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언론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언론자유 증진을 목적으로 전세계 언론 환경을 조사해서 매년 10월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를 발표한다. 2002년 첫 발표 당시 39위였던 한국의 순위는 낮게는 49위 (2003년)부터 높게는 31위(2006년)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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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 (2002-2008) |
ⓒ 이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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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과 잦은 마찰을 빚었던 노무현 정부 당시, 언론자유지수는 <조중동>이 정부의 언론정책을 공격하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2002년 언론자유지수가 처음 발표된 이후 매년 10월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조선일보>는 관련 기사를 내 놓았다.
한국 언론자유 등급 낮아져 – 2002년
한국 언론자유 39위서 49위로 하락 – 2003
국경없는 기자회, 한국정부, 비판언론에 항상 인내하지는 않아 – 2004년
국경없는 기자회, 언론자유도 순위 왜 이리 자주 바뀌나 – 2005년
한국 언론자유 31위… 3계단 올라 – 2006년
한국 언론자유 31위 -> 39위 추락 – 2007년
첫 발표라 비교 대상이 없었던 2002년의 기사 제목을 '등급 낮아져'라고 한 것이 어색하다. 본문을 읽어 보면 등급이 더 높을 수도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의 '비판언론 탄압' 때문에 등급이 낮아졌다는 내용이다. 이마저도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 <조선일보>기자가 인터뷰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순위가 떨어진 2003년과 2007년에는 '하락', '추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반면 전년도 48위에서 34위로 순위가 크게 올랐던 2005년에는 '언론자유도 순위 왜 이리 자주 바뀌'는지를 묻는 기사를 내 놓았다. 기사 내용 중에도 한국의 순위가 올라간 이유는 없고, <조선일보> 기자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고위 공직자의 언론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 등이 '감점 요인'이었다고 썼다. 다음 해 또 다시 순위가 31위로 오른 후에야 '3계단 올라'라고 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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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언론자유지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 - 하락할 때는 어린이신문에도 기사를 실었다 |
ⓒ 이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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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대 놓고 비판을 하고, 순위가 올라가도 비판거리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마는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발표 당시에는 어떻게 기사를 썼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으나 기사가 없다. 2007년 39위에서 2008년 47위로 내려갔으니, 평소의 <조선일보>라면 할 말이 많았을 텐데, 관련 기사 하나 없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동아일보>는 어땠을까? 아래는 2007년 10월 18일자 <동아일보> '국가 위상 추락까지 국민 탓인가' 사설 중 일부이다.
"국제 언론환경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작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31위로 낮게 평가하더니 그나마 올해엔 39위로 떨어뜨렸다. 세계 언론 사상 유례없이 기자들의 공무원 접근을 차단하는 최근 상황까지 반영됐더라면 언론자유지수는 더 추락했을 것이다. 노 정부는 언론자유를 후진(後進)시키는 정책을 '취재지원 선진화 시스템'이라고 우긴다."
노무현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해 언론자유지수를 끌고 왔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낮게 평가하더니'라고 표현한 2006년 31위는 한국이 받은 역대 최고 순위일 뿐 아니라, 그 해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일본(51위)과 미국(53위) 보다도 앞섰다. 언론자유지수를 가지고 사설까지 썼던 <동아일보> 역시 이명박 정부의 47위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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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에 따라 바뀌는 <중앙일보>의 제목 뽑기 |
ⓒ 이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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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중앙일보>를 보자. 2007년에 순위가 발표되었을 때 '한국 언론자유 31위 → 39위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던 <중앙일보>는 2008년 순위가 발표 된 이후 <연합뉴스>의 기사를 가져와서 국경없는 기자회 '북한, 변함없는 언론탄압국'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사에는 북한이 '심각한 언론 탄압국'이며, 니제르의 순위가 하락했고, 에리트레아가 2년 연속 최하위라는 내용은 있었지만, 한국의 순위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 하나 하나에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고, '국경없는 기자회'의 순위를 입맛대로 가공해 기사화 했던 <조중동>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언론정책에 대한 비판을 포기한 듯 보인다. 기사 거리가 있어도 기사화 하지 않는 방법으로 정부의 언론정책을 거든다.
'용산참사'를 '연쇄살인'으로 덮으려 했던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 지침'에 대한 <조중동>의 침묵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중동>의 침묵이 청와대가 홍보 방법을 지시하고, 경찰이 그 지시대로 홍보하고, <조중동>이 기사로 실행한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방겸영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와 방송진출을 염원하는 <조중동>의 이해관계에 따라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거다.
올해 10월,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다시 연례보고서를 발표할 것이다. 방송장악, 미디어악법 추진, 미네르바 구속, 여론 조작 등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감안하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하락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정부의 반언론정책에 부역한 <조중동>이 절반을 져야 할 것이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 언론에게는 그게 부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