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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컬럼,글

북한에 쌀 괜히 준 게 아니네, 그들이 다 안다면 민심을 얻은 거!

by skyrider 2011. 4. 9.

몰랐다, 우리가 북에 보낸 게 쌀만이 아니란 걸
'식량퍼주기' 일본은 되고, 북한은 안 된다고 하는 당신께
11.04.08 15:38 ㅣ최종 업데이트 11.04.08 16:50 권영숙 (palsunnyu)

"엄마 우리의 피같은 용돈 떼먹는 거 아냐?"

"내가 언제 너희 돈을 떼먹었다고 그러냐?"

"아니. 우리 용돈에서 매달 북한동포돕기 한다고 떼어 가 놓고 왜 돈 낸 영수증은 안 보여줘?"

 

고등학생 큰딸은 4만 원 한 달 용돈에서 3500원을, 중학생 작은 딸은 3만 원 용돈에서 2500원을 북한동포 돕기로 낸다. 나는 지난 2008년 북한동포의 대량 아사 소식을 듣고 생활비를 절약해서 매달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생명 살리는 일을 함께 하자고 꼬셔 몇 년째 매달 자신들의 용돈 일부를 내고 있다.  

 

내가 북한동포에 관심을 가진 건 2008년이다. 그 전까지 굶어죽는다는 보도를 들어도 솔직히 관심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북한이 그 정도로 못 산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평화, 난민, 인권지원센터인 <좋은 벗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북한이 식량난으로 1997년 30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있었고, 2008년 또다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2008년 북한동포 돕기 100만인 서명과 법륜스님의 70일 단식

 

그래서 2008년 당시 북한동포 돕기 1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법륜스님은 70일 단식으로 인도적 지원을 호소했지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함을 유지했고, 북한동포의 대규모 아사는 막지 못했다. 그때 내 마음은 좌절했다. 100만인 서명을 받으러 100일간 비가와도, 30도가 훨씬 웃도는 더위로 일사병에 걸리면서까지 거리를 쫓아다녔지만 북한동포를 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북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영국을 방문해 식량지원을 요청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북한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1997년 북한주민 300만 명이 넘게 굶어 죽을 때도 처음에는 아니라고 발뺌하다 나중에서야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던 북한이다.  

 

<좋은벗들>의 소식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수년간의 자연재해와 화폐개혁 실패, 또 외부의 식량지원 중단과 작황 부진 등으로 평양마저도 식량 배급이 불안정할 정도라고 한다. 또 식량사정이 가장 좋은 평양도 지난해 11~12월 식량 배급이 각 보름치에 그쳤고 올해 1월에는 배급을 아예 못 줬다고 한다. 더군다나 지난해 12월부터는 아파트 단지에 전기·난방·식수 공급이 중단돼 노인들이 숨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그러한 북한의 식량난 기사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체로 북한 주민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김정일 체제 붕괴를 위해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강경함이 많았다.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주장이 이해됐다.

 

왜냐면 북한 인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정권 세습에만 몰두하는 북한 지도부에 대한 나의 반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권에 문제가 있으니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어도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왜냐면 모든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고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일본을 왜 도울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한 일본의 지진피해에 박수를 치지 않고 오히려 돕는 것은 왜일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막말을 하고, 방사성 물질을 바다에 버리면서도 우리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 하는 일본을 그래도 돕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떠한 생명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고, 죽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는 생명존중사상 때문일 것이다. 또 자신을 짓밟은 사람은 과거 일본의 통치자들이고 현 정치인들이지, 지진피해로 희생당한 일본 백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 돕기를 보면서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넘어서는 인도주의 정신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불어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대량 아사에 대해서도 말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것이 북한사람이 됐든, 일본사람이 됐든 상관없이. 문제는 우리가 지원한 식량이 엉뚱한 데 쓰일까봐 우려하는 것일 뿐이다. 나도 그 점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식량을 보내면 윗사람들이 다 떼먹고, 정작 북한 주민한테는 안 가는 것 아니냐'고 많이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좋은벗들>의 대표이신 법륜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100% 북한 주민한테 다 간다는 말은 못하겠다. 군인은 절대 안 먹는다고도 못 하겠다. 왜냐면 북한 소식을 들어보면 군인들이 맨 먹을 거 훔치다 걸린다는 소식이 많다. 그건 바로 군인도 역시 굶주리는 인민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떼먹는 사람도 더러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러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도 역시 못 먹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유아들과 고아원 등을 최대한 지원하고,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한국 JTS 북한 53곳의 1만 2000여 어린이 지원

 

작년 한국 JTS(국제 기아·질병·문맹퇴치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NGO, Join Together Society)에서 북한의 영유아들에게 보낸 물품(컨테이너 57대 분량의 밀가루·두유·이유식·분유·초코파이·라면 등 식량과 겨울 담요·털신·목도리·체육복 등 겨울용품, 축구공·배구공·농구공 등)이 전달된 초등학교와 고아원을 모니터링 한 영상을 보았다.

