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이 다 되어간다. 국방장관은 선체 인양 후 국가안보에 중대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5월 4일 대통령은 전군 지휘관 회의를 열었고, 국방장관은 국토방위에 틈을 보였다고 실책을 인정했다.
합참의장도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의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자책했다. 그런데 소위 결정적 증거물을 인양한 5월 15일 이후 국방부와 합조단의 태도는 매우 의기양양했다. 5월 20일 민군합동조사단 조사결과 발표장은 마치 적을 섬멸하고 돌아온 지휘관들이 앞다투어 전공을 과시하려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5월 24일 전쟁기념관에서 국군 최고통수권자가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대국민담화문을 낭독했다. 마치 무슨 선전포고 같기도 했는데 막상 무슨 행동을 하겠다는 내용은 그리 강력해 보이지 않았다. 같은 날 통일·외교·국방 3대 안보부처 장관의 합동기자회견도 있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문제를 들고 가서 북한을 역사의 심판대에서 단죄하겠다는 외교장관의 말에선 자못 비장함도 엿보였다.
정부의 자가당착, 한두 가지 아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정부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적이 언제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에 매복해 있다가 어떻게 치고 유유히 도주했는가? 그리고 왜 서너단계 이상의 중복된 정보자산은 단 하나의 첩보나 흔적도 잡지 못했는가?
북한의 공격 선박에서 발사된 '1번 어뢰'를 둘러싼 논란 또한 정부가 그토록 자신했음에도 해소되지 못했다. 알루미늄 흡착물에 대한 공방 와중에는 최근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의 발표에 의존해 '1번' 매직글씨가 탈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어뢰폭발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자가당착에까지 빠지고 말았다.
천안함 스크루의 휨 현상에 대한 설명은 아예 포기했다. 자기들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 아닌가? 물기둥이 있었는지, 과연 버블제트 현상만 있고 직접적인 충격파는 전혀 없는 '수중 비접촉 폭발'이 가능한 지도 오리무중이다. 이 주장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선체 내부 가지런한 탄약창의 모습이나 깨어지지 않은 형광등, 선저(船底)의 부서진 형상들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이런 모든 내용은 최근 출판된 <천안함을 묻는다: 의문과 쟁점>(창비 2010)에 모아져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합조단 조사의 과학적 기초가 허물어졌으며, 핵심적인 의문점에 대해 정부가 전혀 해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앞으로 두고두고 천안함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기초좌표가 될 것이다.
러시아 조사단의 판단이 말해주는 바
정부는 국민들의 정당한 의문 표시에 재갈을 물리고 윽박지르려 한다. 검증은 회피하고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선 이제 그만 하자는 식이다. 필자는 지난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러시아 외무성 중견간부 출신 인사를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워싱턴에 오기 전에 필자의 관심사가 천안함사건에 대한 러시아 조사단의 입장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두었기 때문에 화제는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러시아 조사단 보고서의 요약본으로 모아졌다.
그의 요지는 한마디로, '서해 천안함에 뭔가 상황이 발생하여 침몰했다. 그러나 한국 합조단이 말한 바로 그 1번 어뢰에 의한 격침은 아니다. 이것이 러시아정부의 판단이다'였다. 왜 그런가 하고 물었다. '러시아 조사단이 합조단의 모든 자료와 서류, 증거에 무작위로 접근한 것은 아니다. 제공하고 싶어한 자료만 받아서 판단한 것이라는 점을 먼저 알려주겠다.
왜 결정적 증거물을 건져올리는 화면은 없느냐고 물었으나 촬영하지 않아서 없다는 대답이었고, 왜 그물이 깨끗하냐고 하자 다 씻어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러시아 조사단은 결정적 증거물의 녹슨 상태로 보아 도저히 50일 밖에 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 이상의 판단 근거가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러시아로서는 그로써 충분히 천안함사건의 원인에 대해 말한 것이다.'
미확인물체 포착지점과 천안함의 항적
필자도 최근 두 가지 새로운 정보를 확보했다(추후 적절한 방식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첫째는 속초함이 미확인 고속이동물체를 파악한 지점과 시각 그리고 그것을 추적해간 경로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확보한 정보가 사실이라면 정부는 중대한 거짓말을 했다. 왜냐하면 미확인 고속이동물체가 처음 포착된 곳은 백령도 북방이 아니라 백령도 서남방, 그러니까 천안함 침몰지점 근처였기 때문이다.
격파사격도 백령도 서북방이 아닌 서남방에서 이루어졌다. 속초함은 3월 26일 22시 59분부터 백령도 서남방에서 고속으로 쫓아가면서 미확인물체를 향해 경고사격을 했고, 그후 계속 백령도 해안선을 따라 추격하면서 23시 05분까지 격파사격을 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했다.
즉 백령도 북단 NLL 근처에서 고속이동하여 막 북측 지역으로 들어가려던 고속이동물체를 포착하고 서둘러 격파사격을 했으나 놓치고 만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서해로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하고 도주한 고속이동물체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러나 필자가 확보한 속초함 작전구도에 따르면 바로 그 시각 백령도 서방부터 북서단 지역은 우리 해군의 장악 하에 있었다.
미확인 고속이동물체가 감사원이 의심하는 대로 만약 새떼가 아니고 수중잠수함이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합조단 설명대로 디귿자로 침투해 들어와 그대로 다시 나갔다면 속초함이 반드시 포착해서 격파할 수 있을 만큼 기동성있게 백령도 서해상을 지배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둘째, 천안함의 항적(航跡)이다. 필자가 보유한 항적 가운데 백령도에 가장 가까이 붙은 것은 0.9마일이다. 이 항적은 3월 36일 오전거다. 항적이란 기본적으로 점과 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3월 26일 하루 전체의 항적은 미공개된 상태다. 다만 이미 공개된 3월 25일 주간 항적에서 천안함이 왜 24경비구역에서 초계임무로 보기 어려운 동서 반복 운항을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거의 하루 종일 동서로 반복 운항했다면 이른바 적의 공격 잠수함은 어디에 숨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답해야 한다.
실효성있는 국정조사가 필요하다
천안함사건이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 사태라는 데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서 청문회도 열고, 국정조사도 해야 한다. 지난 5월초부터 6월 하순까지 국회 천안함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렸지만 회의다운 회의를 한 것은 단 두차례뿐이었다. 더구나 국방장관과 정부당국자들은 그 자리에서 발언의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저 시간 때우기로 일관했다. 국회는 정부가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도 찾아볼 길이 없으며, 진술이 틀리거나 번복하더라도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
증인선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정조사가 열린다면 증인선서와 함께 거짓 증언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정부에 대해 직접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천안함을 묻는다>에 기고한 전문가들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역사에 남을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안함 버블'은 어디로 터질지 모를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명박 정부로 다가가는 기뢰가 될 수도 있다.
2010.8.18 ⓒ 창비주간논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