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잘 돌아가나?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한 사실이 없다고 경찰조사에선 밝혀졌는데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허위보도로 순진한 청년을 테러리스트로 만든 종편방송

by skyrider 2016. 1. 5.

토크콘서트 '폭탄 청년' 그 후 1년

시사INLive | 김연희 기자 | 입력 2016.01.05. 10:44

'익산의 투사 오군과 함께 민주노총 불법집회 반대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제2차 민중총궐기가 있던 12월5일, 보수 논객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앳된 모습의 청년과 찍은 사진 한 장을 트위터에 올렸다. 2014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에서 폭발물을 던졌던 오민준씨(19·가명)였다(<시사IN> 제380호 ‘’ 기사 참조). '참으로 장한 청년입니다' 등등 오씨를 추켜세우는 댓글이 뒤를 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도 ‘익산 열사 오군 지금 광화문 출동’이라는 제목으로 신 대표의 트윗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은 추천에 해당하는 ‘일베로’를 668개 받았다. 테러범 옹호는 안 된다는 댓글도 보였지만 절대다수는 오씨를 ‘열사’ ‘의사’ ‘영웅’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12월10일에는 일베에 ‘오늘은 오 열사 의거 1주년 기념일입니다’ ‘잊지 말자 12월10일 오 열사’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5년 5월 오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자칫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중략) 다만 피고인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며 앞으로 지도 교육을 통해 이념적 편향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는 점을 감안했다'라고 감경 사유를 밝혔다. 화상을 입은 피해자 두 명 중 한 명은 오씨를 용서했으나 토크콘서트 진행 스태프였던 곽성준씨(38)는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오군은 '앞으로 만회하는 삶을 살겠다'라면서 항소를 포기했다.

ⓒ연합뉴스 : 오군은 2014년 12월10일 전북 익산 토크콘서트 현장에 폭발물을 터뜨려 유죄를 받았다.
ⓒ연합뉴스 : 오군은 2014년 12월10일 전북 익산 토크콘서트 현장에 폭발물을 터뜨려 유죄를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씨는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며 익산에서 살고 있다. 오씨는 맞불집회에서 신혜식 대표와 사진을 찍게 된 경위에 대해 '의도한 건 아니다. 집회 구경 갔다가 아는 사이라서 우연히 찍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통화 도중 그는 화상을 입은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내비쳤다. '폭탄을 던진 건 해산 목적이었다. 피해자가 생길 걸 염두에 두고 한 게 전혀 아니다. 그분들한테는 굉장히 미안하다.' 오씨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해 누군가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했다.

반면 토크콘서트를 방해하고 무산시킨 행동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내 소신대로 한 거다. 나도 죄를 지었지만 종북을 말하는 것도 죄이다. 국가보안법 알지 않나.' 동일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이 면회 왔을 때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폭력을 쓰진 않겠다. 그때는 토마토 정도, 그쯤에서 멈추겠다'라고 답했다. 의사나 열사로 불리는 것에 대해 묻자 '낯 뜨겁다'라고 말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가 오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가 오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양쪽에서 오군을 활용만 하려고 한다'

오씨를 무료 변론했던 김용호 변호사는 '그 친구 말투가 원래 그렇다. 처음 봤을 때는 나도 ‘뭐 이런 ××가 다 있나’ 했다'라고 회상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이다. '민변 성향으로 보면 피해자 쪽 변론하는 게 어울리지만, 나이도 어리고 교육 목적으로 접근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라는 김 변호사는 오씨를 두고 '그냥 애'라고 말했다.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다. 왕따를 당하거나 한 것도 아니다. 너무 평범하고 주목도 받지 못하니까. 그 나이 때 있는 영웅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오씨가 저지른 사건은 평범하지 않다. 오씨는 인터넷에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라며 전날 범행을 예고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큰일처럼 썼지만 실제로는 소란 정도 일으키려고 했다. 수사기관에서도 폭발물 실험을 해봤는데 인명을 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가 보기에 오씨는 ‘잡범’에 불과하다. '너는 열사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그냥 범죄자라고 계속 얘기했다. 가만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잊히는 애다. 본인이 잘못한 걸 알고 있다.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면 나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겠나.'

지난해 오씨의 담임선생님이었던 김한명 교사도 비슷한 평을 했다. '엉뚱한 면이 있어도 마음이 악한 애는 아니다. 네이버 밴드나 페이스북으로 동창들과도 소식을 주고받는다.' 김 교사는 신혜식 대표의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오씨를 호되게 꾸짖었다고 했다. '혼낼 건 혼내고 학생이니 용서할 건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보면 양쪽에서 활용만 하려고 한다.' 기자가 받은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는 사절하고 싶다면서도 질문에는 꼬박꼬박 대답했다. 직접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면서는 '죄송하다'는 말을 붙였다. 내뱉는 말은 강했지만 태도는 순진했다.

그러나 과연 오씨는 자신이 일으키는 파장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을까. 지난 2월 오씨는 일베에 출소 인증샷을 올렸다. 수감돼 있는 동안 극우 인사들에게 받은 ‘응원 편지’도 사진을 찍어 첨부했다. 현재 이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이후로도 오씨는 종종 일베에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강연에 참석하고 함께 찍은 사진과 후기를 올리면서도 얼굴은 모두 가렸다.

ⓒ시사IN 김연희 : 토크콘서트 스태프로 부상을 당한 곽성준씨는 아직도 오른쪽 뺨에 거즈를 붙이고 다닌다.
ⓒ시사IN 김연희 : 토크콘서트 스태프로 부상을 당한 곽성준씨는 아직도 오른쪽 뺨에 거즈를 붙이고 다닌다.

극우 진영으로 넘어오면 오씨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진다. 신혜식 대표는 트위터에서 오씨를 '애국 세력의 영원한 보배'라고 지칭했다. 신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우리 진영에서 어른들이 신은미·황선을 비판했던 걸 오군이 행동에 옮긴 것 아닌가. 젊은 애들이 나선 것에 대해서 보배라고 한 거다. 앞으로 폭력만 없다면 오군을 잘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폭발물 투척에 대해 묻자 '누가 그걸 잘했다고 했나. 저번에 만났을 때도 폭력은 안 된다고 얘기했다. 나는 100% 오군을 옹호한다. 방법은 안타깝지만 그날 항의를 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존재를 인식시키려 한 행동은 투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오씨를 의지와 신념에 찬 인물로 묘사했지만 정작 오씨가 알던 정보는 잘못된 것이었다. 오씨는 토크콘서트 도중 신은미씨에게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셨죠?'라고 묻고는 폭발물에 불을 붙였다. 이후 경찰은 신씨가 앞선 토크콘서트에서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상낙원’이라는 표현은 TV조선이 토크콘서트를 보도하며 처음 나왔다.

토크콘서트 스태프 곽성준씨에게 오씨는 가해자다. 곽씨는 무대로 나가려는 오씨를 저지하다가 폭발물이 바닥에 떨어져 오른쪽 뺨과 어깨, 손에 화상을 입었다. 이후 30일간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른쪽 뺨에 거즈를 붙이고 다닌다. 이제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아직도 불을 보면 움찔한다. 치료비로만 900만원이 들었다. 곽씨는 단순히 개인적인 보상을 받으려고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이건 사회적인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김연희 기자 / uni@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