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지켜야 한다 생각에…” 검찰, 야당만 잡는다?
한겨레 입력 2013.01.30 08:40 수정 2013.01.30 10:10[한겨레][정치검사의 민낯]
③ 야당 죽이기, 여당 감싸기
"한상대 검찰총장, 사건보고 받으면
'누가 우리편이야' 먼저 물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에 지시 내려져
"너무 노골적이라 내부서도 불만"
최시중·박영준 구속 수사발표날
확인안된 '노건평 뭉칫돈' 흘리고
민주당 대선경선 코앞 양경숙 체포
박지원 표적에 "수사가 아닌 정치"
"민주당 관련 범죄 첩보를 보고하라."
2012년 초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산하 1담당관실에는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범죄 동향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1담당관실은 부정부패 사범의 비리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부서다. 검찰 관계자는 "너무 노골적인 지시였기 때문에 당시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근무했던 한 검사는 "정권 말이 되면 그런 첩보 보고서를 다 만든다"고 말했다. 범죄정보기획관은 검찰 직제상으로 대검 차장검사 밑에 있지만, 실제로는 검찰총장한테 '직보'한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한상대 검찰총장이 이끈 검찰은 정치적 균형추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이나 야당 관련 사안은 근거 없이 의혹을 부풀리며 무리한 수사를 한 반면, 정권이나 여당에 부담되는 내용은 감싸고돌았다. 최소한의 기계적 형평도 찾아볼 수 없었다.
■ 검사장도 몰랐던 노건평씨 의혹 발표
2012년 5월18일 이금로 대검 수사기획관은 오후 2시에 파이시티 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수사 한달 만에 구속한 사건이라 언론의 관심은 컸다.
그러나 이날 오전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의혹을 터뜨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닷새 앞두고, 검찰이 확인도 되지 않은 '핵폭탄급' 의혹 내용을 서둘러 공개한 것이다. 이 차장검사는 "자금 추적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뭉칫돈이 오간 노씨 관련 계좌를 발견했다. 노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8년 5월까지 3~4년간 계속 돈이 오가다 공교롭게도 퇴임 직후 흐름이 딱 끝났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파이시티 수사결과 보도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물타기하는 효과를 냈다. 언론의 관심은 온통 '노건평씨 수백억원대 비자금'에 쏠렸다.
이 차장검사는 다음날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뭉칫돈은 노건평씨와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선이 끝난 뒤인 지난해 12월27일이었다. 의혹만 한껏 부풀려졌다가 허망하게 끝난 것이다.
노건평씨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의혹을 일개 지검의 차장검사가 혼자 결정해 언론에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건리 창원지검장도 이준명 차장의 브리핑 내용을 몰랐다고 한다. 그런 일을 대검찰청의 지시 없이 그냥 할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한상대 총장 등 검찰 지휘부와 교감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이건리 창원지검장은 이후 검찰 인사에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윗분'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민주당 범죄 털어라" 총선·대선 앞둔 작년초 바빠진 검찰
여권실세 수사때마다 숱한 방해
편향성 항의해 사표 내기도
"정권 바뀌면 다친다고 생각해
중립성이고 뭐고 없었다"
균형추 잃은 한상대의 검찰
결국 국민 신뢰 갈수록 잃어
■ "누가 우리 편이야?"
