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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정운현 언론재단 이사(사진 왼쪽)와 최근 오마이뉴스에 <안중근 평전> 연재를 마친 뒤 <장준하 평전>을 시작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역사인물의 평전 집필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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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정운현 언론재단 이사
정리 : 정운현, 정미소
최근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개정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역사학계와 뜻있는 지식인 진영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7월 초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새 정부의 편협한 역사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진영의 이 같은 역사인식은 우리 근현대사 전반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후일 또 하나의 '역사왜곡'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우리 근대 100년은 서구의 수백년 역사와 맞먹을 정도로 그 양상이 복잡하고 또 사안이 다양다기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는 봉건제와 공화제, 개화와 수구,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서로 충돌하였으며, 이후에는 친일과 항일, 좌-우 이데올로기,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고 엇갈리면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이어 왔다. 이 같은 혼란은 우리 역사의 진보 과정에서 일면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았으며, 바로 그런 지난날의 토대 위에서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특정 정치세력의 입김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역사는 역사책 속에서 잠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정직하게 기록하는 자의 손에서 출발하여 이를 배워서 기억하는 민중들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는 것이다. 역사 인물들의 삶에 공과가 있다면 이는 가감 없이 기록돼야 한다. 우리 항일 투쟁사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안중근 의사도 10대 때 부친을 따라 동학농민군 토벌에 앞장선 과(過)가 있었고, 육십 평생을 민족주의자의 표상으로 살다간 장준하 선생 역시 친일문필가 육당 최남선 평가에서 일생일대의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언론인이자 현대사연구가, 저술가 등으로 다양한 문필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삼웅(65) 전 독립기념관장이 최근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통해 <안중근 평전> 연재를 마쳤다. 총 107회, 무려 3개월 여에 걸쳐 연재하는 동안 하루 평균 4천여 명의 누리꾼들이 블로그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집필대상자가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인데다 학술적 접근을 피할 수 없어 딱딱한 형식과 내용이었음에도 반응은 뜨거웠다. 이는 그간의 역사인물과 관련한 글들이 위인전 일색이거나 아니면 대개가 논문 형태의 학술서여서 대중과 호흡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간 민주주의와 동서양 사상사, 한국현대사, 독립운동사 등의 분야에서 3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한 김 전 관장은 최근 들어 <백범 김구 평전>을 시작으로 총 일곱 권의 근대 역사인물 평전을 잇달아 출간한 바 있다. 내달부터는 다시 장준하 선생의 평전을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통해 연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연재를 마친 <안중근 평전>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 연재를 시작할 장준하 선생에 대한 얘기, 그리고 역사인물 평전 집필에서 유의할 점과 최근 교과서 개정 등 시국 현안에 대해 김 전 관장과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전통찻집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김 전 관장과의 대담 전문이다.
"<안중근 평전>은 안 의사님에 대한 조그만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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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의 안중근 평전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 |
| ⓒ 김삼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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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현(이하 '정')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안중근 평전> 연재를 마치셨는데, 3개월 반 정도에 걸쳐 총 107회 분량을 연재하셨더라구요. 우선 연재를 마치신 소감을 듣는 것으로 오늘 대담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김삼웅(이하 '김') "앞으로 한 달쯤, 채 한 달 못 남았죠. 10월 26일이면 안중근 의사가 우리나라 국적 제1호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99주년입니다. 내년이면 100주년인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안중근 의사께서 여순감옥에서 사형을 당하실 때 유언으로 '내 시신을 조국이 광복 되면 조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고 그렇게 유언을 하셨는데, 100년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 시신을 못 찾는 것은 외국 땅이니깐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국민이, 우리 정부가, 우리 지식인과 학생들이 과연 안중근 의사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고 안 의사가 남긴 그런 유업을 얼마만큼 계승을 하고 있는 건지. 안 의사가 그렇게 추구하셨던 정의를 구현하는 삶, 동양평화, 또 우리의 자주 부강된 국가, 이런 것들이 아직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고 볼 때 안 의사가 추구했던 가치는 살아있는 우리의 가치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고 안 의사 평전을 썼습니다. 