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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폐지하는 극단적인 대책까지 내놓으면서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장은 오히려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폭탄이 터질 때가 머지 않았다는 신호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설마 하는 불안감이 공포감으로 확산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번 8·31 대책이 꺼져가는 부동산 경기를 확인 사살하는 패착이 될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9월 둘째 주 서울과 수도권 지역 아파트 매매시장은 일제히 하락했다.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은 3.3㎡에 1799만원으로 지난해 7월 중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매매 호가의 격차가 커서 거래가 극도로 부진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심리적 마지노선인 1800만원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하우스 푸어' 토론회에서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싼 가격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 소장은 "6분의 1까지 떨어질 수도 있고 일부 아파트 단지는 슬럼으로 전락해 가격이 0원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우 소장은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팔릴 수 있을 때 팔고 빚을 줄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재영 MBC PD의 신간 '하우스 푸어'의 출간 기념으로 마련된 자리였는데 김 PD는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촬영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20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베스트셀러 '88만원 세대'의 공동 저자인 우석훈 소장과 부동산 대세 하락의 위험을 경고한 '위험한 경제학'의 저자,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토론자로 참석했고 미디어오늘이 후원사로 참여했다.
'하우스 푸어'와 '88만원 세대'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린다. 부동산 거품이 가계의 소비여력을 잠식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 사상 최대 수준의 가계부채.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제의 역동성이 위축된다. 당연히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빠는 하우스 푸어, 아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참담한 현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이상 키워왔던 부동산 거품의 필연적인 결과다.
선 부소장은 '하우스 푸어'가 갑자기 나타난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수도권 지역 부동산 가격은 2000년 초반 급등했다가 한 박자 쉬고 2006년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는데 중산층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투기 열풍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이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는 게 선 부소장의 분석이다. 선 부소장은 이미 2008년부터 추격 매수가 끊기면서 거래가 줄어들고 대세하락 국면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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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대인(왼쪽)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과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도서출판 더팩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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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도 평균 이상이고 수억원씩 대출을 받을만큼 신용도 좋지만 정작 소득의 대부분을 은행 이자로 내는 사람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들은 자산가치 하락과 채무상환 압박이라는 이중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김재영 PD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이런 '하우스 푸어'가 98만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선 부소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이 부동산 대세하락의 초기 국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 소장은 "파주 신도시가 평당 2천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파국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지금은 경제학자들도 대부분 대세하락에 의견이 일치한다, 다만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우 소장은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소득은 절반 밖에 안 되는데 파주의 아파트 한 채면 일본 도쿄에 두 채를 살 수 있다"면서 "이런 미친 시스템은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우 소장은 "일본은 부동산 거품을 빼는데 10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훨씬 더 걸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 소장은 스스로를 폭락론자를 넘어 붕괴론자라고 부른다. 우 소장은 "일본은 거품을 빼면서도 국민소득을 유지하고 꾸준히 성장했지만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처럼 국민소득이 떨어지고 역성장하는 우울한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우 소장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달러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우스 푸어'는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수억원짜리 집이 있는데 왜 가난하단 말인가.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한 '워킹 푸어'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크레딧 푸어', 병원에 갈 수 없는 '헬스 푸어'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사실 '88만원 세대'는 '하우스 푸어'도 아니고 '그냥 푸어'다. 이들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하우스 푸어' 문제도 안타깝긴 하지만 '그냥 푸어'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우 소장은 "한국은행이 일단 금리를 동결하기는 했지만 올해 말까지 한 차례, 내년 초에 또 한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을 거고 하우스 푸어의 이자 상환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적정 기준금리를 4.5%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금리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준금리 인상은 부동산 대세하락 속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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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 아파트 가격이 6분의 1 이하로 떨어질 거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재건축 허가가 났지만 사업성이 없어 애물단지가 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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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소장은 특히 정부가 8·31 대책에서 DTI 규제를 폐지하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유지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DTI는 소득 대비 비율이고 LTV는 담보가치 대비 비율이다. 우 소장은 "LTV를 풀면 부동산 투기꾼들이 대출을 더 받을 수 있고 DTI를 풀면 돈 없어서 집을 못 샀던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살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DTI 규제 폐지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매우 나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우 소장은 "부동산 투기꾼들은 망해도 되는데 DTI를 풀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망한다"고 지적했다. 부득이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면 DTI 보다는 LTV를 푸는 게 우선일 텐데 이명박 정부는 중산층을 투기판으로 내모는 정책을 선택했다. 선 부소장도 "가계부채 문제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데 정부는 아직도 부동산 투기세력과 건설업체들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선 부소장은 "일부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한번쯤 다시 뛰어서 털고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남아있는 것 같은데 어려울 거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선 부소장은 "지금도 문제지만 주택 대출 거치 기간 만기를 계속 연장하면서 2012년 하반기가 되면 만기도래 규모가 지난해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선 부소장은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거듭 경고했다.
