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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글,뉴스

수영도 못하는 맥주병이 한강 투신 자살자를 구하겠다고 뛰어내리다니...??? 의인 기질이 몸에 배지 않고는 못할 행동인데...!!

by skyrider 2012. 1. 4.

한강 뛰어든 '맥주병 환갑 기장'

'맥주병'에 나이는 환갑… '2011 시민영웅' 김재철 아시아나항공 기장 인터뷰

 
말끔한 제복을 입고 다가온 노신사는, 한 눈에도 불편해보일 정도로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한강에 빠진 사람을 구조해 화제가 됐던 김재철 아시아나항공 기장(60)과의 첫 대면 모습이었다.

그는 12월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에쓰오일이 선정한 '2011 올해의 시민 영웅'이다. 앞서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제 5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의상자로 선정된 뒤 다시 복지부의 추천을 받아 이번 상을 수상하게 됐다.

구조 활동 중 다친 다리가 회복되지 않아 2개월째 병가 중이라는 그는 회사가 편하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를 찾았다. 그의 첫 인상은 순박하지만 성실한 대한민국 대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목숨을 걸고 구조활동을 실시한 현직 조종사의 희생적인 미담 사례로 뒤늦게 화제가 됐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나요.

▶서울시장 선거일이었으니까 10월26일이네요. 전날 홍콩 비행이 있었던지라 늦은 오후가 돼서야 조깅을 하러 혼자 한강변을 나왔습니다. 기장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임무가 있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엄격한 체력관리를 주문받거든요. 평소처럼 조깅을 하는데 안양천과 한강의 합수부 작은 다리를 지날 무렵, 멀리서 70세쯤 되는 여인이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여인 앞으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과 지갑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예삿일이 아님을 알아차렸습니다. 바삐 여인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모습이 보이지 않더군요. 다리 밑을 보니 여인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진=류승희 기자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하셨네요. 이후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우선 다리 위에 구명튜브나 구명조끼 같은 장구를 찾았는데 주변에 없었어요. 그 사이 여인은 시야에서 사라졌고요. 한강이 안양천 방향으로 역류를 했는지 몇 분 뒤 뛰어내린 쪽 반대방향에서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까와 달리 여인은 얼굴을 수면 아래쪽으로 묻은 채 미동이 없었습니다. 젊은 여자가 119에 신고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구조대원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요. 투신한 여인이 움직이지 않자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뒤 구조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뛰어내렸습니다.

-수영을 잘 하시나요. 자신감이 없다면 뛰어내리기 어려웠을 텐데요.

▶실은 수영을 못합니다. 그런데 수영을 못해서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다리 높이가 한 8m 정도 됐는데 조금 무섭더군요. 그 정도 높이면 충분히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는 높이거든요.

-부상은 언제 입으신 건가요.

▶뛰어내리자마자 발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어요. 강바닥에 발이 심하게 부딪힌거죠. '아악'하는 비명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습니다. 수직으로 입수한데다 생각보다 수심이 깊지 않았던 탓이었죠. 오른발이 부러졌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구조하려고 뛰어들었는데 오히려 구조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었죠. 그 와중에 여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바닥에 발이 닿기는 했지만 아파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는데 사력을 다해 여인을 뒤집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에서 '고로로록'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살았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죠. 하지만 너무 아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어요. 강변에 사람들이 조금 있었는데 강으로 뛰어들어 함께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 조금 야속했어요. 20m 정도 이를 악물고 여인을 강변으로 밀어내자 젊은 남성 두 분이 둔치 위로 끌어올려주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2명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신고도 있었다더군요.

-투신한 여인에 대한 사연은 들어보셨나요. 아니면 병문안이라도 오셨나요.

▶구급차가 와서 여인을 호송해 간 뒤로 보지 못했으니 사연을 알 길이 없죠. 30분을 추위에 떨다가 이어 도착한 구급차로 병원에 갔습니다. 여인은 다른 병원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실수로 물에 빠진 분이 아니기 때문에 사연이야 있겠죠.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도 할 테고. 투신한 사람도 살아나면 '죽을 뻔 했네' 라고 하듯 새로운 인생을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가족들 걱정이 크셨겠어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구급차에서 소방대원이 전화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는데 아내가 놀랐는지 '한강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만 알아들은 거예요. 가족들이 병원에 오자마자 '왜 한강에 뛰어 들었냐', '평소 우울증이 있었냐'고 채근하더군요.

-항공사 기장이라고 하면 높은 보수를 받는 '귀하신 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몸을 사리지 않은 구조활동이 의외로 여겨지네요. 다른 사람의 위기를 못 본 척 하는 게 요즘 사회 분위기잖아요.

▶저 말고도 19명의 시민영웅이 수상을 했는데요. 모두 용기 있는 행동을 하신 분들입니다. 저의 경우 높은 봉급을 받는 사람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 같고요. 다친 와중에 인명을 구조한 것을 높게 평가한 듯 합니다. 입원 중에 회장님께서 꽃을 보내주셨는데요. '당신은 진정 아름다운 의인입니다'라는 메모가 있더군요. 저도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장으로서 평소의 책임감과 그동안 축적된 아름다운 마음이 그때 발휘된 것 같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는 12월2일 아들의 결혼식을 치렀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지만 신부 측 가족은 '훌륭한 일을 하셨다'고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얼마 전 막내딸이 아기를 낳아 외할아버지가 됐다는 그는 "두 달을 쉬었더니 빨리 비행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며 "정년이 되는 65세까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열혈 안전 지킴이다.

<프로필>
1952년 충주 생/1976년 공군사관학교 졸업/1992년 공군 전역/1992년 아시아나항공 입사/1997년 B737 기장 임명/1999년 B747 기장 임명/현재 미주·유럽노선 운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