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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스크랩] 돈 많은 회장님 ‘특별히’ 풀어주고, 힘없는 시골 어르신들 징역 28년 구형이라니…

by skyrider 2015. 9. 2.

 

돈 많은 회장님 ‘특별히’ 풀어주고, 힘없는 시골 어르신들 징역 28년 구형이라니…

- <생각보기> 망각의 정치, 그리고 조용한 투쟁

 

 

용산재개발 철거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영화 '소수의견'을 보면

정경유착의 부패한 검사가 철거민을 대변한 정의로운 국선변호사에게 애국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봉사에 의해 돌아가는 거야.

박재호(철거민)는 희생을 했고 나는 봉사를 했어. 근데 당신은 무엇을 했지?"

영화 속에서 힘없는 시민 박재호는 국가가 자행한 부당한 공권력에 아들을 잃는다.

과잉진압에 따른 인사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사법기관은 증거 인멸과 조작을 서슴지 않는다.

담당 검사는 알량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철거민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이처럼 힘없는 자들의 '희생'과 권력에 기생하는 기득권의 '봉사'는 안타깝게도 영화 속 상상만이 아니다.

 

 

있는 자, 없는 자, 그리고…

얼마 전 광복절 특별 사면에서 SK 최태원 회장은 경제 활성화 기여를 이유로 출소한 반면

화물연대 노동자나 건설 노조원들은 특별 사면대상에서 제외되었다.

9년째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해온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 역시 사면 받지 못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2007년 1월부터 2013년까지 반대투쟁으로 665명이 연행됐고,

이중 기소된 주민은 구속기소자 25명을 비롯해 총 539명에 이른다고 한다.

재판에 넘겨진 주민 중에서는 204명이 실형, 집행유예, 벌금형 등의 판결을 받았다.

또 최근엔 밀양 송전탑 반대활동 과정에서 기소된 주민 18명에게 검찰이 징역 3~4년씩을 구형해 논란이 일었다.

18명에게 각각 구형된 형량을 모두 합하면 징역 28년 4개월, 벌금 1300만원.

이들 주민은 주로 한전의 공사 진행을 막은 혐의(업무방해), 공사 저지과정에서

경찰과 마찰을 빚은 혐의(공무집행방해) 등을 받았는데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이 왜 평범한 노동자에서 범죄자가 되었는지 사실 잘 모른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활동 관련 뉴스는

더 이상 세월호 참사 관련 뉴스만큼이나 핫이슈가 아니다.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면 23일 강정마을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용산참사 유족, 밀양과 청도 송전탑 반대 활동 주민, 세월호 참사 가족 등 100여명이 제주 평화 기행을 떠났다는 내용의 기사만이 짤막하게 나온다.

물론 메이저 신문사에서는 더 이상 이런 뉴스조차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뉴스로 짧게 다뤘다 하더라도 워낙 하루하루 쏟아져 나오는 단신들이 많아 누구하나 주목하지 않는다.

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가족이 세월호 가족과 밀양, 강정 주민들과 제주도를 가는지 대중은 관심이 없다.

 

 

뉴스 홍수, 대중은 망각 속으로…

알랭드 보통은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한순간에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행위(뉴스의 시대, 알랭드 보통 저)'가

요즘의 뉴스 행태라고 지적한다.

이제는 뉴스를 군사정권 하에서처럼 굳이 통제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단신을 쏟아내며 지속적으로 최신 뉴스로 업데이트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문제의식을 점점 망각의 자리로 보내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종일 종편에서 북한과의 대치상황만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기만 해도

대중의 머릿속에 다른 뉴스를 모조리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무엇이 불의인지 정의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된다는데 있다.

왜 제주도 강정마을의 일반 주민들 몇 백 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는지,

밀양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사연이 있기에 공무집행 방해로 징역을 살아야만 하는지 대중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세월호 사태를 경험하면서 대중이 어떻게 공감과 분노에서 멀어지는지 알게 됐다.

