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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 원인을 밝혀줄 결정적 증거를 국방부가 훼손했다. 국민의 혈세로 가동되는 국방부가 해서는 안 될 짓을 공개리에 저질렀다. 국방부는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제시한 북한 어뢰 추진체의 정체를 규명할 결정적 자료를 복구 불능상태로 파손했다. 진실을 규명할 책임과 의무를 국방부는 군사작전 하듯 스스로 짓밟은 것이다. 이는 사건 진상의 규명을 원하는 자국민 뿐 아니라 세계를 향한 폭거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 진실의 열쇠가 될 수도 있는 증거물에 대해서 객관 타당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우선 어뢰 스크류 구멍에 들어가 있는 이물질을 제거한 것은 엄청난 과오다. 그것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범죄행위로 지탄받을 수 있다. 원상태를 유지해서 검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줄 의무가 있는 정부부처의 당연한 자세다. 세계가 주시하는 이 사건의 진실 규명이 국가의 위상과 직결되어 있다. 국방부가 증거를 파괴, 훼손한 것은 국제적으로 한국의 국격에 똥칠을 한 것과 같다. G-20 회의를 서울에서 연다고 선진국 운운하지만 지구촌이 비웃을 짓을 국방부가 저지른 것이다.
국방부의 증거훼손 행위는 일본정부의 북한 피납 일본인에 대한 유골 검증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와 너무도 닮았다. 일본은 북한이 지난 2004년 보낸 일본인 피납자 유골에 대한 검증 작업이 엉터리로 이뤄진 뒤 가짜 소동을 벌이면서 북일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문제의 유골이 폐기 처분되면서 재검증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저질러졌지만 일본 정부는 그 후 피납자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6자회담을 지연시키려 시도하기도 했다.
일본인 피납자 유골 검증 사건은, 북한이 2004년 일본인 피납자 2명의 유골을 일본에 전달해 일본에서 DNA 검사가 실시된 뒤 모두 가짜로 밝혀졌다고 일본 정부가 발표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네이처지가 2005년 2월 일본 테이쿄 대학의 일본인 피납자 검증 작업이 부적절하게 실시되었으며 검증 결과가 미흡하다고 담당 연구원이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문제의 유골을 폐기처분해 추가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밝혀 재조사는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일본은 그 후 진실을 가려낼 자료를 파기한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일방적으로 내린 결론만을 내세워 북한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천안함 사고에 대해 한미일이 공조를 취하고 있는데 미국의 태도는 베트남전 참전 구실로 삼은 통킹만 사건 조작의 태도와 유사하고, 한국은 일방적으로 북한 소행으로 단정 지은 것은 물론 일본처럼 증거 자체를 훼손하는 짓을 저질렀다. 국제사회를 향한 3개국의 쌩쑈가 어지고 있는 꼴이다.
국방부는 4일 홈페이지를 통해 '어뢰 추진체에 붙은 조개' 보도 관련 해명에서 민군합동조사위가 발표한 내용에 부합되는 추정만을 제시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방부가 증거물을 훼손한 사진과 함께 제시한 견해는 아전인수의 극치다. 어린이도 웃을 만큼 허점 투성이다. 국방부는 어뢰 스크류 구멍의 이물질은 생물 조가비가 아니라 ‘부서진 조개껍데기’라고 주장했다. 이는 조가비가 수명을 다 한 뒤 그 껍데기가 일부만 붙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노림수다. 일단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보는 식이라고나 할까?
국방부는 조개 껍데기가 붙어있는 상태가 느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개 껍데기가 어떻게 붙어있어느냐가 진실 규명에 결정적인 열쇠인데도, 그것을 검증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졌다. 이 ‘조개 껍데기’는 어뢰 추진체가 인양되어 육지로 운반된 뒤 전시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계속 그 자리에 붙어 있는 상태였다. 만약 국방부 주장과 같이 느슨한 상태로 붙어 있었다면 그토록 긴 시간 동안 한곳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점을 국방부가 고려했다면 그처럼 막무가내로 원상태를 파괴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방부가 그것을 떼어내 검증이 불가능하도록 파손해버려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유실돼 버렸다. 국방부가 무지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더 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증거인멸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수준의 국방부가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너무 불안한 일이다.
국방부는 그 조개껍질이 어뢰 폭발 후 해저면에 있다가 조류 등의 영향으로 스크류 구멍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2.5cm×2.5cm 크기의 물질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 구멍의 한 가운데 부분에 장기간 붙어 있었다는 것은 과학적 상식으로 설명키 매우 어려운 일 아닌가?
부서진 조개껍데기에 붙은 흡착물에 대한 국방부의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국방부는 “폭발 후 조개껍데기와 흡착물이 동시에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서 붙을 수도 있고, 조개껍데기가 구멍에 들어간 이후 스크류 주변에 묻어있는 다량의 흡착물이 조류 등의 영향으로 옮겨 붙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추정의 사실 여부를 규명하자면 국방부는 조개껍데기가 부착된 원상태에서 흡착물의 부착 모양 등을 분석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제시한 사진을 보면 흡착물은 완전히 조개껍질에서 제거되어 버린 상태다. 이런 심각한 증거 훼손 사실을 홈페이지에 버젓이 공개하는 것은 국제 사회를 향해 제 치부를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점에 아예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국방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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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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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가 ‘어뢰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조개 끝 부분에 백색물질이 생성돼 있는 것은 조개가 백색물질 생성 이전부터 어뢰 추진체 속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어뢰추진체가 천안함 공격과 무관하다’고 결론 내린 것은 매우 타당한 추론이다. 국방부는 증거를 훼손하고 거의 그 가능성이 희박한 해명을 내놓았다. 말이 안되는 해명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를 훼손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살 만 하다. 이는 추후 천안함 사고에 대한 의혹 제기를 더욱 부채질할 불쏘시개가 될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