이제 (평전을) 끝맺고 나니 안 의사님에 대한 조그만 도리를 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 "연재 후기를 읽어보니까 어떤 날은 하루에 5만명이 넘는 독자가 방문하기도 했구요, 석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평균 하루 4천여 명의 누리꾼들이 블로그를 방문했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이 내용이 재미있는 내용이거나 젊은이들이 즐겨읽을 분야도 아닌데 이런 딱딱한 주제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리꾼들의 이런 반응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 "안 의사가 여전히 국민의 뇌리 속에 나라를 구하고 또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 애국자로서의 인식이 남아있는 흔적이 참 많더라구요. 제가 20년 동안 안 의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았습니다. 중국·러시아·일본에 가서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만 있으면 다 입수를 했어요. 좀 광범위하게 안 의사 관련 자료를 섭렵했다고 그럴까요. (이런 자료들을)인용해서 쓴 결과 상당히 다방면의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성인들, 또 여성, 또는 교사들, 여러 분들 여러 계층에서 탐독했는데 저로서는 예상 외였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어떤 날은 5만 명이 블로그에 들어왔고. 올여름처럼 혹독한 더위에도 평균 4천명이 방문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안 의사의 핵심이라고 하면 '동양평화론' 같은 건데 그런 내용을 연재할 때는 얼마 안 보더라구요. 그래서 아직은 우리 국민 의식이 조금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는 조금 회피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연재 머리말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이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흔히 우리는 안 의사를 두고서 국적 1호라고 할 수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한민족의 기상을 만천하에 날린 부분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고 나머지는 잘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이번 평전에 안 의사의 국채보상운동·교육사업·의병전쟁·단지동맹·공판투쟁·동양평화론 저술, 그리고 마지막 최후의 죽음에 임하여 의연한 모습 등도 언급하면서 안 의사를 '만대를 두고 기려야 할 우리 겨레의 표상'이라고 언급하셨더라구요. 즉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게 서술하셨습니까?"
김 "만족하다는 것은 조금 그렇고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안중근' 하면 그냥 교과서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 그것도 암살했다고 나옵니다. 지금도 일부 역사학자들 책에 보면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 이렇게 기록하는 역사책이 있습니다."
정 "암살은 부정적인 의미이죠. 뒤에서 몰래 죽이거나 이런 것이 암살이죠."
김 "그렇죠. 그런데 안중근 의사는 대낮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 등 외신 기자들이 있는 그런 대명천지에서 우리나라 국적뿐만 아니라 동양의 국적을 공개리에 처단했고, 피신하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피신할 수도 있었는데도. 그런 것을 아직도 암살이라고 표현하는 역사학자들의 인식을 뛰어넘어야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 의사의 일대가 32살 때 사형이 집행돼 순국하셨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범인(凡人)들 같으면 100년, 200년 살아도 다 못할 일을 하셨어요. 심지어는 국채보상운동 할 때는 자기 부인, 자기 계수들 혼수와 비녀까지도 모아서 다 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적지 않았는데 그런 유산을 받아가지고 학교를 세웠어요. 그러니까 20대 중후반의 청년이 그 무렵에 교육사업, 육영사업을 한 걸로 봐서 단순히 '10.26사태'(이토 처단)만이 (안 의사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철저한 애국심이랄까, 나라사랑 정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안 의사의 선지자적 제안은 우리가 추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 "(애국심이) 몸에 배고 준비된 분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앞서 말씀하신 대로 안 의사의 일생은 가히 애국적이고, 또 겨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안 의사의 30년 일생을 두고서도 비판, 또는 지적할 만한 대목이 전연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예를 들면 안 의사가 부친 안태훈 선생과 함께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사례, 이런 것에 대해서는 흠으로 지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 "그건 사실입니다. 안 의사의 부친 안태훈 선생과 안 의사, 또 그 일가들이 동학혁명을 진압하는 역할을 했죠. 그때 당시 안 의사 가족은 상당히 유산계층이었습니다. 양반 신분인 그분들은 그 때 당시 조선왕조에 대한 열정·충성이 상당히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당시 유생들 대부분이 그랬죠. 지방에 있다 보니까 동학혁명의 본질이라던가 동학사상에 접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동학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백범 김구 선생 같은 분의 출중한 능력을 보고 '저런 사람을 국가를 위해서는 죽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청년 김구를 자기 진영으로 불러들여 거기서 보호해주는 애국심, 이런 것을 볼 때 관변에서 동학군을 일본군으로 끌어들여서 탄압하고 학살했던 그런 쪽 사람하고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죠."
정 "말씀하신 부분에 이어서 질문을 드리면요, 안 의사의 정치사상에 대해서도 한쪽에서는 공화주의자다, 또 한 쪽에서는 근왕주의자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즉 군주정치를 비판하고 국민주권의 공화정을 지향하면서 미래의 독립국가의 정체로 공화정을 염원한 면도 있구요, 반면에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를 충실히 받들어 모신 충직한 근왕주의자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 역시 양쪽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죠?"
