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와 DJ-②] DJ가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요즘 내 생각들 2008/12/12 10:34 정운현DJ의 서신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면, 이 서신은 그가 방미 중 1970년 4월 27일자로 닉슨 대통령에게 보낸 것으로, 골자는 ‘닉슨 독트린’과 관련한 아시아의 국제정세, 그리고 한국의 정치, 경제, 안보 상황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것이다. YS의 경우와 달리 미국측은 DJ의 편지에 대해 국가안보회의(NSC) 수석보좌관 명의로 적절한 조치와 함께 답신을 보냈다는 점이다.
앞서 김영삼 문건도 별도의 해석 없이 번역문만 소개했듯이 이번 김대중 문건도 마찬가지로 제보자가 번역한 내용만을 싣기로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첫 장 말미에 DJ의 서명이 보인다.
1970년 3월 27일
수신: 미합중국 대통령 리차드 닉슨 각하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본인이 이번 달 초에 워싱톤 D.C.를 방문했을 때, 각하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오늘날에 처한 긴급한 일부 이슈에 관한 저의 견해를 제시한 짧은 논고를 전송하고자 합니다.
각하가 관심을 보여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행복을 기원하며,
/서명/
김대중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
<첨부문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공동 관심사에 관한 본인의 견해
I. 아시아에서의 닉슨 독트린
A. 아시아 국민의 심적 불편
B. 일본과 기타 아시아 국가
II. 대한민국의 안보
A. 한국에서의 전면전
B. 게릴라 전쟁
III. 한국 정치
A. 한국에서의 독재의 증가
B. 한국의 민주주의 정세
IV. 한국의 경제적 조건
A. 한국에서의 왜곡된 자유경제 시스템
B. 경제 개발과 분배의 문제
C. 한미 경제 협력
I. 아시아에서의 닉슨 독트린
나는 닉슨씨가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의 방어”라는 독트린을 주창한 것이 잘 정당화된다고 본다. 월남에서 미국이 애초부터 이와 유사한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오늘날 월남의 상황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의한 이와 같은 정책의 시행 시기와 실제 시행은, 이 정책 자체의 정당화보다 더 비판적인 고려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사려 깊은 적용만이 미국과 자유 아시아 국가에서 최선의 이해를 초래할 수 있다.
A. 아시아 국민의 심적 불편
아시아 특정 국가에서의 탈-미국화 정책을 서둘러 부주의하게 시행하는 것은 공산 붉은 중국에게만 이익이 될 것이며, 향후 그들의 팽창을 위한 준비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자유 아시아인들은 그 탈-미국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면서도, 이 정책의 시행은 그들에게 너무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것이다. 왜냐하면 3년간의 전쟁이 벌어진 곳이 한국이고 공산주의와의 열전이 벌어졌던 곳이 월남과 라오스이기 때문이다. 탈-미국화 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은 필히 완만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그 정책 계획의 유형과 추진 속도는 나라마다 달라야 한다.
B. 일본과 기타 아시아 국가
일본이 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격려하는 미국의 정책은 아시아인들에게 또다른 중대한 관심사이다. 만약 이러한 주도적 책임이 일본에게 성급하게 이전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전적으로 예상치 않은 상황 전환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명백하게 경고되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일본 침략의 희생자였던 한국,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의한 아시아의 지배의 부활에 경계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데 일본과 협력하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아시아에 설령 어떤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일본이 아시아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아시아인들로부터 그러한 우려를 제거하기 위해 나는 모든 자유 아시아 국가들이 초대되어 아시아의 문제를 토의하는 국제 기구를 미국이 주도하여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포럼과 더불어 우리 국가들은 함께 일본의 지배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현재 일본에서의 움직임으로 판단해 볼 때, 이러한 국제 기구는 일본인들 사이에 반미 감정을 완화시키는데 또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II. 대한민국의 안보
대한민국의 방어의 한국화 선상에서 미국 국방부 장관은 최근 한국으로부터의 미군 철수를 발표했다. 이것은 진실로 미국이 그간 종종 강조했었던 사실인 북한의 공세적 태도의 강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내 생각을 제시한다.
A. 한국에서의 전면전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비록 그들의 극단적인 반미 적대성이 악명 높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또 다른 전면전을 감행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개적인 전쟁의 가능성이 전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다. 한국 방어의 완전한 한국화는 그러므로 그러한 가능성의 정도에 따라 제한된다.
