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경제' 팩트체커 최배근 건국대 교수 "가짜뉴스가 경제 망친다"
[경향신문] 문재인 정부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경제일 것이다. 재계를 비롯한 보수 측은 ‘늪에 빠졌다’고 한탄하고, 진보 측은 ‘미진하다’고 난리라 균형을 잡기도 어렵다. 경제는 명백한 수치로 측정되고 발표되지만 언론이 이를 왜곡하고,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다. 경제수치는 매우 전문성을 요구해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경제보도의 ‘팩트체커’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 있다. 건국대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61)다. 그는 최근 TV 방송을 비롯한 몇몇 팟캐스트에서 풍부한 데이터에 날카로운 분석으로 경제보도에서 가짜뉴스를 집어내고 있다. 기사를 쓴 기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런 ‘쪽집게’이고, 정부로서는 고마운 ‘흑기사’다. 그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경제보도의 팩트체커를 자처
-어제(5월 2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회견을 했다. 그 내용에는 내년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를 명확히 확인할 자료가 없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신뢰할 수 있는 연구는 1990년부터 최근까지 근 40년간 미국 전역에서 이뤄진 체계·장기적인 연구인데 결론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고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제조업 충격이다. 최저임금에 대해 고용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이다.”
-제조업 충격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한국GM이 군산에서 철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나는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영업을 실증분석해봤다. 자영업 폐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제조업 일자리 변화이고, 두 번째가 가계소비지출이다. 세 번째가 바로 임금인데,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원이 없는(가족 경영) 자영업자가 줄어든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직원 없는 자영업자가 주는 이유는 뭔가.
“음식·숙박·도소매업에 종사하는 우리 영세자영업자의 소득은 임금근로자의 27~28%밖에 안 된다. 2004년부터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약간의 충격에도 폐업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한계에 있는 이들이 먼저 임금근로자로 옮겨가는 것이다.”
-최 교수는 상용근로자·임시직·일용직 중 1년 이상 근로하고 상여금이나 사회복지수당을 받는 상용근로자 비중이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2.4~3.7%포인트 증가했다고 했다. 이것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계 자영업자가 임금근로자로 옮겨간 것인가.
“2018년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일자리의 질이 개선됐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적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자가 너무 많고, 이런 구조에 기생하는 사업장이 많다는 것이다. 억지로 저임금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다 보니 저부가가치 사업장이 자연스럽게 도태·정리되지 못했다. 그런 사업장이 지금 최저임금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주 보도된 ‘대졸 실업자 60만명 사상 최대’ 역시 가짜뉴스라고 팩트체크했다.
“1월 고용통계 발표 때 일부 언론이 ‘50대 실업자 역대 최대’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50대 취업자도 최대였다. 실업자는 15세 이상에서 학생이나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를 뺀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를 말한다. 정확히 보려면 15세 이상 고용률을 봐야 한다. 고용률은 긍정적인데 실업자 대목만 키워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대졸 실업자 역대 최대’도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대졸 은퇴자도 실업자로 분류된다. 학력이 높아지니 대졸 실업자는 계속 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대졸 취업자도 역대 최대다.”
-보수언론은 그렇다지만 관료까지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관료들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개혁주체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정책 성과가 안 나오거나 경제가 나쁘다는 분위기를 틈타 다시 등장한다. 관료뿐 아니라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임금이나 노동조합을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한쪽 입장을 편향되게 강조한다.”
문 대통령은 1기 경제팀을 경질하고 1월 10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일자리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졌다”고 고백했다. 정부의 정책은 시민운동하듯 혹은 학술논문 발표하듯 자기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회를 통과해 법으로 제도화돼야 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비로소 실행력이 생긴다. 그렇지 않고 발표만 하고 실행되지 않으면 정부 신뢰도가 낮아진다. 문 대통령이 학자 출신 참모들을 모두 교체한 이유가 바로 이 대목 때문 아닐까.
정부 경제 개혁의지 후퇴 ‘역주행’
이 지적에 최 교수도 공감했다. 최 교수는 “분명 실수가 있었고, 가장 큰 실수는 혁신성장을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 충격을 단순히 경제순환 문제로 판단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방식에서 미국식과 스웨덴식 모델 중 스웨덴식 모델을 적용했다. 스웨덴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지 않고 경영계와 노조가 조금씩 양보·합의하는 방식을 택했다. 경사노위처럼 노조를 정책에 참여시켜 책임도 지웠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구조 재편 시기를 놓친 데다 2018년 고용지표에 취업자가 1만 명 이하로 급감하면서 보수진영에 공격의 빌미를 주고, 여기에 가짜뉴스가 더해지면서 정부 개혁의지가 후퇴하고 말았다. 결국 2018년 경제 주도권은 김동연 부총리(관료)에게 넘어가고 최저임금 1만원 포기,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등 ‘역주행’이 나타났다는 것이 최 교수의 진단이다.