대검 중수부장 등을 지낸 특별수사통인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특별수사를 할 때 갖춰야 할 덕목을 10가지로 요약한 '수사십결'이란 글에서 "칼에는 눈이 없다. 심하게 휘두르면 나도 다친다"고 말했다. 칼을 쥔 자가 이를 나쁘게 사용하면 자기가 찔리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원칙에 맞게 칼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8월 말 친노 매체인 <라디오21>의 대표 양경숙씨를 체포했다. 민주당 공천희망자 3명한테서 40억원을 받고 민주당에 자금을 댄 혐의였다. 당시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막 앞두고 있었다. 수사 초기에 중수부 안에서조차 "이건 공천헌금 사건이 아니라 양경숙 사기 사건이다. 이건 수사가 아니라 정치다"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의도를 품고 있는지는 3가지 리트머스 시험지로 판별할 수 있다. 수사를 착수한 배경은 무엇인지, 사건 배당을 비롯한 수사 의지는 어떤지, 피의사실 공표가 있었는지 등이다. 양경숙씨 사건은 이런 3박자가 들어맞은 '정치 수사'였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수사에 나선 배경과 관련해 "제보가 들어왔고, 돈의 액수가 40억원으로 컸다. 양씨의 거짓 행각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사 배당과 강도가 어땠는지를 보면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초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과 양경숙씨 사건을 동시에 들고 있었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수사의뢰를, 양경숙씨 사건은 제보를 받았다. 그런데 한상대 총장의 사건 처리 방식은 판이하게 갈렸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곧장 부산지검 공안부로 내려보낸 반면, 양경숙씨 사건은 중수부에 '하명'을 내린 것이다.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도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한상대 총장은 사건을 갖고 찾아가 보고를 하면 '누가 우리 편이야'부터 물어봤다"고 말했다.
검찰의 표적은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이었다. 문성근씨 등 일부 '친노' 인사들도 거론됐다. 양씨가 박 의원을 만났고 문자메시지도 수천통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양씨와 박 의원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 언론에 그대로 보도돼, 수사 보안이 지켜지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수사 개시 일주일 만에 양씨의 거짓 행각이 드러났다. 민주당에 보냈다는 송금전표도, 박 의원이 공천희망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도 모두 가짜로 들통났다. 검찰은 양씨의 수십개 차명계좌와 그 연결계좌를 훑었지만 박 의원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중수부는 '낚인' 것을 알고 서둘러 수사를 접었지만, 수사결과 발표 자료에는 참고인 신분이었던 박 의원의 의혹 내용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양씨와 함께 구속기소된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양씨의 사기에 놀아났다"고 주장하며 양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까지 했지만, 중수부는 "사기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중수부가 무리하게 야당 정치인을 겨냥했다가 사기극에 휘말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서울중앙지검 조사부가 양씨를 사기죄로 추가 기소하면서 사기가 아니라던 중수부는 굴욕을 당했다.
■ 편향적인 수사지휘에 사표 낸 검사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당내 경선에서 돈봉투를 받았다는 새누리당 고승덕 의원의 발언에 따라, 새누리당 박희태 의원 등을 돈을 건넨 혐의로 한창 수사하고 있었다. 같은 달 19일 검찰이 국회의장 부속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수사가 본궤도에 올랐다.
그런데 같은 날 <한국방송>(KBS)은 민주통합당 총선 예비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전당대회 예비경선장이었던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돈봉투를 돌린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다렸다는 듯, 검찰은 하루 뒤인 20일 교육문화회관을 압수수색했다. 새누리당 돈봉투 사건은 쏙 들어갔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장에서 나눠준 것은 돈봉투가 아니라 '출판기념회 초대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공개수사에 나섰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희태 의원 돈봉투 사건을 물타기하려 전격적으로 수사에 뛰어든 것이었다. 폐회로텔레비전에는 사람도 조그맣게 나오는데, 봉투와 초대장이 구분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적 편향성에 항의해 사표를 낸 수사팀 검사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허아무개 검사가 수사 마무리 직후인 2012년 3월,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낸 것이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검찰은 "수뇌부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낸 것"이라고 해명했고, 허 검사를 일단 눌러앉혔다. 허 검사는 4개월 뒤 정기인사 때 사직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허 검사가 박 의장이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대한 축소수사 등 편향적인 수사지휘에 항의해서 사표를 낸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 순탄치 않았던 권력 실세 수사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이명박 정권의 핵심 실세 서열 1~3위로 꼽히는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구속했다. 중수부 관계자는 "저축은행 수사부터 계산하면 대검 중수부가 여권 인사 10여명을 잡아넣었다. 야권만 수사한다고 문제를 삼는 건 중수부로서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 실세에 대한 수사는 순탄치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여권 실세를 수사할 때) 수사팀 검사들이 울면서 그만둔다고 했고 (구속은 아니어도 최소한) 기소는 하겠다며 달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권 실세들을 수사할 때 그만큼 방해가 많았다는 얘기다.