한국화는 다음 단계가 선행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a)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통해 북한의 불가침을 보장받아야 한다.
b) 현재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다음과 같은 방향, 즉, 북한과 그들의 붉은 동맹국간의 모든 군사 협정에 대응하여 남한의 군대가 미국으로부터 보충을 받아 군사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c) 대한민국의 자주 국방 노력을 강화하기위해 미국으로부터 즉각 전면적인 지원과 원조가 제공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의 국방의 한국화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전면전의 가능성과 더불어 이 한국화는 실제적 적용성은 제한된다.
B. 게릴라 전쟁
한국에서의 공산주의의 침략은 남한을 또 하나의 월남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대남 게릴라 침투 형태로 일어나기가 더 쉬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위협에 대항해서 미국으로부터 충분히 지원받고 무기를 제공받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남한은 공산주의의 침투에 군사적 준비 태세보다는 정치적으로 더욱 취약하다는 점이 여기서 강조될 필요가 있다. 왜 정치적으로 취약한가? 그것은 남한의 내부적 사회적 조건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 박정희 정부의 독재정치가 강화되는 것 때문에 한국 국민은 반공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2) 현 지배 계급의 부패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한국 국민의 깊은 불신과 증오를 초래했다.
3) 소수 특권층의 급속하고 막대한 부의 축적과 농촌 경제발전의 실패는 빈부 격차와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의 격차를 결정적으로 심각하게 확대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공산주의나 혹은 공산주의에 대한 동감이 국민들 사이에 증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게릴라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중국 본토와 월남에서의 경험은 이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III. 한국 정치
한국에 민주주의가 도입된 후 25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아직 독재정부 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유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어지러운 내부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야당의 한 지도자로서 나는 우리의 국내 문제에 대해 외부의 간섭을 원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굳게 믿는 바와 같이, 그러한 민주적 정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정직하다면 결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치적 현실은 가혹하다. 그리고 지난 25년 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도와줬던 우리의 미국 친구들은 오늘날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A. 한국에서의 독재의 증가
오늘날 한국은 더 한층 가속화된 독재 형태로 나타나는 정부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국민의 뜻에 어긋나게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직의 세 번째 임기에 출마할 뿐 아니라 자기 정당에 대한 독재적 지배를 영속화하고 있다. 현행 헌법이 3선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작년에 박은 이 목적을 위해 헌법 개정을 강제로 밀고 나갔다. 지난 선거 기간 동안 박정희 정부가 자행한 불법 사례를 일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a) 억압과 위협으로 야당과 일반 대중은 사실상 공개적으로 헌법 개정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봉쇄당하고 있다.
b) 중앙정부의 엄격한 명령에 의해 지방 정부에서의 풀뿌리 치원에서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이 부정되고 있다.
c) 집권 여당에 비판적인 조직에 대한 자금의 유입이 또한 철저하게 동결되어 있다.
개헌안의 통과 이후, 정치 경제 전제정치의 강도는 얼마간 완화되었지만 한국에서 정부의 억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야비한 일은 이 정권이 의도적으로 반공활동의 이름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권의 박탈에 압박을 받아 한국 국민들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고 있다.
B. 한국의 민주주의 정세
한국에서 제 구실을 하고 있는 유일한 야당은 내가 속해 있는 신민당(NDP)이다. 본인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국회에서-한국은 단원제이다-신민당은 현재 의석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신민당은 그 역사와 정통성이 특징이다. 아직까지는 신민당이 한국에 민주주의를 되돌려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이 새로운 지도층을 채택한 신민당의 전국 전당대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선한 출발과 함께, 우리는 한국의 국민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하고 열렬한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체로 학생과 지식인에게 의존해왔다. 이들은 이승만 정부를 붕괴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정부의 감시에 놓여지게 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다시 봉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의 투쟁에서 중요한 병목은 한국에서의 언론의 자유의 부재이다. 문화공보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조종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언론인들이 경찰과 정보 당국에 의해 부당하게 조사받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 아니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주요 언론의 소유주들이 정부와의 “협력”이 불가결한 산업 연합체나 혹은 금융업 연합체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발행하는 언론 매체에서 자유 언론을 적극적으로 격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민권과 언론의 자유는 신민당 정강에서 가장 높은 우선권을 갖고 있다.
