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호] 2008.06
[박정헌의 산악비행] 인도 히말라야
'프리 티벳'을 기원하며 히말라야 끝단을 날다
빌링에서 이륙, 티벳 망명정부 소재지 매클로드간지까지 90km 왕복비행
인도의 스위스 마날리에서 세계적인 활공장조건을 갖춘 빌링(Billing)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람살라(Dharamsala)를 경유해야 한다. 저녁 6시 마날리를 출발해 새벽 2시경 다람살라에 도착, 다시 택시를 타고 매클로드간지(Mcleod Ganj)에 도착했다.
매클로드간지는 티벳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달라이라마를 주축으로 한 티벳 망명정부가 위치한 곳이다. 매클로드간지에 머문 시기는 티벳 독립과 관련한 크고 작은 집회로 외신기자들이 몰려들던 때였다. 매일 밤 사원과 시내거리에서는 촛불시위가 열렸고, 모든 차량과 오토바이에는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자유의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베이징올림픽을 기회로 전 세계에 티벳의 억압된 상황을 알리려는 그들의 몸부림에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였기에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서쪽 끝을 향해 날아가며 초광각 렌즈로 촬영한 풍경.
이틀간 휴식을 취한 뒤 빌링 활공장 아래 위치한 작은 티벳인 정착촌 비르(Bir)로 출발했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택시를 이용해 비르까지 2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상 비르에 도착하니 생각보다는 마을 규모가 작아서 깜짝 놀랐다. 구멍가게 몇 개와 인터넷카페 3개가 이 마을의 전부였다.
도착해서 마을을 둘러본 뒤 바로 안 것은 이 마을은 티벳 스님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메카라는 사실이었다. 마을 주민의 수보다도 7살박이 어린 스님부터 청년 스님까지 스님의 수가 훨씬 많았다. 실질적으로 매클로드간지보다 비르의 사원들이 훨씬 더 웅장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는데, 일본인과 대만인 승려 몇몇이 오래 전부터 이 마을과 연이 있다고 한다. 또 명상에 매료된 유럽인 관광객들도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걸로 봐서 우리에게 낯선 비르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숨겨놓은 여행지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관광하러 온 것도, 불교문화에 심취해서 온 것도 아니다. 비행하는 외국 친구의 권유로 이곳을 찾았는데, 이렇게 작은 마을에 9월 말부터 11월까지 200~300명의 파일럿들이 모여 시합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작은 사거리에는 택시 몇 대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세계 각국에서 모인다는 파일럿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 파일럿들이 어떤 곳에서 머물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장기투숙자들은 티벳인들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고 한다. 나는 이미 두 번이나 티벳을 방문한 적이 있기에 두말할 것 없이 게스트하우스를 물었다. 사원 주변에 있는 큰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보았지만 빛도 들지 않는 음침한 방엔 좌우로 작은 나무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 4,300m 고도에서의 필자 얼굴. 위험에 대한 공포가 얼굴 표정에 나타나 있다.
러시아인들, 독주 마시며 음주 비행
짐을 내려놓은 구멍가게로 돌아가 쭈그리고 앉아 망연자실하며 파일럿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오며 자기 집에서 머물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나도 모르게 순간 침침하고 콤콤한 냄새들이 떠올려진다. 하지만 어쩌랴.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고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아주머니를 따랐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아주머니가 들어가는 집을 쳐다보니 티벳인들의 전통가옥이 아닌 2층의 양식집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을 돌보는 네팔 아가씨가 있고,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에 온통 달라이라마상과 불상들로 집을 치장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니 10명 이상이 파티라도 열 수 있는 크기의 테라스가 있었고, 한 방엔 큰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아마도 기도실로 쓰이는 모양이다. 그 맞은편 방에 침대 2개와 매트리스 한 장이 놓여 있다. 아주머니의 시아버님이 혼자 쓰는 관계로 콤콤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시설은 아주 훌륭했다. 방안에 화장실까지 딸렸으니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창을 열고 향을 피워 타인의 향기를 내몰았다.
주인 아저씨는 집 뒤로 높이 솟은 산정을 가리키며 저곳이 이륙장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구름이 2,500m 이상의 산들을 가려 이륙장은 보이지 않았다. 현재 마을에 30~40명 정도의 파일럿들이 머물고 있다며 내일 날씨가 호전되면 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오후가 되면서 점점 하늘은 검은 구름들이 하늘의 흰 공간을 채색하며 천둥과 번개를 쏟아낸다. 주인아저씨의 말대로 내일은 비르에서 첫 비행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 비행중 내려다본 산간마을. 산 위에 다랑이 밭들이 수십 계단을 이루었다.
