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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촉각이 고장났다. 이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 희한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여론의 거센 분노에 불 지핀 특종 보도를 해놓고선 정작 후속보도를 하지 않는가 하면 주요 언론이 했어야 할 보도를 교통방송이 대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요 언론들이 민심의 기류를 읽는 데 둔감하고, 직업적 치열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SBS는 지난 2일 저녁 메인뉴스인 <8뉴스>에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딸 특채 특혜 의혹을 첫 보도했다. SBS만 단독 보도한 특종 보도였다. 이 내용은 트위터 등 인터넷 공간을 타고 삽시간에 국민들에게 전파됐다. 유명환 장관과 딸 현선씨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 1·2위에 나란히 오를 정도였다. MBC 9시 <뉴스데스크>를 비롯해 다음 날짜 일간지, 인터넷 언론들도 일제히 보도 대열에 합류했다. 급기야 3일 유명환 전 장관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4일 사퇴했다. SBS의 첫 보도가 민심의 뇌관을 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SBS는 2일 밤 첫 보도를 한 뒤 한동안 이 소식을 내보내지 않았다. 같은 날 <나이트라인>(오전 0시15분)·다음 날 <출발! 모닝와이드>, 아침종합뉴스(오전 7시)까지 유 장관 딸 관련 소식이 나가지 않고, 오전 10시 40분대에야 다시 보도됐다. 정작 단독보도를 하고도 14시간 여 동안 후속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최영범 SBS 보도국장은 지난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외교부로부터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전화를 받고 ‘신중할 필요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보도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영범 보도국장은 “하지만 이런 지시는 판단 착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MBC 등 다른 방송들도 후속 보도에 나설 때였다.
또 3일자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SBS는 이날 아침뉴스에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어디선가 물리치기 힘든 안팎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 보도국장이 보도를 하지 않기로 한 때는 이미 화살이 시위를 떠난 상황이었다. 민심의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데 국민여론과 정서에 둔감해져 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7일 “모든 정부 조직이 흔들릴 정도로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외교부가 후속보도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미 다른 언론사가 후속보도를 내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SBS 차원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본질에 파고드는 후속취재가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1차 보도가 나간 이후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가 취재와 심층 보도 지시를 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지시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발표되지 않은 것’이라는 요지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의 글이 뉴욕타임스에 실린 뒤 한국 언론이 보인 태도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CIA 한국지부 책임자,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안보보좌관을 지냈고, 현재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인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가 한국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해 이견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대성을 갖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한겨레·경향신문(지난 3일 자) 외엔 이 내용을 소개하지도 않았고, 후속 취재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정작 직접 취재에 나선 곳은 교통방송이었다. 교통방송 eFM <This Morning>은 그레그 전 대사가 기고한 뒤 3일 아침(한국시각) 그레그 전 대사를 직접 인터뷰해 “천안함 사고원인이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 해역에 암초와 지뢰가 많다”, “러시아 고위관리는 ‘러시아가 한미 외교관계를 고려해 조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는 주요 뉴스를 전했다. 바로 뒤이어 MBC 라디오 <뉴스의 광장>에서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레그의 발언이 방송됐다. 이후 한겨레 등이 그레그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MBC <뉴스의 광장>을 진행하고 있는 최명길 논설위원은 6일 “그레그의 말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그의 발언이 한국과 관련한 주요 현안에 관한 것이라면 언론은 당연히 보도를 해야 하고 그게 언론의 기능이라 판단해 인터뷰한 것”이라며 “리비아 사태를 엠바고로 묶은 것도 그렇고 최근 언론이 너무 움츠러든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호·최훈길·이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