유족들의 행보에 대해서 대중들의 시선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다.

사건 당시 한 달 정도 함께 극렬하게 공분했던 대중들은 서너 달이 지나자 서서히 세월호 뉴스에 피로감을 내비쳤다.

세월호 인양문제와 보상 문제, 특별법 등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는

유가족들이 종북 좌빨로 몰려 더 이상 집단 간에 이성적 대화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유가족이 언론에 의해 종북 빨갱이로 둔갑되면서 더 이상 세월호 사태는 공감의 뉴스가 아니었다.

우리사회에서 종북 빨갱이라는 분열의 프레임을 들이대는 순간 합리적인 사회적 담론이 생겨날 가능성은 원천봉쇄된다.

이 때문에 종종 국가는 이러한 분열 프레임을 통해 국가적인 차원의 의제를

시민들의 합의나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해왔다.

반공주의와 안보 가치가 지배하던 군사독재시대의 의사결정방식이 우리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반공과 안보의 논리라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라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안보 위해서라면 불의도 참아라?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립과 밀양 송전탑 문제도 결국 안보가치와 개발중심의 경제논리로 인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사독재 시대의 의사결정 과정을 재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안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사회 질서 유지라는 논리로 불의를 참아야 하는 나라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은 그렇게 간단하게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알베르 카뮈가 일찍이 '사회적 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듯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권리는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

"115번(송전탑)과 116번이 저기 밑에 보이는 고정리 1반과 2, 3반의 한가운데에서 마을을 갈라놓는 것도 문제인데,

121번은 하우스 논농사를 짓고 있는 가운데에 세워져 있어요.

거기는 농민들이 그 하우스에서 먹고 자고 상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살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공사를 하는 것은 너거들 죽으라고 하는 것밖에 더 됩니까?"

<밀양 사태를 조사하러 온 판사에게 호소하는 밀양 밀양대책위 김영자 총무 이야기 중>

"우리는 일생동안 시골에서 농사짓고 자식들 키운 뒤 노년의 평화를 즐기던 농어민이었고,

공장에서 땀흘려 일하던 노동자였으며, 호프집을 꾸려가던 자영업자였고,

평범한 주부로, 회사원으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던 부모이자 시민이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가족이 세월호 가족과 밀양, 강정 주민의 제주 평화기행 출발 기자회견문 중>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과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운동권도 아니고 종북 빨갱이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농민일 뿐이고 이들은 단지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데 대한 인간다운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국가의 개발과 안보 논리가 필수불가결 했다면 이들에게 적어도 합당한 명분을 제공하며

오랜 시간 설득을 했어야 했고 졸지에 범죄자가 되는 일은 막았어야 했다.
 

 

 

'분노하라' 아니 '제대로 분노하라'

'분노하라'는 2011년 93세의 유대계 독일 작가 스테판 에셀이 쓴 책으로 자극적인 제목만큼이나 출간당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 품위, 존엄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분노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국가의 폭력, 자본의 폭력, 제도와 관행의 폭력으로부터 인간다움을 무시당할 때 분노해야 하며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나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공동생활에 제약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제안한다.

제주도와 밀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운동가들이 앞다퉈 찾아가는 이유도

결국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이 환경운동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망각의 정치를 일삼으며 국익이라는 망령에 의해 모든 사회적 이슈를 덮어가며 정권을 유지해왔다.

친일파의 기억도 모조리 말살시켰고 민주화 운동도 그 의미를 왜곡시켜가며 최대한 기득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제주도건, 밀양이건, 아니면 그 어디에서건,

누군가는 대중의 기억을 복원시키는 조용한 투쟁을 계속할 테고

결국 공감과 연대의 정신이 큰 목소리를 갖는 시대가 올 거란 믿음이다. 

 

 

정은호 기자 freelan00@naver.com


출처 : 언덕위에 바람
글쓴이 : Ψ風雲流水(이상기), 몽유비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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