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장애물 아냐” 23세에 교수 된 인력거꾼 딸
입력 2020.06.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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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유 기자
레이니씨가 아버지 무기요노씨가 운전하는 인력거 베짝을 타고 대학 졸업식장으로 가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학사모와 가운으로 곱게 차려 입은 대학 졸업생이 녹슨 인력거에서 함박 웃고 있다. 뒤에서 페달을 밟는 중년 사내도 웃고 있다. 인도네시아 특유의 교통수단인 전통 베짝이다. 짐칸에 좌석을 만들고 뒤에서 운전사가 자전거 페달을 밟아 운행하는 식이다. 둘은 부녀 사이다. 아버지는 대학 졸업식장에 가는 딸을 자신의 생계 수단에 고이 모셔가고 있다. 6년 전 인도네시아를 흐뭇하게 했던 사진이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모두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9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사진 속 주인공은 레이니(27)씨와 그의 아버지 무기요노씨다. 당시 레이니씨는 중부자바주(州) 스마랑주립대(Unnes)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베짝 운전사 무기요노씨는 이 특별한 날에 딸을 자신의 베짝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줬다. 부녀의 행복한 표정은 카메라에 담긴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져 나갔고, 가난을 딛고 이룬 레이니씨의 성취도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레이니씨와 아버지 무기요노씨가 졸업 사진을 찍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사연을 접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당시 대통령은 레이니씨에게 직접 국가장학금을 선물했다. 덕분에 레이니씨는 영국 명문 버밍엄대에 입학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베짝 운전사의 딸이지만 가난이 나의 꿈을 실현하는 단계단계마다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모님의 기도 그리고 나의 땀과 노력이 물질보다 귀한 재산이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석사 학위를 받고 스물세 살 나이에 모교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2018년엔 박사 학위도 받았다. 지난해엔 스리 물리야니 재무부 장관을 만나 “정책 입안자가 돼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성공 덕에 가족의 형편은 나아졌지만 아버지 무기요노씨는 현재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레이니씨(오른쪽)가 지난해 스리 물리야니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과 인터뷰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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