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딸 이름 되찾아… 무거운 짐 내려놓은 기분"
세계일보 | 입력 2010.09.24 01:36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충청
신군부 조작 '아람회 사건' 피해자 김아람씨 가족의 추석
딸 백일잔치가 간첩단 모임으로 둔갑
29년간 '빨갱이 딱지'로 손가락질 받아
8월 무죄 확정돼… 가족 명예 회복
악몽을 겪은 지 29년이 흘렀다. 딸의 백일 잔칫날인 1981년 5월17일, 육군 대위였던 김난수(56)씨와 하객들은 '간첩'으로 몰렸다. 간첩단 명칭은 딸 이름을 따 '아람회'로 불렸다. 국가에서 '빨갱이'로 낙인을 찍으면서 단란했던 김씨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변변한 직장도 잡을 수 없었고, 아이들도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견뎠다. 결국 지난달 13일 김씨는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씨 가족에게 올해 추석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29년 마음 속 상처마저 지울 순 없지만 국가가 강제로 찍은 '주홍글씨'는 공식적으로 지워졌다. 아들(25) 에 이어 추석을 시댁에서 보낸 딸 아람(29)씨가 23일 사위·손자와 함께 대전에 있는 김씨 집을 찾으면서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군사정권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 가족도 이제 한가위의 풍성함을 맛볼 여유를 되찾았다.
지난해 사법부는 아람회 사건을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대표적 공안사건'으로 규정했다. 김씨 등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 고등학생이 신고하면서 구타와 물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었다. 최대 징역 10년형이 선고된 이 사건은 2007년 재심 대상이 됐고, 피해자 대부분은 앞서 지난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씨는 딸에 대한 자책감까지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아람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장선거에 나갔는데 친구들에게 '빨갱이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집에 돌아온 아람이는 '빨갱이가 뭐냐'면서 종일 울었어요. 그저 딸을 안고 함께 울었죠."
"'빨갱이 딱지'를 떼줘야 한다"는 부친의 제안에 김씨는 개명을 신청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마저도 외면했다. 집안 사람들끼리만 '아람이'를 '지숙'이라고 바꿔 불렀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예쁜 딸 아이 이름을 간첩단 이름으로 발표했으니…."
사춘기를 지내며 친구들이 부르던 이름이 싫을 법도 한데 아람씨는 내색 한 번 안 했다. "속 깊은 딸이 고맙지만 한편으론 '못난' 아빠 탓에 성격이 내성적이 된 것 같아 마냥 안쓰럽다"고 김씨는 말했다.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83년 크리스마스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충북 금산으로 귀향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제약회사 등 3곳에 합격했으나 '회사 규정상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거듭 받았다. 신원조회에서 '간첩' 딱지가 드러나서였다.
서울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상을 하는 친구가 "함께 일하자"며 찾아 온 적도 있으나 결국 서슬 퍼런 당국의 감시와 통제에 직장 구할 마음을 아예 접었다. 인삼밭 소독, 하수도 공사, 고물상 등 온갖 허드렛일에 나섰으나 벌이는 늘 신통치 않았다. 부인 최씨도 김밥집 종업원 등을 전전했다.
4년 전 김씨 부부는 느지막이 주말 부부가 됐다. 김씨가 조경회사 일로 대전에 살고, 부인은 아들과 서울에 살며 손자를 돌보고 있다. 지난달 무죄 확정으로 가족들은 무거운 큰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다.
김씨는 국방부를 상대로 복직 소송도 낼 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에 떳떳이 적어보지 못한 '직업'. 그 직업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딸 백일잔치가 간첩단 모임으로 둔갑
29년간 '빨갱이 딱지'로 손가락질 받아
8월 무죄 확정돼… 가족 명예 회복
악몽을 겪은 지 29년이 흘렀다. 딸의 백일 잔칫날인 1981년 5월17일, 육군 대위였던 김난수(56)씨와 하객들은 '간첩'으로 몰렸다. 간첩단 명칭은 딸 이름을 따 '아람회'로 불렸다. 국가에서 '빨갱이'로 낙인을 찍으면서 단란했던 김씨 가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변변한 직장도 잡을 수 없었고, 아이들도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지난해 사법부는 아람회 사건을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대표적 공안사건'으로 규정했다. 김씨 등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 고등학생이 신고하면서 구타와 물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었다. 최대 징역 10년형이 선고된 이 사건은 2007년 재심 대상이 됐고, 피해자 대부분은 앞서 지난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씨는 딸에 대한 자책감까지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아람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장선거에 나갔는데 친구들에게 '빨갱이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집에 돌아온 아람이는 '빨갱이가 뭐냐'면서 종일 울었어요. 그저 딸을 안고 함께 울었죠."
"'빨갱이 딱지'를 떼줘야 한다"는 부친의 제안에 김씨는 개명을 신청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마저도 외면했다. 집안 사람들끼리만 '아람이'를 '지숙'이라고 바꿔 불렀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예쁜 딸 아이 이름을 간첩단 이름으로 발표했으니…."
사춘기를 지내며 친구들이 부르던 이름이 싫을 법도 한데 아람씨는 내색 한 번 안 했다. "속 깊은 딸이 고맙지만 한편으론 '못난' 아빠 탓에 성격이 내성적이 된 것 같아 마냥 안쓰럽다"고 김씨는 말했다.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83년 크리스마스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충북 금산으로 귀향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제약회사 등 3곳에 합격했으나 '회사 규정상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거듭 받았다. 신원조회에서 '간첩' 딱지가 드러나서였다.
서울 세운상가에서 전자부품상을 하는 친구가 "함께 일하자"며 찾아 온 적도 있으나 결국 서슬 퍼런 당국의 감시와 통제에 직장 구할 마음을 아예 접었다. 인삼밭 소독, 하수도 공사, 고물상 등 온갖 허드렛일에 나섰으나 벌이는 늘 신통치 않았다. 부인 최씨도 김밥집 종업원 등을 전전했다.
4년 전 김씨 부부는 느지막이 주말 부부가 됐다. 김씨가 조경회사 일로 대전에 살고, 부인은 아들과 서울에 살며 손자를 돌보고 있다. 지난달 무죄 확정으로 가족들은 무거운 큰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다.
김씨는 국방부를 상대로 복직 소송도 낼 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에 떳떳이 적어보지 못한 '직업'. 그 직업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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