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자료창고

교장들은 괜챦고 교사들은 서명운동하면 안된다? 자기들이 하면 로맨스라고?

by skyrider 2009. 7. 4.

진짜 정치중립 위반한 것은 교장단-교과부-사학법인
[주장] 교과부·보수언론의 일관성 없는 '편파 잣대'
09.07.03 16:07 ㅣ최종 업데이트 09.07.03 17:50 김행수 (hs1578)

  
전교조 관계자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김환
전교조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둘러싸고 MB정부와 전교조간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지난 26일, 전교조 정진후 위원장 등 지도부 88명을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고 금지된 집단행동을 하였다'는 혐의로 형사고발하는 동시에 '국가공무원법의 성실, 복종, 품위유지 의무 위반'을 들어 해임 등 중징계를 결정했다. 또 서명에 참가한 교사 1만7000명 전원은 진상 조사를 거쳐 최소 주의·경고를 하도록 했다.

 

전교조는 교과부의 이런 방침에 반발, 2차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과부가 중징계 방침을 밝힌 지 일주일이 되는 3일 새벽, 검찰의 지휘를 받은 경찰이 전교조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 했다.

 

교과부와 보수언론들은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교육과 관련 없는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대표적으로 지난해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한미 쇠고기 재협상 촉구'와 '대운하 반대와 민주주의 후퇴'에 관한 것 등을 꼽는다.

 

과연 교사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고, 대운하를 반대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서명을 한 것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인지에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들 교과부는 지금 자신들의 행동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교과부 등 모든 공무원들에게 똑같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협상 홍보는 괜찮고 시국선언은 안 된다?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만화 <엄마의 마음> 일부. 정부는 이 만화를 통하여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광우병은 사라지는 병이므로 한미 쇠고기 협정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 농림부
광우병

 

MB 정부 출범 이후 그들이 만난 최초의 난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불만에서 촉발된 국민들의 촛불 행진이었다. 2008년 5월 청소년에서 시작된 거대한 촛불 물결이 전국을 휩쓸던 6월 무렵, 정부는 학교에 2페이지짜리 만화를 내려 보냈다.

 

<엄마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이 만화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제작했고, 교과부와 각 교육청을 거쳐 학교로 배포되었다. 이 만화는 "우리나라에는 광우병 위험 물질을 제거한 안전한 쇠고기만 수입된다", "소를 이용한 화장품, 기저귀, 쇠고기 조리한 수돗물 등이 오염된다는 것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만화를 각 학교에 내려 보내 아이들에게 홍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된 것이고, 교사들이 한미 쇠고기 협정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정치운동이라는 그들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교과부는 또 '대운하는 교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정치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교과부는 '4대강 살리기 홍보 협조 공문'을 학교에 내려보내 교사들에게 홍보 교육을 실시하고, 각 학교와 도서관 홈페이지 등에 배너를 달아서 선전하도록 지침을 내려보냈다.
ⓒ 김석민
대운하

그런데 그런 교과부가 지난 6월 말 교육청을 통해 각 학교로 '4대강 살리기 홍보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을 내려 보냈다. 이 공문은 '소속 직원, 교원 등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 및 홍보를 통해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이해 조기 확산을 위하여 각급 학교(기관) 직장교육 실시(6월 넷째주 ~), '4대강 살리기' 사업 설명 및 홍보동영상 상영, 홈페이지 등을 통한 온라인 홍보(6월 넷째주~ )를 하고 각급학교와 도서관 홈페이지에 '4대강 살리기' 배너 및 홍보동영상 탑재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담고 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중에 대운하는 하지 않고 4대강 살리기는 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환경단체 등에서는 여전히 '4대강 살리기'를 '이름만 바꾼 대운하, 대운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에게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학교와 도서관 홈페이지에 배너를 달라는 협조 공문을 내려 보내는 것을 '정치적 중립'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낯 뜨거운 일이다.

 

국회의원 공천 위해 서명운동 벌인 교장단

 

교사들은 지금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고, 전두환의 5공 군사 정권을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정권'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자괴감을 느낀다. 교사를 정권 유지를 위한 선전 도구로 삼고 학교를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기구로 전락시켰던 군사정권 시절과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교장들은 어떤가? 지금 교장들은 시국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이 누군지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교장들은 전국적으로 1만7000명이나 되는 교사들이 한꺼번에 선언에 참가하였는데 소속이 명확하지 않고, 동명이인도 많아 난감한 상황이다. 확인만 되면 당장 불러다가 혼을 내고 징계위원회에라도 회부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 해서 안달이다.