최재경 중수부장은 2011년 12월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의 법무부 장관실을 직접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최 중수부장은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의 사촌 오빠 김재홍씨 사건,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인 박배수씨 사건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보고가 아닌 특정 현안을 놓고 중수부장이 법무부 장관을 찾은 것은, 외부에 알려질 경우 오해를 살 만했다. 최 중수부장은 이와 관련해 "나는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만, 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하고 법률적으로는 법무검찰의 수장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는 보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부 관계자도 "총장이 전화로 보고하기에는 부족하니까 중수부장이 직접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개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대통령 부인의 사촌 오빠 사건을 처리하는데 중수부장이 직접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할 정도였다. 검찰 관계자는 "최재경 중수부장이 어렵게 이상득·최시중·박영준을 잡아넣었는데, 그래서 야당에 대해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박지원·양경숙에 대한 무리한 수사로 나타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정권 말이 되면 검찰 수사의 무게는 정권 실세들한테 쏠리기 마련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 사건 등은 모두 정권 말에 터졌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돈을 준 사람들은 정권 초기에는 입을 열지 않는다. 본인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 말이 돼야 슬슬 입을 연다. 권력 실세들이 정권 말에 수사 대상에 오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래서 검사들은 스스로 '숙명적 하이에나'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상대 총장 체제의 검찰은 정권 말까지 야당만을 집중 겨냥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다친다는 생각을 했다.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정치 중립성이고 뭐고 없었다. 사건을 처리할 때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검찰에 대한 신뢰도 하나씩 쌓이는데, 너무나 두드러지게 여야 형평이 맞지 않으니 검찰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미네르바, 피디수첩,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사건 등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업보' 탓이다. 권력에 밀착했던 정치 검사들은 향후 정권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검찰은 국민의 신뢰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김정필 기자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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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야당 죽이기, 여당 감싸기
"한상대 검찰총장, 사건보고 받으면
'누가 우리편이야' 먼저 물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에 지시 내려져
"너무 노골적이라 내부서도 불만"
최시중·박영준 구속 수사발표날
확인안된 '노건평 뭉칫돈' 흘리고
민주당 대선경선 코앞 양경숙 체포
박지원 표적에 "수사가 아닌 정치"
2012년 초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산하 1담당관실에는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범죄 동향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1담당관실은 부정부패 사범의 비리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부서다. 검찰 관계자는 "너무 노골적인 지시였기 때문에 당시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근무했던 한 검사는 "정권 말이 되면 그런 첩보 보고서를 다 만든다"고 말했다. 범죄정보기획관은 검찰 직제상으로 대검 차장검사 밑에 있지만, 실제로는 검찰총장한테 '직보'한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한상대 검찰총장이 이끈 검찰은 정치적 균형추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이나 야당 관련 사안은 근거 없이 의혹을 부풀리며 무리한 수사를 한 반면, 정권이나 여당에 부담되는 내용은 감싸고돌았다. 최소한의 기계적 형평도 찾아볼 수 없었다.
■ 검사장도 몰랐던 노건평씨 의혹 발표
2012년 5월18일 이금로 대검 수사기획관은 오후 2시에 파이시티 사건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수사 한달 만에 구속한 사건이라 언론의 관심은 컸다.
그러나 이날 오전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의혹을 터뜨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닷새 앞두고, 검찰이 확인도 되지 않은 '핵폭탄급' 의혹 내용을 서둘러 공개한 것이다. 이 차장검사는 "자금 추적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뭉칫돈이 오간 노씨 관련 계좌를 발견했다. 노 대통령 퇴임 직후인 2008년 5월까지 3~4년간 계속 돈이 오가다 공교롭게도 퇴임 직후 흐름이 딱 끝났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파이시티 수사결과 보도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물타기하는 효과를 냈다. 언론의 관심은 온통 '노건평씨 수백억원대 비자금'에 쏠렸다.
