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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인근 해역에서 천안함 보다 더 큰 선박이 침몰해 있는 것이 확인됐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등 민간 조사단이 천안함 인근 해역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직접 확인한 것이다. 선박 길이 100m에 높이만 8m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선박 크기로 봤을 때 대략 2000톤급 상선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천안함이 1200톤급인 것을 감안하자면 천안함보다 훨씬 큰 배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군 당국은 뒤늦게 해군의 현장 조사 때 그 존재를 이미 확인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천안함 사고 해역 인근 250m 반경에서 이 침몰 선박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침몰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상선으로 백령도 주민들 사이에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이고, 일부 언론도 피격 사건 취재 때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기사화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또 별도의 브리핑을 통해 이 침몰선의 높이가 10m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지점의 수심이 47m나 돼 2.88m의 천안함 항해에는 지장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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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지난 4일 천안함 사고관련 지점 등을 조사하기 위해 복장을 착용중이다. 이치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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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오후 천안함 사고위치인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에 어군탐지기로 탐지하자 천안함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점과 거의 동일한 위치에서 대형선박이 침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치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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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천안함 침몰 후 현장 조사에서 이 침몰선의 존재를 파악했지만, 천안함 침몰과는 연관성이 없고, 백령도 주민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던 사실인데다가 일부 언론도 이를 파악했지만 기사화하지 않았을 정도로 천안함 사건과 연관성이 적어 굳이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 당국의 이 같은 해명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다. 천안함 침몰 직후 인근 해역 수색 때 언론에서는 조그만 파편 몇 쪽을 발견했다는 것이 주요 뉴스로 다뤄질 정도였다. 모두 군 당국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천안함 침몰 해역 바로 인근에서 천안함보다 더 큰 선박이 침몰돼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군 당국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공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선뜻 납득하기 힘든 해명이다.
군 당국이 이 침몰선이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정한 부분도 미심쩍다. 군 당국은 이 침몰선의 높이가 10m나 될 정도로 큰 선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곳의 수심이 50m 가까이 돼 천안함이 이 침몰선 잔해에 좌초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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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천안함 검증을 위한 민간조사단이 천안함 사고해역에서 침몰한 것으로 발견한 괴선박(침몰선) 인근에서 자석을 이용해 쇠붙이를 건져냈다. ⓒ통일뉴스 조성봉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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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분석은 지극히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이다. 이 침몰선의 존재는 그 자체로 천안함이 어뢰 피격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침몰했을 개연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천안함 침몰 인근 해역에서 천안함보다 덩치가 더 큰 선박이 침몰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천암함과 같은 큰 배가 항해하기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침몰선이 어떤 이유로, 왜 침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천안함처럼 '1번 어뢰'에 맞아 침몰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박이 인근 해역에서 좌초돼 이 지역에서 침몰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의 태도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이 같은 사실을 민간조사단이 확인하기까지 공개하지 않은 점도 그렇지만, 이 침몰선에 대한 해명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이 침몰선이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단정하자면 적어도 이 선박이 어떤 선박이었으며, 언제, 어떤 이유로 침몰했던 것인지 정도는 파악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천안함보다 더 큰 선박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천안함 인근 해역에서 침몰했다고 한다면 그 선박의 침몰 원인이 천안함의 침몰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천안함 사건 처리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은폐하거나 거짓말을 거듭해 국민적 불신을 자초했다. 최근 '1번 어뢰'의 '1번' 글씨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송태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의 연구 논문을 어뢰 폭발에도 불구하고 '1번' 글씨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주요 논거로 제시한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안팎의 압력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실험실 상황'을 전제로 한 송 교수의 논거는 당장 과학적으로 반박되고 있다.
굳이 과학을 들먹일 이유도 없다. 만약 송 교수의 논거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면 '1번' 글씨는 남고 어뢰 표면의 페인트가 타버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송 교수의 과학적 설명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이처럼 웅변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군 당국은 그러나 이런 허점투성이의 논거를 마치 '결정적인 해명'인 것처럼 송 교수가 국방부 기자실에서 직접 브리핑하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에 대한 과학적 반박이나, 상식적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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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서울 용산 국방부 회의실에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한민구 육군참모총장, 김태영 국방부장관, 이 대통령, 이상의 합참의장,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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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국방부장관은 며칠 전 기자 간담회에서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국 역사에 무지한 젊은이들이 많다"며 "군 정신 교육 시간을 활용해 국사 교육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서 역사가 선택 과목으로 돼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군대에서라도 교육을 해보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군 당국이 그렇게 중요한 역사 교육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군 정신 교육 시간에 역사 교육을 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김태영 장관은 명백한 사실에 기초한, 그러면서도 철학적·역사적 안목의 가치 판단이 필요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운운하기에 앞서 천안함 사건 처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군 당국의 비상식적인 태도부터 고치고 볼 일이다. 거짓말이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강변은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역사 근처에도 어슬렁거릴 일들이 아니다. 김태영 장관이 언감생심 역사 교육 운운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