김 "그렇습니다. 100년 전 조선의 상황을 지금 시각에서 보면 거의 모든 국민이 공화주의를 바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당시만 해도 '근왕'보다는 '공화주의' 쪽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안 의사는) 그보다도 20여 년 전입니다만, 안 의사는 시골 청년이면서도 상당히 깨어있는 분이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라든가 <황성신문> <신한민보> <대동공보> 같은 것들도 다 읽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보수주의적인 풍토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개화의식이 상당히 강했고 미국이나 유럽식의 공화주의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부 학자들이 방금 지적하셨던 안 의사가 공화주의자냐, 근왕주의자냐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하고 있는데, 아직 초보단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 의사 본인이 법정에서나 검찰 진술과정에서 우리가 왕제(王制)를 했기 때문에 나라가 어렵게 생겼다고 말한 의도는 근왕주의를 배척하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 의사를 무 자르듯이 근왕주의자였다, 또는 공화주의자였다고 보기보다는 그 때 상황에서는 그래도 공화주의자 쪽에 가까웠다고 보고 싶습니다."
정 "안 의사께서는 감옥에 계실 때 본인 스스로 자서전을 쓰기도 했구요, 나중에는 여러 동지, 후배, 후학들이 다양한 전기를 펴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이번에 쓰신 평전은 기존에 나온 평전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 점을 차이로 뒀다고 자평할 수 있겠습니까?"
김 "그때는 아무래도 자료수집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학자·언론인들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료나 알고 있는 내용, 또는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들만을 가지고 썼습니다. 그러나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중국에서 나온 자료라던가 러시아 자료, 일본 측 경찰·검찰에서 나온 자료들, 또 그동안 선학들이 연구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자료를 비교적 많이 인용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 "앞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잠시 언급하시면서 연재 동안 독자들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계에서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이미 한 세기 전에 동북아의 '통합과 연대'의 길을 제시한 선각자적인 혜안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동양평화론'의 핵심 몇 가지를 골라본다면, 우선 여순감옥이 있던 여순(旅順)을 동양평화의 근거지로 만들고, 한·중·일 공동군대를 편성하고 공동은행을 만들어 공용화폐 발행을 주창한 것, 이런 것은 오늘날 EU와 같은 지역경제 공동체를 제안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선각자적인 제안이 당시 국제상황 하에서 어떻게 해석되었고. 또 왜 성사되지 못했을까요?"
김 "네. 우선 여순이라는 지역이 동양에서 중요하죠. 전통적으로는 중국 영토이면서 러시아가 뺏었고 또 일본이 뺏었고 그래서 동양의 접경지역 또는 전투지역으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죠. ('동양평화론'은 안 의사가) 그 곳 여순감옥에서 자료나 전문서적도 없이 자신의 기억과 지식을 동원해 쓴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그 때 유럽 같은 데선 EU는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동양 3국의 국민이 1전씩 걷어서 그 돈으로 동양평화 유지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런 것은 지금도 일본이나 중국이 그런 제안을 해도 상당히 코웃음을 치겠지만 100년 전 한인사회의 그런 주장은 대단히 선각자·선지자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서였고 또 중국·러시아·일본이 그때 동양의 패권을 누릴 때 아닙니까? 그래서 자칫하면 일본의 술수에 말려든다거나 또 일본이 그걸 원치 않았습니다. 자기네들이 힘이 세니까 우선 무력으로 제패할 기회라고 봤죠. 그럼에도 안 의사의 선지자적 혜안·제안은 우리 국민과 국가가 살을 더 붙이고, 또 당사국들과 외교적인 논의를 해서라도 추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 의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것은 지식인·언론인들의 책임"
정 "안 의사는 1907년 경 러시아에 잠깐 계실 때 <대동공보>라는 신문의 탐방원, 즉 요즘으로 치면 기자를 잠시 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문헌에도 나와 있더라구요. 혹시 이번 평전 집필 때 또는 자료를 수집하실 때 그와 관련된 내용도 조금 보신 게 있으십니까?"
김 "구체적으로 지금처럼 기자증·탐방원증을 발급했다던가 그런 기록이나 자료는 찾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여러 차례 탐방원으로서 직접 신문사에 가서 원고 제공도 하고 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크에 갔을 때 그 현장을 찾아가 봤는데 그런 건물이라던가 자취는 사라져 못찾았습니다."
