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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사무라이 정신으로 쿠데타를 한 박정희! 객관적 역사의 무대에서 점점 그는 작아질 것!

by skyrider 2011. 5. 15.

 

<5·16 50주년> 정해구 "민주주의 맥 끊은 쿠데타"

연합뉴스 | 김승욱 | 입력 2011.05.15 06:01 | 수정 2011.05.15 14:13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제주

 

 


"경제발전 공 있지만 인권탄압 등 부정적 측면 많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대표적 진보성향 학자인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는 5·16을 한국 민주주의의 맥을 끊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4·19 혁명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됐으나 5·16은 막 돋아난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았다는 것.

그는 5·16을 주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사무라이에 비유하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부국강병을 실현했으나 사회 양극화와 인권탄압 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아직 한국 사회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으나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경제발전의 신화는 엷어지고 박 전 대통령과 5·16은 평가 절하될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50년이 지난 오늘날 5·16의 의미는 무엇인가

▲5·16은 4·19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4·19는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을 의미한다. 5·16은 그것을 뒤집었다. 5·16이 경제발전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발전의 맥은 끊었다. 5·16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민주 정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1987년이다. 5·16은 한국 민주주의를 26년 늦춘 사건이다.

--김종필 전 총리는 최근 5·16을 숭고한 순간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국민으로부터 통치 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5·16 세력은 권력을 빼앗았다. 이를 혁명이라고 할 수 없다. 쿠데타다. 민주주의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이후 정당화를 위해 내세운 것이 경제발전이다.

--5·16 이후 경제발전은 어떻게 봐야 하나.

▲우리 사회는 민주세력과 보수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민주세력은 4·19 이후의 민주화 운동과 1987년 이후 민주개혁이라는 흐름에서 역사를 보고 보수세력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을 통해 역사를 본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이라는 것도 약간 신화화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박정희 정권 때 뿐만 아니라 1980년대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크게 성장했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발전의 기반을 구축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 뒤로도 30년 이상 꾸준히 발전한 덕분에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다. 오히려 국민소득이 빨리 증가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였다. 경제발전이 모두 박정희의 공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보다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때 이룬 경제발전의 부정적인 면도 많다. 박정희는 한국 사회를 양극화시켰다. 경제발전의 가장 큰 수혜자는 재벌이다. 지금 재벌이 얼마나 커졌나. 정부도 통제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민주체제가 아니라 과도체제 비슷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너무 크다. 누구도 평등하다고 보지 않는다.

지난해 베스트셀러가 된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전문가가 볼 때도 굉장히 자세히 봐야 한다. 그런 책이 일반 대중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다. 한국 사회의 부정의는 바로 박정희의 경제발전에서 시작됐다.

또 하나는 노동문제다. 박정희는 노동자를 너무 심하게 탄압했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정부와 자본, 노동이 파트너가 돼서 노사정 협의회가 잘 진행되는데 한국 사회는 노동자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혼란 세력 비슷하게 생각하고 억압하려는 관행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5·16을 주도한 박정희를 평가한다면

▲개인을 놓고 보면 민주주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부국강병을 꾀했다. 그 사람은 민주주의를 혼란스러운 것으로 봤다. 그는 군인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무라이였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은 것이 일본이다. 메이지 유신도 많이 생각한 것 같다. 메이지 유신도 사무라이가 천황을 내세워 막부를 뒤엎고 근대화를 꾀한 것이다.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에서 이런 생각을 배운 것 같다.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경제발전의 부분적인 공은 있으나 거시적인 흐름에서는 경제발전 초기단계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 뿐이다. 경제발전이 아닌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억압했다고 평가해야 한다. 양면적인 평가인데 나는 민주주의에 치우친 평가를 하고 싶다. 박정희는 한 마디로 평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앞으로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변할 것으로 보는가

▲그동안 역대 대통령의 선호도를 조사하면 박정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 조사에서는 노무현이 1위인 박정희와 큰 차이 없는 2위를 기록했다. 박정희와 대척점에 서 있는 대통령이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민주화 운동은 어느 시대에도 얘기되는 가치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 대통령으로, 박정희는 경제 대통령으로 경쟁 관계에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경제발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박정희를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앞으로의 평가를 예상한다면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경제발전이라는 신화는 퇴색될 것이고 박정희는 평가 절하될 것으로 본다.

또 독재자를 그리 높게 평가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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