 

그런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이 한창이고, 17대 총선을 얼마 앞둔 2004년 2월 26일 서울사립중고등학교교장회는 각 학교로 공문 한 장을 내려 보냈다. 서울뿐 아니라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도 전국 시도지부에 서명을 촉구하는 협조 공문을 보낸 사실이 있음을 인정했다.

 

"대한 사립중고등학교장회는 (한나라당 교육상임위원인) 현 의원의 전국구 공천 요구에 대한 강도를 높이고자 공천 추천 서명 작업에 착수코저 하오니, 붙임의 서명부에 다수 교직원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3월 3일(수)까지 본회 FAX(000-XXXX)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붙임 : 현승일 의원 전국구 공천 추천 청원서 및 추천 서명부 1부. 끝."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현승일은 사립대학 총장 출신으로 교육계 최대의 이슈였던 사립학교법 개정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사립학교 교장단은 자신들의 이익에 가장 앞장서서 싸워주었던 이 국회의원에게 한나라당이 공천을 주어야 한다고 교사와 직원들에게 지지 서명을 받아서 보내 달라는 공문을 '대놓고' 학교에 보냈다.

 

많은 교장들이 이 공문을 들고 교사들에게 서명을 요구했고 교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을 하기도 했다. 이는 명백하게 교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교장들 중 어느 누구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립학교 교장들은 대놓고 교사들에게 한나라당 국회의원 지지하는 서명을 받아서 제출하도록 하는데도 정치 중립이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는 교사들의 서명은 정치운동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어이없을 뿐이다.

 

  
사립교장회에서 학교로 보낸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 요구 서명 공문과 서명지.
ⓒ 윤근혁
교장단

 

특정 정당에 후원금까지 건넨 '사학법인연합회'

 

교장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역시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이 한창이던 2003년 6월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가 산하 회원과 시도협의회 등에 보낸 공문을 한 번 보자.

 

* 업무연락1(대외비) : "본 협의회 제41차 이사회(03.6.4)에서는 전 임원이 1인당 20만원이상 씩 후원하고 각 시·도회는 시·도회 경비로 1백만원을 후원키로 하여 중앙회에서 일괄수합해 전달키로 했다."

* 업무연락2 : "국회교육위원회 000 의원 후원회 행사가 있음을 알려드리오니 후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후원회 계좌번호는 000-00-xxxxxxx (XX은행)"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의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원금 요구 공문.
ⓒ 김행수
한나라당

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가 이사회 결정을 통해 한나라당 교육상임위원들에게 조직적으로 정치자금을 후원키로 결정하였음을 알리며, 돈을 송금할 통장번호까지 적어 놨다. 전 임원이 1인당 20만 원 이상, 각 시·도회 경비는 100만 원으로 구체적인 액수까지 적시했다.

 

또 다른 업무연락 역시 '한국사학법인연합회'가 중등법인 전·현직 회장단, 임원, 연합회 임원, 유관단체 등에 보낸 것으로 한나라당의 또 다른 교육상임위원 후원회에 정치자금을 후원하자는 내용이었다. 사립중교법인협의회는 산하 학교법인이 서울협의회만 150여 개, 전국적으로는 700여 개에 이른다.

 

많은 사립학교 전현직 교장들이 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사학법인연합회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돈 갖다 주자고 결의를 하고, 이를 비밀공문으로 내려보낸 것이 밝혀졌는데도 이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 선언은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정치적 중립이고, 누가 정치 운동을 하고 있는가?

 

학교를 진짜 정치판으로 만든 게 누군지 생각해보라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고 교사를 정권의 홍보와 선전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은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들이 아니라 미국 쇠고기 홍보 만화와 '4대강 살리기 홍보' 공문을 내려 보낸 교과부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10년 전이 아니라 20년 전의 5공 군사정권과 유신 독재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1차 시국 선언 참가 교사를 찾아내고, 2차 시국 선언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교장단과 사학이사장들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사회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정치 후원금 갖다 주자고 결의하여 비밀 공문 내려 보내는 사학법인연합회,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 주라고 교사들에게 서명 공문 내려 보내는 교장협의회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며 대통령의 국정 기조 전환을 촉구하는 전교조 중에서 누가 진정으로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지난 시절 자신들이 해 온 일과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곰곰 되짚어 볼 일이다. 2009년 진정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정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전교조와 시국선언 교사들이 아니라 이를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교과부와 교장단, 사학법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