이 차장검사는 다음날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뭉칫돈은 노건평씨와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선이 끝난 뒤인 지난해 12월27일이었다. 의혹만 한껏 부풀려졌다가 허망하게 끝난 것이다.
노건평씨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의혹을 일개 지검의 차장검사가 혼자 결정해 언론에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건리 창원지검장도 이준명 차장의 브리핑 내용을 몰랐다고 한다. 그런 일을 대검찰청의 지시 없이 그냥 할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한상대 총장 등 검찰 지휘부와 교감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이건리 창원지검장은 이후 검찰 인사에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윗분'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민주당 범죄 털어라" 총선·대선 앞둔 작년초 바빠진 검찰
여권실세 수사때마다 숱한 방해
편향성 항의해 사표 내기도
"정권 바뀌면 다친다고 생각해
중립성이고 뭐고 없었다"
균형추 잃은 한상대의 검찰
결국 국민 신뢰 갈수록 잃어
■ "누가 우리 편이야?"
대검 중수부장 등을 지낸 특별수사통인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특별수사를 할 때 갖춰야 할 덕목을 10가지로 요약한 '수사십결'이란 글에서 "칼에는 눈이 없다. 심하게 휘두르면 나도 다친다"고 말했다. 칼을 쥔 자가 이를 나쁘게 사용하면 자기가 찔리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원칙에 맞게 칼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8월 말 친노 매체인 <라디오21>의 대표 양경숙씨를 체포했다. 민주당 공천희망자 3명한테서 40억원을 받고 민주당에 자금을 댄 혐의였다. 당시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막 앞두고 있었다. 수사 초기에 중수부 안에서조차 "이건 공천헌금 사건이 아니라 양경숙 사기 사건이다. 이건 수사가 아니라 정치다"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의도를 품고 있는지는 3가지 리트머스 시험지로 판별할 수 있다. 수사를 착수한 배경은 무엇인지, 사건 배당을 비롯한 수사 의지는 어떤지, 피의사실 공표가 있었는지 등이다. 양경숙씨 사건은 이런 3박자가 들어맞은 '정치 수사'였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수사에 나선 배경과 관련해 "제보가 들어왔고, 돈의 액수가 40억원으로 컸다. 양씨의 거짓 행각을 당시는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사 배당과 강도가 어땠는지를 보면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초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과 양경숙씨 사건을 동시에 들고 있었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수사의뢰를, 양경숙씨 사건은 제보를 받았다. 그런데 한상대 총장의 사건 처리 방식은 판이하게 갈렸다. 새누리당 공천헌금 사건은 곧장 부산지검 공안부로 내려보낸 반면, 양경숙씨 사건은 중수부에 '하명'을 내린 것이다.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도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한상대 총장은 사건을 갖고 찾아가 보고를 하면 '누가 우리 편이야'부터 물어봤다"고 말했다.
검찰의 표적은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이었다. 문성근씨 등 일부 '친노' 인사들도 거론됐다. 양씨가 박 의원을 만났고 문자메시지도 수천통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양씨와 박 의원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 언론에 그대로 보도돼, 수사 보안이 지켜지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수사 개시 일주일 만에 양씨의 거짓 행각이 드러났다. 민주당에 보냈다는 송금전표도, 박 의원이 공천희망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도 모두 가짜로 들통났다. 검찰은 양씨의 수십개 차명계좌와 그 연결계좌를 훑었지만 박 의원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중수부는 '낚인' 것을 알고 서둘러 수사를 접었지만, 수사결과 발표 자료에는 참고인 신분이었던 박 의원의 의혹 내용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양씨와 함께 구속기소된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양씨의 사기에 놀아났다"고 주장하며 양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까지 했지만, 중수부는 "사기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중수부가 무리하게 야당 정치인을 겨냥했다가 사기극에 휘말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서울중앙지검 조사부가 양씨를 사기죄로 추가 기소하면서 사기가 아니라던 중수부는 굴욕을 당했다.
