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 추모 열기로 천주교에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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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가톨릭 신자들이 전시된 김 추기경의 생전 사진을 둘러보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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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신드롬을 방불케 하는 추모열기가 온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언론에서는 김 추기경에 대한 존경과 애도가 넘쳤고 명동성당에는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4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조문을 했다. 전국 각 성당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자발적 추모열기는 근대 이후 그 어떤 종교지도자에게도 없던 것이다. 그만큼 김 추기경이 남긴 삶과 업적이 크기 때문인데 이러한 추모바람을 일각에서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로 불교나 개신교 같은 다른 종교인들에게 보이는 현상이다.
대부분 '왜 우리 종교에는 김 추기경 같은 인물이 없을까'하는 것이다. 2천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나 1960년대 이후 폭발적 성장을 통해 세계 10대교회 중 6개가 존재하고 조용기 목사 등 스타 성직자가 즐비한 개신교에서 그와 같은 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불교나 개신교에 그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3년 11월 성철스님이 입적할 당시와 그 이듬해인 1월 문익환 목사가 소천했을 때도 온 사회가 떠들썩했으나 두 사람 모두 김 추기경과 같은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성철스님은 해방 이후 불교계 정화와 올곧은 수행, 청빈한 삶 등을 통해 종교적인 차원에서 귀감이 되었지만 유신과 광주학살 등 사회문제에는 침묵을 지켜 '비역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익환 목사 역시 196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대부로서 진보세력에게는 절대적 지지를 받기는 했지만 보수진영에게는 1989년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 등을 이유로 '빨갱이 목사'로 원색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비해 김 추기경은 박정희·전두환 등 절대 권력에 대항하면서도 서민적 풍모와 풍부한 영성을 통해 전 계층을 두루 품는 모습을 보여 거의 모든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말년에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 일부 진보세력에게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의 일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점이라고 보는 이는 없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김 추기경의 선종에 천주교는 일대 '특수'를 맞고 있다. 조문인파는 물론이고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김 추기경은 물론 천주교가 크게 알려지면서 천주교와 성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천주교 신도는 2007년 말 현재 본당 1511개에 신자 수는 487만여 명. 이는 지난 1995년 345만여 명에 비해 40퍼센트가 넘는 142여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다른 어떤 종교보다 증가세가 높은 편이다. 이 기간 동안 불교는 약 4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고 기독교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등 현실 참여로 신자 대폭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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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고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찾은 시민들이 명동성당에서 삼일로를 지나 명동역까지 줄지어 조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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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천주교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진행된 제사 등과 관련한 토착화 노력, 타종교와 대화하려는 노력으로 열린 종교로서 위상 확보, 노동·빈민 등 다양한 사목활동, 김 추기경과 정의구현사제단 등을 통한 대사회적 발언에 힘입은 바가 크다.
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 열기 역시 향후 천주교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만큼 한국 천주교가 김 추기경에 진 빚이 크지만 앞으로 그 뒤를 인물이 과연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상황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든다.
가장 큰 이유는 천주교 전체가 총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삼성비자금사건을 폭로한 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와 대표인 전종훈 신부가 작년(2008년) 8월 서울대교구에서 징계성 인사를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로급인 함 신부는 그동안 근무해오던 제기동 성당에서 청구동 성당으로 발령났는데, 청구동 성당은 보좌신부도 담당수녀도 없는 곳으로 알려졌다. 전 신부는 통상 3~5년 근무하는 관례를 깨고 1년 반 만에 원하지도 않는 안식년 발령을 받아 사목활동을 전혀 할 수 없게된 것이다.
천주교 내에서는 함 신부와 전 신부에 대한 인사가 삼성비자금 폭로, 촛불 시국미사와 농성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현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천주교 지도부의 의중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가톨릭 언론매체 <가톨릭 지금 여기> 보도에 따르면 전 신부의 경우 정진석 추기경과 교구장에게 몇 차례 호출당해 상당한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주교가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주교를 비롯한 지도부의 수구적 흐름도 있지만 신자들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천주교인이 다른 지역에 비해 증가세가 뚜렷하고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곳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이다.
