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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봉태 변호사가 부산 고법 판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들에게 민사소송법 조문을 짚어가며 판결 결과에 대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
ⓒ 이국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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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부산고등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이승영 부장판사)는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원폭 피해를 본 징용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제소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재판에서 '일본에서 확정 판결된 사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번 재판은 일제 '전범'기업을 상대로 피해국 한국 법원에 제기된 최초의 재판으로, 향후 대일 과거사 소송의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재판 결과의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원고 측 변호를 맡은 최봉태 변호사를 만나 이 판결에 담긴 의미와 재판 결과에 대한 원고 측 견해를 들어보았다.
- 실망이 큰 것 같다. 우선 이번 재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재판은 일제 피해에 대해 피해국인 우리나라 법원에 최초로 제기된 재판이었고, 피해국가에서 나온 최초의 고법 판결이다. 일본, 미국, 중국에서도 재판이 벌어지고 있지만 피해국의 고법 판결로는 최초로 나온 역사적 판결이다. 그런데 도저히 피해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설마 전범국 일본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참 당혹스럽다."
- 재판부의 논리는 일본에서 나온 미쓰비시 관련 확정 판결 결과를 우리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시효문제를 언급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수차 준비서면을 통해 주장해 왔다. 재판부로서 일본 사법부의 결정에 일종의 동료의식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본 판결이 그동안 일제 피해자들의 권리를 봉쇄해 온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가장 반 헌법적 판결이라 할 수 있다."
"2월 3일, 사법 치욕이자 대일 굴욕의 날로 기록될 것"
- 무슨 말인가. 좀 더 설명해 달라.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 3호에는 제3국의 판결이라도 할지라도 '그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밖에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을 때에만' 효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예로 지금까지 일본에서 이뤄진 판결은 한일병합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일제 강제동원 역시 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집행된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사법부가 받아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번 고법 재판부의 논리대로라고 하면 우리는 아직도 모두 일본 국민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일제시대엔 모두 아버지, 할아버지가 창씨개명 하고 일본국민으로 돼 있었는데, 그러면 언제 우리가 일본 국적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일본국적에서 탈퇴하는 절차를 거친 적 있었는가? 한마디로 이번 고법 판결은 우리 국민이 다 일본 사람이라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3·1운동으로 성립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한일병합을 합법적이라고 보아 우리 임시 정부를 '반국가단체'로 보는 일본 판결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너무나 치욕적이고 굴욕적이다. 나중에 역사가가 기록할 때 2월 3일 판결은 과거 인혁당 사건보다도 더한 사법 치욕이자, 대일 굴욕의 날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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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 끌려가 강제노역 중 원폭 피해를 입은 재판의 원고인 이근목 할아버지가 재판 결과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
ⓒ 이국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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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도 판결 나면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가?”
- 원고들 표정을 보니 역시 충격이 큰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인가?
"그렇다. 이 판결은 쉽게 말하면 일본에서 독도가 일본의 땅이라고 확정판결이 났으면 그대로 한국에서도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말이 되느냐?
통상적인 거래관계의 판결이라면 한·일간의 판결을 서로 승인하는 것은 문명국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판결을 그 본질도 고려하지 않고 피해국 한국의 법원이 가해국의 판결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에도 반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성립한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울러 우리 헌법은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있는데, 이는 침략전쟁으로 발생한 법익 침해를 방치해서는 안 되며, 그 손해를 정당하게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헌법적 의미를 무시하는 반헌법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법과 한국법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헌법 정신에 있다. 대표적으로 '천황(일왕)'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공화국이 우리 헌법 제1조 1항이다."
- 판결이 이렇게까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앞서 여운택씨 등 일제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2008년 4월 3일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법원의 확정 판결을 승인할 수 있다고 해 기각한 바 있는데, 이번 재판 역시 그때 판결을 따라간 것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대해 헌법적 검토가 제대로 있었다면 이번 판결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신일본제철의 담당변호인단과 공조를 충분히 하지 못한 잘못은 우리 변호인단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반성한다."
문서 수령도 거부하며 시간 끌던 미쓰비시, '아리랑 3호'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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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용이란 이름으로 강제로 끌고온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징용 영장을 교부하고 있는 모습 |
ⓒ 한국1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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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판결은 오히려 1심 판결보다 후퇴한 결과로 보이는데.