IV. 한국의 경제적 조건
한국의 최근의 경제 발전은 미국에서 높게 칭송되어 왔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노동 세력은 경제적 추구에서 그들의 능력을 훌륭하게 발휘했었다. 나는 박정희 행정부가 한국의 경제 발전에서 수행한 역할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경제 발전 노력에 아주 중요한 숨겨져 있는 양상을 지적해야만 한다.
A. 한국에서의 왜곡된 자유 경제 시스템
한국에서는 자유 경제 시스템의 원칙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 경제의 60 퍼센트 이상이 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 모든 금융기관은 정부에 의해 치밀하게 감독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공익 설비 산업은 국영 기업체가 운영하거나 소유하고 있다. 생산에 사용되는 일부 투입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고, 다른 데 사용되는 물질은 해외로부터 수입된 것으로서 수입 관세가 적용됨으로써 물가는 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규제된다.
이익이 남는 기업을 할 기회는-정부 계약이나 국제 합작 투자 기업에의 참여-공개 입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금의 은밀한 기부를 통해 집권 여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기업체에 주어진다.
B. 경제 개발과 분배의 문제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무시되고 있는 효과는 한편으로는 부자와 가난한 자 간,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 인구와 농촌 인구 간의 넓어진 격차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다. 소득 분배의 양극화와 불균등한 지역 개발은 심각한 경제 문제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도 또한 중요하다.
농업의 경우는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1967년과 1968년에 전체 경제 성장률은 각각 10퍼센트와 13퍼센트였다. 반면에 농업 부문에서 경제 성장률은 1967년에 마이너스 6 퍼센트였고 1968년에 단지 1 퍼센트였다. 이러한 실패의 결과, 한국은 증가하는 인구를 먹이기 위해 해외로부터 식량을 수입해야 했다. 한때 쌀과 곡식을 수출하던 한국은 이제 연이어 곡식을 수입하는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수입 곡식의 가격은 도시 소비자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에 의해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었다. 농업 생산자는 이러한 정책의 직접적인 희생자이다. 그리고 농업지역에서 구매력은 급속히 하락했다. 이러한 농업 조건은 다만 농촌의 불만을 불러일으키기에 더할 나위 없을 뿐이며 이러한 농촌의 불만은 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찾는 전통적인 목표물이다.
요약하자면, 지금이 이 시점이 바로 한국에서의 경제개발 노력에 결정적인 전환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자유 경제 시스템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과감하게 축소되어야 한다. 동시에, 더 많은 자원이 이 나라 경제의 중추인 농촌의 경제 발전에 할당되어야 한다.
C. 한미 경제 협력
한국은 1952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으로부터 39억 2100만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우리는 그 원조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원조를 가지고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 경제를 재건하고 발전시켰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경제적 자립 생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조를 구걸하는 정신자세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미국으로부터 바라는 것은 양국 간의 상호 호혜적 경제 협력이다.
그러한 협력은 양국 간의 무역 불균형을 포함한다. 한국의 대미 무역 적자는 1968년에 2억 1300만 달러, 1969년에 1억 3100만 달러였다. 한국은 미국에 더 많은 물자를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면방직 제품 등 한국 제품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제한이 제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미 경제 협력의] 또 다른 사례는 한국에서의 미국의 합작 투자이다. 그것은 전부 7600만 달러 혹은 한국에 대한 전체 해외 자본 투자의 60 퍼센트에 달한다. 한 편으로는 한국은 미국이 어떤 문제도 겪지 않는 유일한 동맹국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한국의 노동 세력은 그 근면함과 훈련을 잘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적 노우하우 그리고 경영이 한국의 경제적이면서도 경쟁력 있는 노동과 결합하면 세계 시장에 새로운 세력이 될 것이다.
닉슨 미국 대통령
국가안보회의(NSC)
워싱톤
1970년 4월 14일
수신: 김대중, 대한민국 국회
김[대중]씨 귀하:
본인은 귀하가 대통령에게 보낸 3월 27일자 노트에 대한 답신을 하도록 요청받았다.
공동 관심사에 관한 귀하의 견해를 저희가 주목하게 전달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본인은 귀하의 글의 사본을 정부 내 적절한 인사에게 전달해 주려고 한다.
귀하의 미국 방문이 즐거운 방문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귀하를 만날 기회를 가지지 못해서 유감이다.
John H. Holdridge
수석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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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요..
저런 식견을 가지신 분을 왜 미워하는사람들이 있는지..
존경하길 바라며..