 

우리가 북한 영유아들에게 보낸 물품이 인천항에서 출항해 남포항을 통해 평양과 자강도를 제외한 북한 전역 육아원, 애육원, 초등학원, 중등학원, 양생원, 농아학원, 맹아학원, 양로원 등 53곳의 1만 2000여 어린이와 어른에게 지원되었다.   

  
jts가 지원한 북한 고아원, 양로원
ⓒ 권영숙
정토회

 

10개월 전 눈에 띄게 작았던 아이가 우리가 보낸 음식을 먹고 부쩍 큰 것을 보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먹기 싫다고 안 먹는 두유가 그곳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단다. 그만큼 영양실조가 심각하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그 아이에게 더 이상 먹을 것을 보내지 못했는데 다행히 지난 3월 31일 정부는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고맙고 반가운 소식이다.

 

북한정권에 문제가 많은 것도 맞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맞다. 2년여 전부터 정토회 통일강좌에서 만나고 있는 새터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그렇다. 하지만 새터민들은 남한이 지난 10년간 보낸 쌀이 총알이 되어 돌아왔다는 의견에는 생각을 달리 했다. 오히려 남한이 준 식량이 북한동포에게 남한에 대한 나쁜 인식을 확 바꿔줬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단 남한에서 쌀이 들어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장마당에서 비싸게 거래되던 쌀값이 안정화된단다. 쌀값이 안정되면 가난한 사람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직접 받지는 않았느냐 물으니 받기도 했단다. 그는 10년간 남한의 지원은 북한 주민의 민심을 사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북한 지도부들이 남한을 욕해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욕하지 않는단다. 모든 혁명은 민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심이 어디로 돌아서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이 매년 선거철만 되면 평상시에 찾지도 않던 민심을 찾으러 다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남한은 쌀을 주고,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었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자꾸 지난 햇볕정책이 북한체제를 공고히 다져준 것처럼 말할 때마다 새터민의 이 말이 생각난다.

 

"남한은 10년간 쌀을 줬을 뿐이지만 얻어간 것은 북한 주민의 마음이었다."

 

통일비용치고 얼마나 싸게 치이는가. 며칠 전 농림수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쌀 재고량이 150만톤을 넘어섰다고 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쌀 재고량이 북한동포를 지원하면서 줄어들었다가 현 정부 들어서 2009년 다시 늘기 시작했다. 우리 남한은 쌀이 남아돌아 농민들의 시름이 쌓이고, 북한은 먹을 쌀이 없어 죽음이 쌓인다.

 

작년 지방을 내려가다 우연히 본 플래카드는 우리 농촌도 살리고, 북한 동포도 살리는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방 도로에 '대북 쌀지원을 법제화'하라는 농민회 플랜카드
ⓒ 권영숙
대북지원

 

민족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그 모든 것도 다 사람이 살아야 가능한 것

 

북한 동포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자는 법륜스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할 것을 호소했다. 

 

"민족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그 모든 것도 다 사람이 살아야 가능한 거 아닙니까? 정말 정권을 무너뜨리려면 민심을 사야 무너뜨릴 수 있고, 정말 정권을 지키려면 민심을 사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지금 북한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을 구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외면하고 무력으로 체제를 지키려고 하고 무력으로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일본의 지진피해 돕기가 한창이다. 나도 일본의 피해자들이 하루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기를 바라고 돕기에 동참한다. 하지만 일본 돕기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자꾸 든다. 그래도 일본은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나라고, 세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영국 앨튼 상원의원이 "식량(지원)과 관련한 한국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북한 주민 600만 명이 당장 위기에 처해있다고 유엔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이 밝힌 만큼 식량이 무기로 사용돼서는 안 되고 시급한 불을 꺼야한다"고 강조할 정도지만 세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아니 당장 가장 가까운 남한 정부의 대북 지원도 어려운 현실이다.

 

북한에도 부모 없는 아이가 있다

 

  
북한 어린이에게 엄마, 아빠가 되어주세요
ⓒ 권영숙
북한어린이

전쟁 중 포로도 병들면 치료해주고, 음식을 주는 것이 인도주의다. 지금은 전쟁 중도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북한의 영유아, 고아원의 어린아이들이라도 돕자. 어느 나라든 부모 없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북한의 고아들은 더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책임을 탓하기 전에 죽어가는 생명부터 살리면 좋겠다. 내 아이, 내 부모 형제라면 굶어죽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엄마, 아빠가 될 마음을 낸다면 통일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한국 JTS에서는 북한의 2세 미만의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분유를 지원하기 위해 4월 3일부터 5월 5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엔 관악산 입구에서, 오후 2시엔 인사동에서 거리 캠페인을 진행한다.

 

엄마, 아빠 되러가기

http://www.jts.or.kr/community/community2.html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