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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된 지 23개월 만의 '승리'였다. 대법원은 지난 9일 김윤수(74)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계약해지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해임조치가 부당하므로 미지급 급여 8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김 전 관장은 지난 2008년 11월 7일 문화부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으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했다. 당시는 김 관장이 임기를 10개월 가량 남은 때였다.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면서 규정을 위반해 비싼 가격으로 구입을 했다는 것이 문화부가 주장한 결정적 퇴진 사유였다.
'표적성 물갈이' 논란이 일었다. 유인촌(6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08년 3월 중앙일보를 통해 "지난 정 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김 전 관장을 지목했다. 자진 사퇴하지 않은 인사들에 대해서는 전방위적 '압박'이 가해졌다. 결국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줄줄이 중도 해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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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노컷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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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윤수 전 관장의 승소로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이 당시 '물갈이 인사'에 대해 위법성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김 전 관장도 그동안 묵혀왔던 '속 앓이'가 적지 않을 법한 상황이다.
김윤수 전 관장은 지난 9일 오후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 전두환 정권도 이렇게 중도 해임을 안 시켰는데, 이 정권이 그렇게 했다"며 "안 나가고 버티니까 이것 저것 뒤져서 해임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유인촌 장관이 나를 쫓아내려고 여러 사람이 모인 기관장 회의 때 반말로 지시를 하면서 모욕을 주기도 했다"는 발언도 재차 확인하며, "당시엔 문화부 주요 부서 관리들이 날 만나서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회에서 최종원 민주당 의원이 이같은 유 장관의 행태에 대해 지적했지만, 이를 시인하지 않는 유 장관을 두고선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듭 말했다.
다음은 김 전 관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부는)내가 잘못한 것처럼 해서 억지로 내보냈다. 재판 과정에서 잘못 없다는 게 다 드러났다. 재판이 바르게 됐다고 생각한다."
- 문화부는 '2008년 11월 마르셀 뒤샹의 미술 작품을 구입하면서 규정을 위반해 가격 결정을 잘못한 것'이 해임 사유라고 밝혔다. 문화부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2005년 작품을 구입했는데, 문화부가 몇 년이 지나서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사실 미술 작품은 합리적인 값을 찾기 힘들다. 작품 소장자가 값을 제시하면 분과별 심의위원회를 거치고 이 위원회에서 여러 자료를 검토한다. 이후 전체 심의위원회를 거치면서 가격 감정을 받는다. 우리가 산 것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고, 뒤샹 전문가들이 (작품성을) 본 것이다. 그런데, 문화부가 구입 과정을 문제 삼았고, 온갖 것을 다시 다 뒤져 증명을 했다. 그런데 날 내보내기 위해 집요하게 애를 먹였고 난생 처음 이런 일을 겼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다 던져 버리고 나갔을 것이고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술관 전문가로서의 자존심, 전문성도 있는데 이번에 당하면서 비전문가들에게 완전히 골탕 먹은 것 같다."
- 참여 정부 당시 임명된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된 해임이라고 보나.
"물론이다. 왜냐하면, 미술관장에서 임기 중도에 쫓겨난 사람이 사실상 없다. (1969년 건립 이후)미술관 초창기에는 관리들이 맡았기 때문에 (임기 중)인사조치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 후엔 임기를 못 마친 사람은 없다. 과거 전두환 정권도 이렇게 중도 해임을 안 시켰는데, 이 정권이 그렇게 했다. 미술관장은 권력 기관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특수한 문화 기관이다. 전문가들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 문화부쪽에선 '외국 선진국에도 정권이 바뀌면 문화 기관장이 바뀐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도 그런 일은 없다. 독일에서는 새 정권 책임자가 문화 기관장을 맘대로 못 바꾸도록 하는 법률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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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이치열 기자 truth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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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촌 장관도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장관 생각이 그렇다면, 장관이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미술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관장의 생각을 물은 뒤 토의를 하고 얘기를 하면 된다. 그리고 기관장과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입장을 밝히면 된다. 이런 것이 정당한 방법인데 그런 방법을 썼나. 황지우 김정헌 모두 일방적으로 해임됐다. 안 나가고 버티니까 이것 저것 뒤져서 해임시켰다."
- 해임시키기 전에 토론도 없었나.
"한 번도 없었다."
- 장관과 입장이 어떻게 다른가.
"지금 이 정부는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등을 민영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안 된다. 일본은 그렇게 민영화 했지만, (문화예술이) 침체됐다. 일본은 5개 국립미술관을 묶어 특수법인의 미술관으로 한 뒤, 예산도 팍 줄어들었고 직원 채용과 작품 구입도 줄어들어서 새로운 전시회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또 민영화가 되면, 이사장들은 열심히 장사하고 돈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 결국 중도 사퇴를 거부했는데, 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유인촌 장관이 나를 쫓아내려고 여러 사람이 모인 기관장 회의 때 반말로 지시를 하면서 모욕을 주기도 했다"며 "(재임시절) 막말과 삿대질, 회유와 압력 때문에 괴로웠다"고 밝힌 보도도 있었다.
"매달 장관이 참석하는 기관장 회의를 한다. 그때 회의 석상에서 (유 장관이) 틈틈이 반말을 했다. 인터넷 보니까 최종원 의원이 거기에 대해 물으니, (유 장관은) 오해한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당시엔 문화부 주요 부서 관리들이 날 만나서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다. '(안 나가시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며 '퇴진하는 게 좋다'는 말도 했다."
- 유 장관이 반말을 한 것이 사실인가. 유 장관은 "대질할까요"라고 반응했다.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본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시인 할 수도 없으니까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내가 대질해서 반말을 했다고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러면 내가 (유 장관과)똑같은 사람이 된다. 그 사람 양심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어떤 얘기를 꾸며서 얘기할 게 뭐가 있나. (관장으로) 있을 때 당한 것이다. 회의 석상에서 기관장들이 보고를 하면, (유 장관이)한 마디씩 했다. 내가 미술관에 대해 보고를 하면 못마땅했는지 반말을 했다. 회의 끝나고 나면 '관장이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데, 그렇게 얘기하나. 제 얼굴이 뜨거웠다'고 참석자들이 나한테 얘기하기도 했다."
- 문화 정책이 어떻게 가야 하나.
"이 정부 들어서 문화부 산하 기관장들을 소리 소문 없이 다 내보냈다. 정부는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나는 선진국 가려면 담당하는 사람이 선진국처럼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말 문화 행정이 제대로 가야 하고 되살릴 것은 되살리고 안 되면 바꿔야 하는데, 이 정권은 무조건 나가라고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들고 나오지 않았나.
"말은 옳다. 당연히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말을 위한 말을 하는 사람 같다. 공정한 사회를 주장하면서 말썽 많은 사람들을 장관으로 추천했다. 자기 말이 걸림돌이 됐다고 본다."
- 향후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나.
"학자로서 대학 교수로 살아왔다. 그동안 글 쓰고 강의하면서 책다운 책을 못 냈다. 그래서 써왔던 것을 정리해 문화 예술쪽 책을 내고 새로운 글도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