정 "평전 머리글과 마지막 연재를 마치며 쓰신 글이 압축적이어서 꼼꼼히 봤습니다만, 머리글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어느 중학생이 안중근 의사가 안과의사냐,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하구요, 또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고등학생도 있더라,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꿰고 있거나 심지어 그의 얼굴이 염색되어 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안 의사를 독립운동가의 화신이라고 하면서도 안 의사에 대해서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고,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김 "몇 가지가 있을 텐데요, 가장 큰 것은 지식인, 언론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지금도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는 지식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똑같은 범주라고 할 수 있는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은 또 대단히 반제국주의 투쟁의 영웅으로 미화시키면서 우리 선각자들에 대해서는 동네 깡패처럼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안 의사와 같은 그런 식의 운동은 국가에 해가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식인들이 좀 겉멋이 들었다고나 할까, 없다고 할까. 제 나라 지도자, 제 역사 선구자를 미화하는 것은 국수주의라고 생각하고 외국의 테러리스트라던가 이런 사람들을 미화시키면 그것은 마치 글로벌시대의 영웅으로 추대하고. 이래서 언론인·지식인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 "그런 점에서 이번에 나온 <안중근 평전>이 젊은 세대들에게 안 의사를 다시 보고 정확하게 아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안중근 평전>은 그 동안에 내신 <백범 김구 평전><단채 신채호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약산 김원봉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에 이어 일곱 번째 성과물인데요, 근래에 들어서 우리나라 근대 역사인물의 평전 집필에 전념하신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라도 있으십니까?"
김 "국가가 어려웠을 때 자기 생명을 내걸고 또는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면서 독립운동을 하고 구국운동을 하고 또 민주화 운동을 하신 이런 분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국주의 침략세력들, 체제에 영합해서 출세한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이 영달을 하고 그래서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0.26'(안 의사의 의거일이 1909년 10월 26일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이 '10.26'으로 같은 날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은 기억해도 안 의사가 이토를 처단한 날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 의사 후손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손들은 영달을 하고 있죠. 이렇게 그 역사가, 또 정사(正邪)가 뒤바뀌어 버리는 이런 현상들을 우리 국민이나 자라나는 후손들이 그대로 상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라도 작은 노력이지만 나라가 어려웠을 때 과연 어떤 분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이런 것을 밝히고, 또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정 "평전을 쓰시면서 남이 쓴 평전도 많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동서고금, 국내외 할 것 없이 다른 인물들의 평전 중에서 가장 객관적이고(객관적이라는 것이 가장 좋은 가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좌우간 우수하게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평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 "얼마 전 어느 대학에서 열린 평전 관련 학술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기와 평전의 차이는 전기는 있는 사실 그대로 옮기면 되지만 평전은 그야말로 시비곡직(是非曲直)를 제대로 밝히는 일이다. 흔히 객관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평전은 주관적인 반성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사실은 제대로 쓰되 평가는 주관자, 즉 집필자의 역량, 의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저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평전 중에 E.H 카가 쓴 <도스토예프스키평전>이 있는데, 국제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도스토예프스키에 심취해서 그에 대한 책을 읽으려고 많이 샀는데 워낙 방대해서 감히 읽을 주제가 안됐습니다. 그러다가 압축해놓은 책이 없을까 싶어서 찾다가 찾은 E.H 카가 쓴 <도스토예프스키평전>입니다. 거대한 산봉우리와 같은, 또는 심해와 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그 짧은 글에다 녹여 놓은 걸 보고 '아, 이것이 평전의 가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E.H 카가 쓴 <도스토예프스키평전>을 높이 평가합니다."
정 "그동안 국내에서도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전이 많이 나왔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경우 <백범일지>를 비롯해 백범의 생애와 관련된 책이 100종 가까이 나와 있기도 합니다. 국내에 나온 여러 역사 인물들의 평전(評傳)은 주로 평(評)보다는 전(傳)에 치중해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동의하십니까?"
김 "네, 동의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살다가 해방 이후까지 활동하신 분 중에 더러 평전을 쓰신 분들이 있는데 친일행적은 다 빼버렸더라구요. 인간이기 때문에 과오가 있고 잘못된 부분도 있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분들을 미화시키기 위한 것인지 몰라도 말입니다. 그간 평전을 200여 종 구입했는데, 대개 보면 잘못된 부분은 다 빼버렸는데 이건 평전이라고 볼 수도 없죠. 이건 왜곡이죠."