다음날, 하늘은 여전히 깜깜한 먹구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도 잠깐잠깐만 푸른 하늘이 보이고 다시 깜깜해진다. 지프를 타고 올라가는 대기장소에도 비행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다 지날 무렵 파란 하늘이 열리자 갑자기 빌링(2,600m)쪽에서 형형색색의 글라이더들이 무리 지어 나타난다. 마치 공수부대원들이 함께 고공침투라도 하는 대열로 비르(1,300m) 착륙장을 향해 쏟아진다. 기가 막혔다! 대체 언제들 모두 이륙장으로 올라간 걸까? 너무도 황당했다. 완벽한 고공침투작전이었다. 카메라를 준비해 랜딩장으로 달려나갔다. 일기가 급변해서인지 오랜 체공을 하지는 못하고 모두들 이륙장으로 내려온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파일럿들의 기체를 보니 대충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구분이 갔다. 러시아인들이 30여 명이 넘었고 비행조건이 좋지 않은 영국에서 온 파일럿도 많았다. 세계적으로 알콜릭이 많은 러시아인들답게 착륙장과 이륙장에서까지 독주를 마시며 음주비행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어제 비행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오전 10시부터 비행자들이 모이는 골목에서 파일럿들을 기다렸다. 보통 3명이 모이면 택시 한 대를 대절해 출발한다. 비르는 고도가 1,300m로, 빌링까지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명 두 명 큰 배낭을 메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빵조각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모두들 오전 11시쯤 빌링을 향해 출발했다.
1시간30분 비행으로 마수걸이
도로는 산을 따라 지그재그로 고도를 높이며 올라간다. 급경사 사면에서 떨어진 돌들이 길 위에 대책 없이 놓여 있기도 했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바위들이 위태롭기 그지없이 보였다. 능선 위에 올라서니 들판 앞으로는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히말라야의 서쪽 끝 만년설의 고산들이 줄지어 있다. 히말라야라기보다는 마치 알프스 같은 풍광이다.
이륙장은 단번에 20~30대의 글라이더가 이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언제나 내리쬐는 햇볕에 목마른 영국과 러시아 파일럿들은 상의를 벗고 일광욕을 즐기며 바람이 자리 잡기를 기다린다. 대부분의 비행자들이 세계 곳곳을 비행해본 사람들인지라 자신이 비행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이곳에서 몇 주 동안 비행해본 파일럿들은 지난번에 5,500m까지 상승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맥클로드간지까지 직선거리로 46km를 갔다 돌아온 파일럿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비르 비행 초보자로서 정보를 수집하려 애썼다.
2주간 이곳에서 비행한다는 러시아 파일럿들이 하나 둘 이륙하기 시작한다. 열은 이륙장에서 500m정도 상승하고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드디어 나도 빌링에서의 첫 날개를 폈다. 1시간30분 정도 이륙장 주변과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바라보이는 3,500m 능선까지 비행하고 첫 비행을 접었다. 오늘보다 내일 멋진 비행을 기대하면서….
다음날은 아침부터 창밖으로 비추는 햇살이 따갑다. 아마도 오늘은 크게 비상할 수 있을 것 같다. 티벳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보릿가루와 버터티로 만든 참바와 밀크 티, 그리고 차파티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전 10시30분쯤 택시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차! 한 발 늦었다. 벌써 모두들 출발했다고 한다. 세상에! 별 수 없이 혼자 300루피를 내고 빌링으로 향했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기체들이 하나둘 나무 위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면보다는 비르 주변의 논밭에서 올라오는 열기둥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오늘은 적어도 4,000m이상으로 비상이 가능한 날로 생각된다. 기체들도 3,500m 능선 위로 날아올라 긴 능선을 따라 진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륙장에는 모두들 이륙하고 초보파일럿 몇 명이 비행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빨리 장비를 정리하고 이륙 직전 시간을 체크하니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보통 장거리비행을 위해서는 오전 11쯤 이륙해야 오후 3시 이전에 다시 비르로 돌아올 수 있다. 오후에는 대부분의 히말라야 주변의 기상이 급변하듯이 바람이 강해지고 비나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진다. 물론 산정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
자, 출발이다. 오늘은 좀 멀리 날아보고 싶다. 이륙장을 박차고 오르니 고도계가 계속해서 상승음을 내면서 기체는 초당 2~3m 정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삐삐, 삐삐. 고도가 높아질수록 상승폭은 5~6m 정도로 커져간다. 상승이 크다는 것은 큰 하강을 의미한다. 기체의 움직임도 와일드해지므로 기체에 정신을 집중하고 바람 방향을 잘 읽어야 한다. 기체의 양쪽 끝단은 이유 없이 누구에게 뺨이라도 맡은 것처럼 정신없이 흔들린다.