-소득주도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하청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그 핵심은 재벌개혁인데, 공정위는 재벌개혁에 손도 못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는 수출과 제조업, 대기업이 한 몸이다. (그래서 손대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 경제는 2015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 세계교역이 구조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5년과 2018년 우리 수출액을 비교하면 325억 달러 증가했는데 반도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준 것이다. 그나마 지금 경제는 가계소비로 버티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덕택으로 가계소비가 지난해부터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이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1분기도 가계소비가 성장률보다 높다.”
-가계소비가 증가한 것도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인가.
“그렇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전체 가계의 60%에서 명목소득이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50%, 하반기에는 40%, 올 상반기에는 20%가 줄었다. 중산층 명목소득 감소가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다. 그러나 하위 20%는 여전히 어렵다. 보수언론은 이를 집중 부각하는데 이는 특수계층이다. 고용통계에서는 인구변수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년 동안 소득 하위 20%에 60세 이상 인구가 54만명이나 증가했다. 60대 이상이 되면 극소수 자산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이 하위 20%에 편입된다. 하위 20%에는 노인 비중이 70%이고, 가구주 평균연령이 63.3세다. 최저임금과 65세 이상 일자리는 무슨 관계가 있나. 하위 20%는 내년에도 더 늘어난다. 이 계층은 민간노동시장에서 일자리 잡기가 어려워 공공근로나 사회복지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1~2년 전 시행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효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을 중단하고 2~3년 후면 관료주의적 경제정책 후유증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특히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에 최근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려하는 입장을 냈다.
“그렇다.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후유증에 대비해 체질 강화를 해야 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3기 신도시를 얘기했는데 공급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 전례가 없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도록 부동산 가격 하락을 감내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는 ‘한국적 양적 완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가계는 죽고, 은행을 살리는 양적 완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750만 가구가 집을 빼앗겼다. 이후 가계소비 위축이라는 큰 후유증을 겪었다. 우리는 주택대출을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인수하고, 주택은 장기 공공임대로 전환해 거주자를 보호한다. 그러면 가계는 주택대출금에서 해방되고 집을 매각한 여유금까지 생긴다. 주택대출이 대부분인 가계부채를 도려내지 않고 가계소비를 늘리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 경제의 해법은 양극화를 극복하고 제조업에 대해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 산업구조 개편이 해법인가.
“그 두 가지다. 체력 강화가 핵심 요소다. 급속히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조세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증세가 불가피하다. 국민의 45%인 면세자에게도 과세해야 한다.”
경제사학회장인 ‘스타급’ 학자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팩트체커를 자처한 이유가 뭔가.
“잘못된 경제뉴스는 진영논리를 떠나 사회적으로 불안심리를 만들고, 경제를 위축시키는 폐해를 낳는다. 지식인으로서 잘못된 것은 구별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최 교수는 1959년 서울 출신으로 숭문고를 나와 1979년 건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아 전국대학생통일문제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고 통일연구회 활동과 학내 시위로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갔고,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로 유학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건국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와 참여연대를 만들어 통일분과장을 맡았다.
그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분단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는 1999년 교수를 하면서도 ‘하남민주연대’를 만들어 주민자치·납세자 소송·주민감사청구 등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을 폈다. 그는 하남시를 상대로 ‘하남국제환경박람회’에 보조금 지급을 중지하라는 납세자 소송을 대표로 제기하기도 했다. 방과 후 대안학교 ‘민들레학교’를 만들어 교장을 지내는 등 그의 지역활동은 KBS의 ‘인간승리’에도 방영될 정도였다.
경제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최 교수는 <경향신문>에 ‘경제와 세상’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KBS, MBC, YTN, 한국경제TV, 매일경제TV 등에 고정 출연하는 등 현장과 가까운 ‘스타급’ 학자이다. 그는 ‘교수는 현장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학자가 아니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기자가 ‘현장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아니다, 하남에서도 출마하라고 해서 아예 이사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위기의 경제학? 공동체 경제학!> <세계화, 무엇이 문제일까?> <협력의 경제학> <탈공업화 시대의 경제학 강의>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팩트체크에 대한 추가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기 힘들어 <이게 경제다>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 인세를 법륜 스님이 하는 ‘배고픈 북한 아이들에게 옥수수 1만톤 보내기’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결정은 분단문제를 극복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에서라고 말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사진 김영민 사진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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