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법원이 공정방송을 방송사 근로조건으로 판단한 첫 판결이 나왔다. MBC 노동조합의 파업이 정당했다는 법원의 1심판결을 두고 언론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신문의 경우 한겨레신문·경향신문·한국일보는 판결의미를 상세히 전하고 사설을 통해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18일자와 20일자 지면에서 이번 판결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8일 지면에서 단신 처리했다. 방송의 공공성과 언론자유에 대한 신문사 간의 인식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1심판결이 난 다음날인 1월 18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지면에는 관련 내용이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8일자 11면에서 1단짜리 단신으로 “MBC가 노조원들에 내린 징계 처분에 대해 법원이 모두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법원은 방송사의 공정방송 의무가 근로조건에 해당하므로 사측이 인사권 남용으로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것은 근로조건 저해라며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했는데, 조선일보는 이 같은 판결 취지는 전하지 않았다.

   
▲ 조선일보 18일자 11면 기사.
 
20일자에서도 조중동 지면에는 관련 기사가 없었다. 언론공공성과 관련한 이슈를 철저히 외면하는 이 같은 보도행태는 지난 2012년 170일간의 MBC 파업 당시 보도행태와 유사하다.

미디어오늘이 2012년 1월 30일부터 그 해 7월 17일까지 170일 간 조중동의 MBC파업 관련기사를 조사한 결과 MBC파업에 대한 내용만으로 작성된 기사는 동아일보 12건, 조선일보 17건, 중앙일보 17건에 불과했다. <무한도전>이 장기 결방되고 <뉴스데스크>가 축소 편성되는 가운데 공정방송 여론이 높았던 시기에 10일에 한 번 꼴로 기사를 쓴 것이다.

조중동은 1월 31일자에서 MBC파업돌입을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단신보도 또는 무시로 일관했다. 이용마 기자가 파업으로 첫 해고를 받았을 때도 조중동엔 관련 기사가 없었다. 그러다 총선과 가까워지며 “민주당과 합작해 정치파업을 한다”(조선일보 3월 9일자 사설)고 주장하거나 “나꼼수식 뉴스 만드는 MBC노조의 타락”(동아일보 3월 7일자 사설)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이 등장했다.

조중동이 이번 판결을 무시한 것과 달리 한겨레신문은 18일자 1면 머리기사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파업 전까지 벌어진 9시뉴스의 불공정 논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인사 조처 등도 불공정 보도 사유로 인정됐다”며 “이번 판결은 방송의 공정성을 방송사의 근로조건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결정”이라고 환영했다.

한겨레신문은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의 결과가 아니라 제작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아래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는 법원의 판결을 두고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방송의 공정성에 명확한 원칙을 내놨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MBC의 항소 결정을 두고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 결여와, 2월 말 사장 선임을 앞둔 정권 눈치 보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신문 18일자 1면 기사.
 

   
▲ 경향신문 18일자 3면 기사.
 
경향신문 또한 같은 날 1면에서 판결소식을 전하며 “이번 판결의 핵심은 방송의 공정성을 기자나 PD 등 방송노동자들이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근로조건으로 봤다는 것”이라며 “파업목적은 특정 경영진을 퇴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김 전 사장 등 경영진이 공정보도를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라고 해석했다.

경향신문은 18일자 사설에서 “불공정 편파왜곡 보도가 극에 달했던 (2012년) 당시에 비해 MBC를 비롯한 방송매체의 상황이 별반 나이지지 않았거나 더 악화된 측면도 있다.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종북 공안몰이 등을 비판하고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부추기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이 방송매체의 실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20일자 사설에서 “법원이 언론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판결해 언론계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회사 측이 이를 처벌하는 것을 불법이라는 의미”라며 “MBC는 판결 취지에 따라 즉각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무너진 방송 공정성 회복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20일자 사설.
 
한국일보는 이어 “권력이나 사주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에 의해 공적 기능이 훼손되고 있는 최근의 언론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환영한 뒤 “각 언론 종사자들도 언론의 공공성이란 사회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중동을 비롯해 사주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