2005년 통계청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천주교 인구가 전체 종교인구 중 10%대(광주제외)에 머물고 있는 반면 수도권에서는 25% 이상을 차지하고 그중 서울 강남구, 서초구, 성남시 분당구에서는 30%대를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같은 통계는 기독교에 비해서는 낮지만 불교 인구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때 수도권의 과반수 유권자가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특히 강남과 분당 일대에서 압도적 표가 나온 것을 감안하면 이 지역의 보수적 성향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 장관급 인사 중에 개신교 다음으로 많은 4명(한승수, 김경한, 유인촌, 전재희)이 천주교인이며 국회의원도 개신교 118명에 이어 78명으로 집계됐다(불교는 54명). 기업에서도 매출규모 1조원 이상 대기업 CEO 24%가 천주교인으로 기독교(22.9%) 및 불교(14.4%)에 비해 높았다.(이코노믹 리뷰, 제 288호, 2005.11.30 참조)
지도층과 신자들의 보수화로 사회참여 명맥 끊어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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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용산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마친뒤 추모미사 행렬이 명동성당으로 행진을 하다가 을지로 롯데백화점 앞에서 경찰들이 인도로 이동을 요구하며 사제단을 밀어내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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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지도층과 신자들의 보수화는 천주교 전체의 대사회적 발언과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고 있다. 한때 시민사회나 노동·빈민단체들의 마지막 피난처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은 건물보호와 신자들의 반대를 이유로 더 이상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주교 이상 고위사제들 역시 사회 문제에 대해 대부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인권탄압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전혀 언급이 없고 오히려 사제단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용산철거민 참사 때도 사제단 외에 현장을 찾은 주교급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김 추기경과 함께 살아 있는 양심으로 민주화운동의 방패역할을 했던 고 지학순 주교와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없다.
올 3월 개원을 앞두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이 수천억을 들여 지은 서울성모병원이 하룻밤 입원료가 400만원을 웃도는 VIP전용 초호화 병실을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자매기관인 강남성모병원에서는 작년 9월 비정규직을 집단해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천주교의 보수화로 사제단의 활동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교회 상층부의 압력은 물론 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양준석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사무국장은 사제단 신부가 재직하는 성당의 일부 신자들은 사제단 신부들의 인사조치를 요구하고 미사 때 정부나 삼성 등 재벌에 대한 비판 강론을 못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제단 외에 교회 내 진보적 단체들도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대구대교구 같은 경우는 1980년대 이미 청년학생운동의 싹이 잘렸고, 조성만 열사를 배출하는 등 한때 학생운동의 메카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청년학생연합회(명청)도 명맥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대외적으로도 그다지 전망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파문하는 데 앞장섰고 교황 즉위 후에도 라틴어 미사 부활추진, 동성애와 여성차별, 타 종교에 대한 천주교의 우위 강조, 나치 옹호 주교 복권 등을 통해 천주교의 역사를 뒤로 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천주교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와 각종 위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체계화된 조직구조, 낮은 재정비리, 비교적 양질의 사제수급 능력과 순환보직, 효율적인 신자 관리는 종교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는 향후 천주교 신자 수는 2010년 522만명, 2015년 583만명, 2020년 644만명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종교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괜찮은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요 미사 참여율이 낮아지는 등 냉담자가 늘어 비관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초파일, 백종, 천도재 등 중요 행사 외에 사찰출입이 많지 않은 불교신자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다.
현재 한국천주교는 종교의 두 날개인 제사장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 중에 예언자적 기능은 포기하고 권위적이고 현실안주적인 제사장적 기능에 치중하면서 부자들과 권력의 종교로 줄달음치고 있다.
개신교가 1970~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반체제/반정부 가능성이 있는 이농인구와 도시빈민을 흡수해 탈역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면 2000년대의 천주교는 중산층의 수구보수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개신교가 지향했던 공격적인 방식을 모방해 신도시를 중심으로 본당확장에 막대한 물량을 투입하는 등 종교시장의 선두에 서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는 양적으로는 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질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개신교가 양적으로는 엄청 늘었지만 결국 물량주의와 물신주의로 한국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것처럼 천주교도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은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들에게는 더없이 약했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는 겉으로는 김 추기경 추모에 큰 공을 들이고 있지만 암울한 현실상황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누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따르기 싫은 매우 예외적인 인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가 사람이 아니라 신으로 모셔지면서 보통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한 존재로 박제화되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김수환이라는 대붕이 양쪽의 큰 날개로 한국 천주교를 더 없이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지만 한국천주교는 그 높은 곳에서 한쪽 날개로만 날아가려고 하고 있다. 정치권력과 재벌, 가진 자만을 위한 날개만으로 과연 얼마 동안 날아갈 수 있을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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