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라디오서 어버이연합 보도한 기자 다음날 교체
KBS 간부 “철저한 중립성 지켜야”…“눈감는 것이 KBS 입장인가”
이하늬 기자 hanee@mediatoday.co.kr 2016년 04월 23일 토요일
KBS가 전경련과 어버이연합 관련 의혹을 라디오에서 전달한 기자를 갑자기 교체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KBS 라디오2국 관계자는 복합적인 이유로 인한 교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는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KBS라디오2국이 지난 22일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간추린 모닝뉴스’를 진행하던 이재석 국제부 기자를 급작스럽게 교체해 방송이 불방되는 일이 벌어졌다. 황정민 앵커는 이날 방송에서 “오늘 간추린 모닝뉴스는 하루 쉽니다”라고 전했다.
이 기자가 교체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21일 방송 때문이다. 이 기자는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이 주인으로 추정되는 계좌에 1억2000만원의 거액을 지원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KBS라디오 '황정민의 FM대행진' 홈페이지 캡처 |
이 기자는 해당 소식을 전하며 “JTBC와 시사저널을 비롯한 몇몇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일단 전경련이 돈을 보낸 사실 자체는 확인이 되는 것 같다”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전경련이 사실상 집회를 은밀하게 지원하고 동원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의 교체는 이수행 2라디오 국장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해당 프로그램이 속한 2FM의 김병진 부장은 23일 통화에서 “국장께서 월요일이 개편이니 기획을 새로 시작하면 좋겠다, 그런 결정을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국장이 전화로 교체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번 어버이연합 보도에 대해 “해당 코너가 ‘간추린 모닝뉴스’이기 때문에 팩트 정도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면 좋은데 추측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며 “시사프로그램도 아닌데 약간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경우가 있어서 예전에도 ‘중립적인 입장’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다른 매체를 인용보도한 것 역시 문제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KBS 기자를 쓴다는 건 우리 회사의 입장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기대가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 기자는 이전에도 다른 매체 인용보도를 수차례했고 이는 저희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김 부장은 이어 “월요일에 개편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해당 프로그램 PD가 알아서 기자를 섭외했다면 이제는 라디오국과 보도국에서 공식절차를 밟아서 기자를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해당 코너는 김기환 사회부 기자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 21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시사저널 건물을 찾아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그러나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KBS기자협회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성재호 KBS본부 위원장은 23일 통화에서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라고 못 박았고 이어 개편과 관련한 교체에 대해서도 “국장이 이런 식으로 코너 출연자를 바꾸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성 위원장은 이어 “인용보도가 문제라면 외신 기사는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이고 타매체 기자도 KBS에 나오면 안된다”며 “가정법을 사용한 것 역시 ‘추측성 보도’가 아니라 기자가 신중한 것이다. 이런 식의 보도는 어느 언론사나 많다”고 말했다.
성 위원장은 ‘KBS 입장’ 이라는 부분에 대해 “어버이연합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 KBS의 입장인가”라며 “어버이연합이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가 입장을 내놓았는데도 눈을 감고 있는 건 국민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KBS는 메인뉴스에서 관련 뉴스를 다루지 않았다.
또 다른 KBS본부 관계자도 “보도국 기자 입장에서는 아이템이 나가냐, 안 나가냐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BS본부와 KBS기자협회는 이번 주말 입장을 정리해 25일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