■ 편향적인 수사지휘에 사표 낸 검사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당내 경선에서 돈봉투를 받았다는 새누리당 고승덕 의원의 발언에 따라, 새누리당 박희태 의원 등을 돈을 건넨 혐의로 한창 수사하고 있었다. 같은 달 19일 검찰이 국회의장 부속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수사가 본궤도에 올랐다.
그런데 같은 날 <한국방송>(KBS)은 민주통합당 총선 예비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전당대회 예비경선장이었던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돈봉투를 돌린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다렸다는 듯, 검찰은 하루 뒤인 20일 교육문화회관을 압수수색했다. 새누리당 돈봉투 사건은 쏙 들어갔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장에서 나눠준 것은 돈봉투가 아니라 '출판기념회 초대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공개수사에 나섰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희태 의원 돈봉투 사건을 물타기하려 전격적으로 수사에 뛰어든 것이었다. 폐회로텔레비전에는 사람도 조그맣게 나오는데, 봉투와 초대장이 구분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적 편향성에 항의해 사표를 낸 수사팀 검사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허아무개 검사가 수사 마무리 직후인 2012년 3월,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낸 것이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검찰은 "수뇌부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낸 것"이라고 해명했고, 허 검사를 일단 눌러앉혔다. 허 검사는 4개월 뒤 정기인사 때 사직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허 검사가 박 의장이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대한 축소수사 등 편향적인 수사지휘에 항의해서 사표를 낸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 순탄치 않았던 권력 실세 수사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이명박 정권의 핵심 실세 서열 1~3위로 꼽히는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구속했다. 중수부 관계자는 "저축은행 수사부터 계산하면 대검 중수부가 여권 인사 10여명을 잡아넣었다. 야권만 수사한다고 문제를 삼는 건 중수부로서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 실세에 대한 수사는 순탄치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여권 실세를 수사할 때) 수사팀 검사들이 울면서 그만둔다고 했고 (구속은 아니어도 최소한) 기소는 하겠다며 달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권 실세들을 수사할 때 그만큼 방해가 많았다는 얘기다.
최재경 중수부장은 2011년 12월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의 법무부 장관실을 직접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최 중수부장은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의 사촌 오빠 김재홍씨 사건,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인 박배수씨 사건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무보고가 아닌 특정 현안을 놓고 중수부장이 법무부 장관을 찾은 것은, 외부에 알려질 경우 오해를 살 만했다. 최 중수부장은 이와 관련해 "나는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만, 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하고 법률적으로는 법무검찰의 수장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는 보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부 관계자도 "총장이 전화로 보고하기에는 부족하니까 중수부장이 직접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개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대통령 부인의 사촌 오빠 사건을 처리하는데 중수부장이 직접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할 정도였다. 검찰 관계자는 "최재경 중수부장이 어렵게 이상득·최시중·박영준을 잡아넣었는데, 그래서 야당에 대해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박지원·양경숙에 대한 무리한 수사로 나타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정권 말이 되면 검찰 수사의 무게는 정권 실세들한테 쏠리기 마련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 사건 등은 모두 정권 말에 터졌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돈을 준 사람들은 정권 초기에는 입을 열지 않는다. 본인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 말이 돼야 슬슬 입을 연다. 권력 실세들이 정권 말에 수사 대상에 오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래서 검사들은 스스로 '숙명적 하이에나'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상대 총장 체제의 검찰은 정권 말까지 야당만을 집중 겨냥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다친다는 생각을 했다. (정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정치 중립성이고 뭐고 없었다. 사건을 처리할 때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검찰에 대한 신뢰도 하나씩 쌓이는데, 너무나 두드러지게 여야 형평이 맞지 않으니 검찰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미네르바, 피디수첩,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사건 등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 '업보' 탓이다. 권력에 밀착했던 정치 검사들은 향후 정권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검찰은 국민의 신뢰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김정필 기자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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