▲ 1 티벳인들의 망명정부 매글로드간지 위를 날며. 이곳에 달라이라마가 있다. / 2 빌링 이륙장에서 기체를 세우고 이륙 직전의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파일럿. / 3 비행중 내려다본 빌링 이륙장. / 4 착륙장에 모인 아이들과 기념촬영한 필자. / 5 독수리도 함께 열비행 중이다.
4시간45분간 매클로드간지까지 90km 왕복 비행
3,500m 이상의 능선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고 능선을 따라 깊이 들어갈수록 피라미드처럼 험한 바위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필이면 열기둥들도 바위산 앞에서 발생한다. 처음 바위사면에서 원을 만들며 서클링을 할 때는 두려움이 적지 않다. 고도를 높이면 와류에 대한 두려움이 일며, 고도를 낮추면 바위산들이 마음을 쫄게 만든다.
워낙 큰 산들이라 순식간에 큰 구름들을 형성하고 다시 사라진다. 큰 계곡을 건너기 전에는 적어도 4,000m 이상의 고도를 가져야 한다. 계곡으로 흐르는 바람에 정통으로 걸려들면 초당 5m 이상의 급격한 하강풍으로 정신이 없다. 구름들은 계속해서 기체를 스트로로 음료수 빨아들이듯 쉼없이 빨아올린다.
우측으로는 히말라야 계곡들이 깊숙이 자리하고, 검은 바위와 흰 눈산들 위로 구름들이 경계를 만들고 있다. 두려움과 기쁨이 반반씩 공존한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 반, 반. 하지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질주해 가느냐에 따라 반반을 완전한 하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 1 긴 기다림을 뒤로 하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파일럿. / 2 빌링 이륙장에서 일광욕을 하며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비행은 기다림의 예술이다. / 3 이륙 후 구름층으로 상승하는 기체.
이제 몇 개의 큰 계곡을 지났는지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오늘의 목표로 설정한 맥클로드간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계속 3000~4000m 사이를 비행하다보니 촐라체 등반 때 동상으로 절단한 손가락들이 너무도 아린다. 호주머니 깊숙이 박아놓은 벙어리장갑을 끼고 나니 손가락이 급속 해동되면서 감각이 돌아온다.
왼쪽 넓은 벌판에 큰 도시가 시야에 들어온다. 올커니, 저기가 다람살라다. 사면의 9부 능선에서 열을 잡고 올라가니 오늘의 목적지 매클로드간지가 나타난다. 고도를 올려 구름에 헤딩하고 매클로드간지 방향으로 똑바로 풋바를 밀면서 날아갔다. 며칠만에 돌아온 매클로드간지의 한국식당에서 라면과 된장국이라도 먹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식당 지붕 위를 뱀돌다 다시 비르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언제 따라 왔는지 영국인 파일럿이 매클로드간지 앞에서 고도를 잡고 있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강해지며 구름들이 검은 빛깔로 변하며 어떤 구름은 우박을 뿌리고 어떤 구름은 비를 뿌린다. 기체의 지붕 위로 우두둑 소나기가 떨어진다. 검은 구름들은 세력을 확장하며 다가온다. 저 앞쪽 능선에는 무지개가 형형색색을 그리고 있다.
풋바를 깊숙이 누르고 계곡과 계곡을 돌아 4시간45분만에 다시 비르에 두 발을 내리는 순간 너무도 큰 감동이 폭풍처럼 가슴을 휘몰았다. 장장 90km가 넘는 대장정을 마무리한 것이다. GPS를 확인하니 오늘의 최고고도는 4,300m다. 4시간45분의 두려움과 공포 속을 지나 얻은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 매클로드간지의 티벳인들에게도 평화와 자유의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Free Tibet'. 티벳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날을 그리며 자유를 노래했다. 내가 만든 하늘 위의 길처럼 그들의 길이 마음의 길로, 세상의 길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 글 박정헌
- 진글라이더 XC & MOUNTAINEERING PILOT
- 노스페이스 Climbing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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