그렇다면 '하우스 푸어'를 마냥 방치할 것인가. 대안은 없을까. 선 부소장은 "지금부터라도 거품을 빼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해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충격이 없을 수는 없지만 더 끔찍한 상황을 피하려면 지금 당장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선 부소장은 "부동산 대세 하락 가능성을 경고하고 가계부채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유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 부소장은 "'하우스 푸어'를 구제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투자는 결국 자기 책임인데 투자 손실을 사회화하는 건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 부소장은 "거품이 빠질 때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결국 경제적 취약계층"이라면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는데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 부소장은 "스톡홀름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납치범에게 정서적으로 동화되는 비이성적 현상을 말하는데 이 경우는 부동산에 '올인'을 하고 곧 오를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을 의미한다. 정부가 뭔가 '한 방'을 터뜨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강화하는 요인이 된다. 선 부소장은 "더 늦기 전에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강조했다.
한때는 20대에 20평 아파트에 살면서 엑셀을 몰고 30대가 되면 30평 아파트로 옮겨가 프레스토를 몰고 40대가 되면 40평 아파트로 옮겨가 스텔라를 모는 게 중산층의 롤 모델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20평 아파트를 넘겨받을 20대와 30평 아파트를 넘겨받을 30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20대와 30대는 어떤가. 집을 살 능력은커녕 연애하고 결혼할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도 안 되는 '88만원 세대'들이다.
우 소장은 "젊은 사람들이 집을 살 능력이 안 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부동산 투기가 끝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10년 뒤에 망한다는 걸 알면 당장 지금부터 돈을 못 쓰게 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1인가구 때문에 추가 공급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1인가구의 상당부분은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독신남녀들이다. 우 소장은 "편의점 '알바'들이 DTI 규제가 폐지됐다고 대출 받아서 5억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우 소장은 "도롱뇽이 살기 좋은 나라가 여성과 아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면서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도롱뇽이 있는 산을 밀어내면서 부동산 투기세력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왔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집 사서 결혼하고 애 낳아 키우기가 어려워지면서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것도 결국 토건 공화국이 만든 부동산 거품의 후유증"이라고 강조했다.
우 소장은 "강남의 재개발 대상 아파트나 주상복합 아파트는 지금 팔지 않으면 큰일 난다"면서 "팔 수 있을 때 파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우 소장은 "이르면 내년부터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텅텅 비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리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도 수백만원의 관리비를 감당할 여유있는 중산층이 앞으로는 더욱 줄어들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강남 한복판에 거대한 슬럼이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선 부소장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부동산 경기 부양이 아니라 건설업계와 저축은행의 과감한 구조조정"이라면서 "구조조정을 지연하면 할수록 일본식 장기 불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우 소장은 "한국 경제가 내년 여름쯤 고꾸라질 거라고 보고 있었는데 이번 8·31 대책을 보니 그게 내년 4월로 앞당겨질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결국 부동산 대세하락과 장기 불황이 불가피하다면 디레버리지, 레버리지(부채비율)를 줄여나는 게 최선이다. 정부가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대출을 줄이거나 고정금리로 갈아타고 아예 전세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내 집 마련 역시 서두를 필요가 없다. 우 소장은 이르면 내년부터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매물이 쏟아지고 장기적으로 1억원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정부가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를 책임지는 '소셜 하우징'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 과정에서 건설업계와 부동산 투기세력이 몰락하겠지만 사회적 연대가 새로운 시스템의 근간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비정규직과 인구 고령화 문제와 함께 분배구조의 재편도 중요한 과제다. 부동산 대세하락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거품 붕괴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