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자료창고

우리 은평에도 "과천 품앗이" 배워보면 좋겠네....(프레시안 펌)

by skyrider 2009. 7. 12.

과천에는 품앗이가 있다"

[한국에서 살아보니·마지막 회] "'만남과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요"

기사입력 2009-06-09 오후 2:17:46               김영희 독자

 

다른 지역에는 아직 흔하지 않지만 과천에서 활발한 것이 있다. 과천 품앗이다. '농촌도 아닌데 웬 품앗이?'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품앗이다. 과천이라는 소도시에서 행해지는 현대적인 품앗이다. 나한테 있는 능력이나 물품을 원하는 회원에게 제공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다른 회원한테서 받는다.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것은 맞는데, 주고받는 사람이 꼭 일치될 필요는 없다.

도시에서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의외로 많다.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등 예체능 지도, 수학, 논술, 독서, 외국어 등의 학습지도. 컴퓨터 강습, 생태체험학습, 요가, 아기돌보기, 피부 관리, 심리치료, 노동 상담, 사진촬영, 디자인, 전기수리, 수도배관 수리, 차량운전제공, 한지공예, 천연화장품, 옷 만들기, 가방 만들기. 비즈 만들기, 음식 만들어주기. 케잌이나 과자 만들어 주기, 시장 봐주기, 심부름하기, 청소해주기, 큰 세탁기로 빨래해주기, 집에 있는 물건 빌려주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주고받는다.

나는 품앗이로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가끔 다른 회원이 만든 김치, 장아찌 같은 식품이나 반찬도 사먹는다. 특별한 날에는 케잌 만드는 회원에게 케잌을 부탁 했고, 여름에는 천연화장품 만드는 회원한테 모기퇴치용 로션도 샀다. 내가 가기 어려운 시장은 시장 봐주는 회원에게 부탁한다. 디비디를 빌려서 보기도 하고, 빵 기계를 빌려다 집에서 빵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 집 식탁의자 천 갈이나, 전등 매다는 일도 모두 품앗이를 통해서 해결한 것이다. 대신 나는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공원에서 반짝 찻집을 열기도 했다. 헌 자전거를 빌려주기도 한다. 앞으로는 유기농 재료를 쓴 나만의 과자를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 회원은 수학이냐 영어, 논술, 역사, 그리고 피아노, 미술 등의 학습과 예능 품을 많이 이용한다.

이러한 것을 공짜로 주고받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과천 품앗이 내에서 통용되는 화폐인 '아리'를 지불한다. 서로 공평하게 주고받기 위해서 기준을 정해 놓았다. '1시간 노동에 1만 아리'다. 예를 들어 피아노나 영어 수학 1시간 학습도 1만 아리이고, 청소나 빨래 1시간에도 1만 아리다. 이것은 품앗이의 소중한 원칙으로, 품앗이에서는 모든 노동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긴다.

김치며 케잌 같은 품도, 만드는데 들인 시간으로 아리를 계산을 한다. 다만 재료에 들어간 비용은 어쩔 수 없이 현금으로 지불한다. 회원 중에는 미용실을 하는 분도, 음식점을 하는 분도 있다. 이분들 가게에서는 머리손질이나 식사를 일정 비율 '아리'로 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거래는 현대 품앗이답게 인터넷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제공할 품이나 물건은 카페의 '주고싶어요' 난에 올리고, 필요한 품이나 물건은 '받고 싶어요' 난에 올린다. 품앗이 회원이 당장 무언가 필요할 때면 '우선 카페에 올려 봐'가 정답이다. "쌀이 필요합니다" 도 올라오고 "강아지 맡아주실 분' 도 올라온다.

하지만 이것으로 거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품을 주고받으려면 회원이 서로 만나야만 한다. 이 '서로 만나야 하는' 대목이 품앗이의 또 다른 묘미다. 품앗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과천에 오래 살아도 모르고 지낼 이웃이 품앗이 거래를 위해 만나면서 다정한 이웃이 된다. 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반갑다고 뒤에서 부른다. 돌아보면 품앗이 회원이다.

품앗이 회원들은 매달 한번 씩 다 같이 만나서 아나바다 장터도 열고 한동안 못 보던 얼굴도 본다. 한 달 동안 거래한 내역을 아리 담당 운영위에 알리는 일도 있다. 아리 담당 운영위는 이를 집계해서 통계를 내는데 작년 한해 품앗이에서 거래된 아리가 8천만 아리 정도 되었다. 이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1억 원에 가까울 것 같다. 200여 명의 회원이 거래한 것으로는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만한 정도를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 생활할 수 있었다는 점에 모두들 뿌듯해 한다.

품앗이 내에는 운영위원회가 있어서 매달 소식지를 내고, 신입회원을 위한 교육을 하고, 아리를 집계하고, 회원들을 챙기고, 이런 저런 강좌며 행사를 연다. 운영위원회는 모든 회원에게 열려있다. 시간 여유가 있는 회원이 자발적으로 운영위원이 된다. 사실 품앗이 일이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막상 운영위원이 되면 누구나 생각지 못한 능력을 발휘한다.

작년 한 해 나는 뜻하지 않게 운영위원장으로 참여했는데, 모든 운영위원들이 누구도 하지 못할 새로운 생각을 해내고, 눈앞의 일들을 다부지게 처리하는 것을 보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품앗이 회원이 되고 싶어도 마땅히 제공할 품이 없어서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품앗이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누구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우리 생활의 사소한 부분, 가령 못 하나 박는 것도 품이 된다. 품앗이에서 다른 회원의 품을 받다보면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서 내놓게 되는데 그러면서 전문가가 된 회원들이 제법 있다.

최근 경기는 나빠지고 아이들 학원비는 올라서 힘겹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분들 지역에도 품앗이가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품앗이냐'고 물었다. 나는 품앗이가 바로 나의 '대안'이라는 대답을 했다. 아직 한계는 있지만, 과천품앗이는 여전히 나의 대안이다. ("한국에서 살아보니" 연재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 "한국에서 살아보니"

<1> 고생도 훈장
<2> 피곤한 사람들
<3>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
<4> 청계산이여, 안녕
<5> "석유 안 나는 나라에서 기차를 홀대해서야…"
<6> "기억 속 푸른 하늘, 다시 볼 날은 언제쯤?"
<7> "침 뱉을 일 많아도, 길에서는 참읍시다"
<8> "아빠, 빨리 들어오세요"
<9>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식당
<10> 어른도 교복 입는 나라?
<11> "여자라서 못한다고요?"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인기 높은 헌 집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 이모저모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크리스마스' 대신 '율'이라고 불러요"
아이와 노인이 함께 즐기는 놀이공원, 티볼리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구름과 바람과 비의 왕국
"체면 안 따져서 행복해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이 만나면
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긴 겨울 밤, '휘계'로 버텨요"

- 덴마크 사회의 그늘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김영희 독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