등 대한상공회의소 등 민간단체와 국방부와 통일부 등 정부부처들이 지적한 부분들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출판사별로는 금성출판사가 105건으로 가장 많았고 천재교육과 중앙교육이 뒤를 이었습니다.
[인터뷰:김동원,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과정기획과장]
"논란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국사편찬위원회 등 권위 있는 기관에 검토를 의뢰할 예정입니다."
지난 7년 동안 같은 내용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공급해온 출판사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교과서 내용이 바뀌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녹취:출판 관계자(음성변조)]
"저희는 사실 이념적인 것보다는 되도록이면 사실적인 것을 실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것은 필자 분들이 논의를 통해서 결정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국정교과서가 아닌 이상 교과서 수정에 대한 최종 권한은 출판사에 있지만 교과부의 요구가 있을 경우 거부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국사편찬위원회의 분석 결과가 나오는 다음 달 말까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할 지를 최종 결정해 해당 출판사에 수정 의견을 통보할 예정입니다.
YTN 성문규[imsmk@ytn.co.kr]입니다.
더불어, 방송을 통한 보수적 역사의 픽션화 또한 진행될 것이다. 대중적 기억을 상대로 방송을 무대화하며 치열한 좌와 우의 기억의 정치가 진행될 것이다. 아직 이 예언은 실현되고 있지 않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벌어진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 논란, 교과서 이념성 논란에 비추어 본다면 머지않은 시간 내에 곧 현실화될 것이다.
10. 하얀 백지 위에 방송판 다시 짜기
윤명식: 저기, 저기 의원님. 지금 민심은요. 옛날에는 사실은 동네, 그 어떤 집 마당에서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참 힘이 있는 얘기거든요. 아무것도, 무식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고 그렇게 치부할 게 아닌데, 왜냐하면 그게 표니까. 옛날에는 사람들이 난 체하는 사람이 "아이, 이거 저기 어떻게 됐대." "누가 그래?" "신문에 났어." 그러면 그게 최고의 이야기였거든요.
유승민: 믿는다는 이야기죠.
윤명식: 요즘에는 사람들이 모이면 "텔레비전에 나왔어." 그러면 그게 또 최고에요. 텔레비전이 그렇게 중요하거든요. 텔레비전이.
강동순: 신문은 대학생도 안 봐요. 요새는.
윤명식: 신문은 어차피 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방송에 "텔레비전에 나왔어." 그러면 그걸 다 믿는 사람들이 사실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유동표 거든. 그래서 방송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까 의원님 말씀하신대로 한나라당에서는 정말 방송에 신경 써야 합니다.
(중략)
강동순: 정말로, 이제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됩니다. 내가 누구 숨으면 되지. 야,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얘기가 있는데 빈대가 나오면, 빈대가 많으면 빈대를 잡을 수가 없는 거야. 응? 새로, 새로 건물을 새로 지어야지. 방송이 그렇다는 거에요. 지금 최문순이나 정연주나 이거 껍데기야. 아무 힘도 못 씁니다. 저거 되어 봐야 껍데기에요.
이미 YTN과 KBS에 대한 낙하산 인사 투하로 방송 장악 시도는 노골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그 선봉에 서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여기에 덧붙여 MBC 민영화 추진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고 KBS 2 역시도 민영화 추진이 시도될 것이다(시사저널 985호, KBS 2, MBC '민영화 태풍' 예감, 숨죽인 여의도).
코바코의 해체는 그 정점인데, 광고 수주를 코바코가 각 방송사를 대행해 그 이문의 일부를 종교방송, 지역 방송에까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각 방송사의 자율에 맡기게 된다면, 각 방송사는 사활을 걸고 시청률에 집착하게 될 것이고, 민영화된 MBC와 KBS 2는 더 이상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다(노컷뉴스, "민영 미디어 렙은 자본에 의한 여론 지배 의도: 코바코 해체 방송 공공성 위한 방파제 무너질 것" 2008년 9월 22일).
결국, 우리나라의 방송은 3개의 SBS와 한 개의 국영 방송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영방송에 비해 민영방송이 훨씬 통제가 용이하다고 그 속내를 비춘 바 있다. 더욱이 신문의 방송 겸영 허용 움직임은 최문순 국회의원의 지적대로 "정부·여당에 유리한 논조를 펴는 신문사들에 방송을 허가해 정치를 좀 더 편하게 하려는 사고방식"이다(데일리안, "최문순 '방송이 사회 문제 관심 안 갖게 하려는 의도'" 2008년 9월 22일). 하얀 백지 위에 그려질 방송의 새 판 짜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상의 10가지 예언은 일부는 실현되었고, 일부는 진행 중이다. 되돌아 본 강동순 녹취록은 너무나 정확하게 오늘의 방송 판을 예언하고 있었고, 또한 예언 중이다. 그만큼 이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녹취록의 말미에 윤명식은 "고맙습니다. 오늘 저 영광입니다. 근데 의원님 한 배입니다. 한 배입니다. 좌초되면 저희는 죽습니다. 좌초되면 저희는 죽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예언을 현실화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신 예언의 서"에 등장하는 인물조차 무대 위의 배우에 불과할 뿐이다. 무대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굉장히 강력한 힘으로 무대 위 배우를 연출하고 조종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 이들은 배역을 교체해 가며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것이다. 여기에 맞서야 함은 이들 예언이 모두 실현되었을 때 맞이하게 될 우울한 현실 때문이다.
"신 예언의 서"가 그리고픈 현실은 모든 비판과 개입이 금지되어 있는 소통의 일방통행로이다. 그것은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획일적 전체주의의 판본이다. 오늘 우리는 전체주의로 갈 것인가 민주주의로 갈 것인가를 놓고 중요한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어떠한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자유의지이자 책임이며 의무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손을 놓고 있다간, 정작 나의 일이 될 때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위원
(http://blog.mediaus.co.kr/entry/‘강동순-녹취록’의-언론장악-10대-예언-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