"그렇다. 그중 하나를 지적하자면 1심에서는 태평양전쟁 전의 미쓰비시와 전후 미쓰비시에 대해 사실상 같은 회사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이번 판결에서는 이것마저도 번복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웃기는 게, 그동안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한국법인을 찾아가 한번 만나려고 해도 전쟁 전 회사와 다르다며 만나주지도 않던 미쓰비시가, 아리랑 3호 위성과 관련해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모든 관련문서 수령을 다 해왔던 사실이다. 문서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이번 항소심의 항소장 역시 회사가 다르다고 수령을 거부해 지금까지 국제송달까지 했었는데, 이런 잔꾀를 한국 법원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가?
특히 재판을 9년째 끌어 온 가장 큰 이유는 개인청구권에 관한 소멸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본 판결은 한일협정 및 일본의 국내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반해 우리 정부는 2005년에 40여 년 만에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할 당시, 반인도적 범죄와 관련해서는 한일협정과 무관하다며 일본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법적 견해를 명백히 밝힌 바 있다.
당시 민관공동위원회의 민간인 위원장이 현재 이용훈 대법원장인데, 이번 판결은 이런 민관공동위원회의 권위 있는 공식적인 법적 견해조차 무시하고 일본 판결을 따라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0년 '시효' 적용하면 64년 지난 일제 과거 청산은 불가능
- 10년이라는 시효도 언급했는데?
"얼마 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다'라는 일본법령을 최초로 발견한 재일동포 3세 이양수씨와 함께 '일한회담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회' 고다케 히로코 사무국장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데, 시효문제로 1심에서 기각된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더라.
아니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판례가 계속 발전해 와 본건과 같은 전후보상 재판에서는 최소한 시효문제로는 기각하는 판결이 어려워져 한일청구권 협정을 핑계로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는 마당에, 가해국도 아닌 피해국가의 법원에서 시효문제를 따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고다케 히로코 사무국장이 즉시 이번 담당 판사한테 직접 편지까지 써서 보낸 일이 있는데 담당 판사가 그 편지나 제대로 읽어 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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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다케 히로코 '일한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회' 사무국장이 지난 22일 시효 문제에 관련해 미쓰비시 피폭 징용 피해자 재판을 담당하는 부산 고등법원 담당 재판부에 쓴 편지. |
ⓒ 이국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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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의 논리대로 하자면 원고들이 피해를 본 시기인 1944년~1945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났다는 주장이어서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과연 일제 피해자들이 그동안 '권리 위에 잠잔 자들인가' 하는 것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혼란기,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권리회복의 기회마저 철저히 차단당해 온 상태, 우리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우리 헌법정신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가해국도 아닌 우리 사법부가 '10년'이라는 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니, 참 어이가 없다. 이렇게 되면 이미 10년이 아니라 해방 64년이 더 지났는데 더 이상 대한민국 땅에서는 일제 과거청산은 불가능하다는 것 아닌가?
인혁당 사건이나 광주 5.18항쟁, 최종길 서울대 교수 사건 등 과거 정권하에서 이뤄진 수많은 사건들도 과거청산 차원에서 새로 판결하고 있는데, 대일 과거 청산에 10년이라는 시효를 잣대를 들이밀지는 정말 몰랐다."
- 잠시 다른 질문인데, 어떻게 부산에서 재판을 시작하게 됐나?
"2000년 당시 미쓰비시 연락사무소가 부산에 있어 부산지방법원에 제기하게 됐다. 그런데 그 뒤로 미쓰비시가 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한국 미쓰비시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해 문서수령마저 거부하고 말았다. 그러는 통에 일일이 번역해 본사에 국제송달을 하느라 6개월 동안 허송세월해야 했다. 미쓰비시의 행태를 보면 재판을 지연시켜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돌아가시도록 만들겠다는 심보처럼 느껴진다."
"마치 한국법원 아니라 일본법원 같다"
- 상고 여부는 어떻게 되나?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사법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번 판결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태도인 만큼 피해자들의 의사에 따를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판결만 보면 마치 한국법원이 아니라 일본법원 같다."
- 9년을 끌어온 사건인데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이번 재판에 대해 일본에서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을텐데, 어떤 심정인가?
"어젯밤에 하도 억울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 사건을 맡을 때 일본 변호사들이 도저히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아 한국의 사법부를 믿고 재판을 해 보자고 해서 제판을 시작했는데 이 재판 결과를 어떻게 전달할지 걱정이다. 일본에서는 번번이 패소해 피해국인 한국에서 열리는 재판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솔직히 일본 변호사 보기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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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고법 항소심 기각 판결 직후 낙심한 표정의 원고 신긍수, 이근목 할아버지가 주위의 부축을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
ⓒ 이국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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