정 "우리 역사인물, 또 동서고금 역사에서도 그렇겠습니다만, 특히 우리 역사에는 충신열사·애국지사도 많이 있습니다만 반대로 간신배·매국노·변절자 이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언젠가 일본에서는 <일본정치를 망친 10인>이란 책이 나와서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이런 반(反)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전도 한번 써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 "평전을 쓰는 것은 제 능력이 좀 그렇구요. 한 십수년 전에 <변절자>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정도(正道)를 이탈해가면서, 또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권력이라던가 외세, 물질에 바꿔버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썼다가 그 때 혼이 좀 났었어요."
"일단 사실은 사실대로 쓰는 것이 평전의 기초"
정 "평전을 쓰시려면 대상 인물의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서 객관적으로 써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아무래도 아까 말씀하신 집필자의 주관이 가미되는 것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여러 가지 평전을 쓰신 경험으로 볼 때 평전 집필에서 경계해야 되거나 유의할 점은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김 "우선 사실을 은폐하거나 과장하거나 이것을 또 시시비비를 한다든가 하는 것보다는 사실은 그대로 놓고 봐야 합니다. 또 당대 인물이 아닌 경우 증언해줄 만한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대상자 주변에서 나온 자료나 혹은 본인이 남긴 자서전을 믿었다가는 상당히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자서전이라는 게 알릴 것은 알리고 피할 것은 피하는, 특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런 경향이 많습니다. 가급적이면 자서전은 인용할 때 상당히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증언도 그렇죠. 증언도 친소관계에 따라서 또는 적대적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엉터리 증언을 하는 경우도 참 많지요."
정 "이미 여러 권의 역사인물 평전을 쓰셨는데요, 혹시 책이 나온 뒤에 후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거나 또는 학계에서 논란이 되었거나 그런 사례는 없었습니까? 또 혹시 재미있는 일화는 없었나요?"
김 "<백범 김구 평전>을 펴냈을 때의 일입니다. 백범 선생이 윤봉길 의사 의거 후 피신을 하면서 중국 처녀 뱃사공 주애보(朱愛寶)와 (부부로)위장해서 4년을 은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백범일지>에도 나옵니다. 백범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대목인데 딱 두 줄밖에 없어요. 즉 백범이 '내가 돈을 가진 게 없어서, 나중에 만나리라고 생각하고 돈을 못 준 게 안타깝다고'. 그러나 이 경우는 뭔가 픽션이 좀 있어야 할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다행히 중국의 한 여류작가가 '선월(船月)'(대담 중의 '만월'은 오류임)이라는 제목으로 백범 선생의 망명기를 소설로 펴냈습니다. 그래서 이걸 몇 구절을 갔다가 넣었더니 어느 쪽에서 백범과 주애보 관계를 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난 입장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백범은 가장 평범한 삶을 살았고, 그중에서도 중국 망명지에서 여성을 만난 것입니다. (백범이)부인이 일찍 돌아가셔서 독립운동 하셨던 주변의 분들이 아주 유명한 학교 교사를 반려로 추천하니까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를 돌봐준 뱃사공과 해야지 어떻게 내가 저런 분하고 결혼할 수 있겠느냐'고 하실 정도로 그렇게 소탈한 분이셨거든요. 또 만해 한용운 스님 관련 평전, 전기 등에 보면 만해 선생과 그 부친이 동학군 토벌을 한 걸로 나와 있습니다. 제 추론입니다만, 만해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상당히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네들도 평범한 평민인데, 어째서 아버지가 동학군을 저렇게 토벌해야 되느냐. 그래서 만해는 평생 자기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많은 유혹에도 끝까지 민족진영을 배반하지 않고 불도를 지키며 조국을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 "백범이 피난 시절에 주애보와 같이 한동안 동거를 한 것은 흔히 남자들이 바람을 피운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신변·신분을 감추기 위한 위장전략이었습니다. 또 엄연한 사실이었구요."
김 "나중에는 정(情)도 좀 든 것 같더라구요."
정 "그것까지는 전 잘 모르겠구요, 어쨌든 <백범일지>에도 나와 있는 엄연한 사실인데 그런 내용을 평전에 넣은 것을 두고 마치 백범에게 흠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마치 우리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들은 화장실에도 안 가는 것처럼 지나치게 순결하게 묘사하려는 그런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단 사실은 사실대로 쓰는 것이 평전의 기초겠죠. <안중근 평전>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이야기를 바꿔보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