미워하는 데는 아마 다른 이유가 있겟죠.
지역성, 이념 등등 말입니다...
어쩌면 YS랑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감상에 빠진 게 아니라, 전략적/논리적으로 너무 치밀한 글이다.
난 행복하다고 느낀다. 저런 분과 또 그 후의 인물을 나의 대통령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게.
ㅠ ㅠ ㅠ
YS의 편지의 주된 내용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종식을 구할 수 있는 길은 미국의 간섭과 영향력이라고 보는데 DJ는 이런 YS의 생각과는 완전히 상반되어 있습니다.
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은 결국 국민의 힘에 의한 것이지 외부의 영향이나 간섭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어도 국민들 스스로가 자각하고 민주의식에 눈을 뜬다고 하면 그 어떠한 독재정권도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YS는 우리 국민들의 역량을 너무 무시하거나 간과했으며 또다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세의존적인 개입논리를 드러내는 지극히 경박하기 그지 없는 단선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 일제의 식민지 해방이 우리 스스로의 의한 것이 아닌 외세에 의해 이뤄지다보니 결국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한반도가 분열되고 전쟁이 발발했으며 한반도 이남에서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친일잔재청산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지금까지 주체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채 여전히 냉전구도의 산물속에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 성취를 달성하며 아시아에서 몇안되는 민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진보라고 할수 있는 겁니다.
DJ는 이런 역사의 보편적 시각에서 바라보았으며 한미관계는 DJ 본인이 말하듯, 쌍방호혜적인 위치에서 공통의 이익을 견지하면 그 뿐입니다. 즉, 한미라는 관계가 주종관계 또는 종속관계로 있으면 안된다 그겁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패배와 더불어 반미시위 및 경제위기로 인해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이 금이 난 상태였습니다. 그 돌파구를 중국과의 개선에서 찾으며 동시에 대한민국과 같은 주변국에서의 전략적 재고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한국의 위상을 재고하기 위해 그나마 제대로 된 시각과 의견을 전달했던 것은 DJ의 역량이 어느정도인지 우린 알수가 있는 겁니다.
아무튼, 다시 한번 DJ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님의 정성어린 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존경하는 분입니다.
저두요...
벌써 40년 전이군요.~~
과거 3김과 역사는 재조명하고 재평가를 하여
오늘날 제대로 받아들여야겠지요.
글 고맙습니다 ^^
저도 고맙습니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네요..
벌써 40년전의 편지군요.
일본의 아시아 지배, 민주주의에 대한 외세 배제, 부패 정권에 의한 특혜 등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군요.
좀 더 오래 사셔야 될텐데....
저두요...
몇달 전 노벨위원에서 주최한 연설&토론회장에서 DJ의 연설이 끝난 후 어떤분이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물었는데..그때도 DJ는 물론 국제사회의 버마군정에대한 압박도 있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건 그 나라 국민들의 의지라고 했었는데..아시는거겠죠. 민주주의라는건 결코 외부의 힘에 의해서, 댓가 없이 이룰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걸요.
옳은 말씀입니다...
정선생님 한 5년전에 안티조선 연말 모임 같은 데서 술도 한잔 같이 해던 사람입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라고.... 전 김전대통령께서 대통령 퇴임 하자마자 북한에 가서 사시길 바랐던 사람인데요... 노무현대통령 임기 초반에 그런 식으로 했으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지금은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어려울 것 같긴한데.... 노전대통령이라도 그럴 방법을 찾아보면 안 될까 싶습니다.
람세스님, 반갑습니다...
우린 그런 인연이 있군요^^^
여기에서 선생님을 보네요. 반갑습니다. 위 람세스님과 같이 그때쯤에서 뵌것 같네요. 선생님이 가시는 길은 옳은 길이고 반드시 역사에서 정당한 자리매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그리고 람세스님....아뒤를 보니....생각나시는 분이 있네요. 아름다우신 그분도 건강하시겠죠.
옹???? 누구실까???? 알려주세요..
글쎄요, 네테루님은 누구시죠?
저도 궁금해요.
글고 '아른다우신 그분'은 또 누굴까요???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들에서도 높게 평가하는 인물을
어떻게든 폄하하고 깎아내리기 바쁜 무리들,
자칭 대한민국 보수 우익들.
열등감 때문일까요?
흠결도 많고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 중에 김대중만한 인물이 어디 있다고.
녹두님이 한칼에 정리해버리시는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