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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김장수마저 개탄을 했을까? 정권바뀌었다고 싹 안면몰수?

by skyrider 2009. 5. 31.

군대가서 총 들지 않을 자유, 당신은 알아줬다
['바보 노무현'이 남긴 것 ③] 소수자에 대한 소신 고집, '대체복무제'
09.05.31 21:31 ㅣ최종 업데이트 09.05.31 21:31 임재성 (blueljs)

  
노무현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대체복무제도를) 수용해야 한다는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군이나 국방부, 병무청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국방부 등의 입장이 최종적인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보겠지만, 국방부 등이 아직 최종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냥 대통령 개인의 소신으로 두고 있다.

 

국회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필요하다면 국방부 등을 설득하겠다. 그러나 당장은 국민적 논의가 중요한 것으로 보이니, 좀 두고 보면서 했으면 좋겠다. 어느 경우에나 국방력 약화나 군 복무자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정치적 결단은 좀 미루면서 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같이 노력하도록 하자."

 

2005년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부 병영문화 개선대책 위원회'의 대통령 보고 자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후 국방부는 2007년 9월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해주겠다는 '역사적'인 발표를 하게 된다. 청와대의 의지가 강력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기에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방부는 이 일에서 손을 뗐다. 2008년 12월 24일 국방부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백지화'이라고 표현했다.

 

필요하다면 국방부를 설득하겠다

 

노무현 정권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평화운동을 하는 내 입장에선 이라크 파병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시선이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이라크에서 피랍된 김선일씨가 사망했을 때에는 "전범 노무현"이라고, 아니 그보다 훨씬 심한 표현도 써가면서 그를 비판했다.

 

그럼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이 문제의 민감성과 대통령이라는 위치로 인해 온전하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광복 이후부터 60년 넘게 이어진 병역거부자들의 처참한 감옥행을 종결하고자 노력했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권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김대중 대통령은 이 사안을 양심적 병역"기피"라고 지칭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었다. 그러나 앞선 발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평소 스타일대로 뚜렷한 입장을 밝혔다.

 

"꼭 필요하다면 국방부 등을 설득하겠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만큼 오해와 왜곡이 많은 사안이 또 있을까? 국제사회에서는 한 나라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지만, 군사주의적인 한국사회에서는 여기저기서 뭇매 맞기 십상인 병역거부문제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인 단호한 모습.

 

이 모습이 채 평가받기도 전에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떠났다. 진정 이렇게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다.

 

빨갱이보다 못했던 병역거부자

 

  
해방 후 60여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감옥으로 보냈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05년 6월 7일, 문상혁 청년인권연대 대표가 입영 통보를 거부한 채 국회 앞에서 입영통지서를 찢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병역거부

 

한 사회의 인권은 그 사회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 보면 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의 위치가 가장 멸시받았던 '빨갱이'만도 못했다고 평가한다. 광복 이후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계속 이어졌지만, '빨갱이'라고 불렸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해결된 이후인 200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공론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1만 명이 넘은 이들이 자신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이후였다.

 

병역거부자 중에서는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도 보낸 이들도, 심지어 총을 잡으라는 구타에 목숨을 잃은 이들까지 있었지만 이들은 침묵 속에서 견뎌야만 했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사회적인 이단시, 군대와 병역이 신성화되어온 한국사회의 군사주의, 군대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이 문제는 인권사안으로조차 인식되지도 못했다. 1년에 수백 명의 젊은이들을 감옥에 보내면서 그것이 문제인 줄도 몰랐던 것이다.

 

2000년 이후 사회운동이 등장했고, 일부 개혁적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주목했지만 한국사회의 강고한 군사주의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역시 국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상의 입법 권고를 하면서 이 문제를 본인들이 해결하지는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초지일관 불가방침을 반복할 뿐이었다. 또한 한국사회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빨갱이만도 못한 병역거부자'의 인권은 그것을 옹호한다고 정권의 지지도가 상승하지도,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지도 못하는 이슈였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2007년 9월 18일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이행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 이 발표 이후 또 다시 좌파정권, 빨갱이정권, 국가의 근본을 부정하는 정권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인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95% 반대한다 하더라고 지켜져야 하는 것. 많은 이들의 눈물과 노력으로 이룬 성과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음은 분명하다. 이제 일제 치하에서 할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군사독재 정권에서 아버지가 감옥에 갔음에도, 민주화 정권 밑에서 아들까지 감옥에 가는 비극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노무현과 이명박, 병역거부야 말로 이 둘을 나누는 기준

 

  
구속집행정지 명령을 받아 일시 석방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27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이강철

 

2007년 국방부 안은 이랬다. 현역 복무의 2배 기간을 합숙 복무로, 사회복무 분야 중 최고난이도의 업무를 대체복무로 병역거부자들이 수행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처벌이라고도 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감옥행이 끝날 수 있다는 것에 뭉클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그러한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2009년 3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던 대체복무제는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법원은 국방부의 발표를 믿고 재판을 연기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입영을 미루며 기다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결론이 난 병무청의 연구용역을 결과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여론조사 결과만을 따다가 대체복무제 시행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 '백지화' 발표 이후 미루어졌던 재판이 속속 잡히고 있으며, 올해 안에 병역거부로 감옥에 수감될 이들이 천 명에 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인권과 반인권, 노무현 정권의 과오 역시 상당했지만 병역거부 사안에 있어서 대비는 분명하다.

 

이명박 정권은 절대 이해 못할 단어, 인권과 민주주의

 

오죽하면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자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방부장관이었던 김장수조차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개탄했을까. 자신이 장관 재임 시에 결정한 일을, 한 나라의 국방부가 결정한 일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싹 바꿀 수 있냐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 비즈니스 프렌들리만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머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동네 개가 죽어도 이렇게는 못한다며 분양소를 에워싼 '닭장차'에 발길질을 가하는 시민들에게 '소요 사태'가 우려된다며 완전 무장한 경찰을 배치하는 천박한 인식으로는 결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소수자를 포용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UN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UN권고를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를.

 

고집쟁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평가가 아닐까. 종로 나오면 당선인데, 전라도 나오면 당선인데 끝끝내 부산에서 떨어진 고집쟁이. 이후 분명히 평가받겠지만 당시로는 별 생색도 나지 않을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반드시 자신의 임기 내에 해결하겠다는 고집쟁이. 결국 그는 이번에도 고집을 부렸고, 그 고집이 다시 수많은 이들을 울리고 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당신의 마음과 노력을 잊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