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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모태이며 지난 시절 죽음과 고난의 역사를 헤쳐온 민주화의 성지다. 그런데 지금의 명동성당은 세상과 벽을 쌓고 있다.”
‘행동하는 성직자’ ‘길 위의 신부’로 불리는 문정현 신부가 천주교의 상징과도 같은 명동성당과 정진석 추기경의 행태에 대해 정면 비판했다. 한겨레는 8일자 28면 <평화바람 일으키려 다시 길 위에 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정현 신부의 얘기를 구술 정리했다.
문정현 신부는 평택 대추리 문제, 용산 참사 등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과 한이 서린 공간을 찾아 그들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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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10월8일자 2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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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20일 용산 남일당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추기경 조문 갔다가 순천향병원 영안실에 들렀다. 강도 같은 공권력에 희생된 다섯 분 유족들의 고통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할 때였다. 나는 나만큼이나 노쇠한 평화바람의 꽃마차(미니버스)를 끌고 올라와 남일당으로 들어갔다. 철거민들과 함께 부당하고 잔인한 공권력에 맞서는 일은 하루하루 고통이었다.”
문정현 신부는 ‘천주교의 개혁과 참회’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홀로 기도 중이다. 그는 지난 여름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사제들의 단식 기도 장면을 회상했다. 그는 “서울대교구 관리국에서는 영업방해라며 가톨릭회관 앞 주차장에 설치한 기도처 천막을 강제 철거했다”면서 “명동성당 사목회 임원들을 보며 안타깝기보다 참담했다. 사제서품 40년을 넘어 금강축을 앞둔 내 사제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백발이 성성한 문정현 신부가 이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는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명동성당은 네 것 내 것 따질 수 없는 우리나라의 성당”이라고 말했다.
민주화의 상징 ‘명동성당’이 이렇게 변한,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부 입장에서 추기경을 정면 겨냥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직설 화법으로 정진석 추기경을 비판했다.
문정현 신부는 “서울대교구 교구청, 그리고 명동성당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행태는 바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영향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는 “4대강 사업 반대는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 추기경은 주교단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는 발언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문정현 신부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다. 주교회의의 결정을 따르는 사제들과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암울한 4대강의 생명평화 가치를 욕되게 했다. 정 추기경도 그 가치를 모르지 않을 터, 그런 언행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는 후배 사제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긴 조언을 전했다. 왜 그를 ‘길 위의 신부’라 부르는지 보여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한국 천주교를 이끄는 이들은 그의 얘기를 경청할까. 아니면 ‘권력자의 비위에 맞는 발언’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사제단을 대화의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지만 나는 항상 내가 사제단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더 철저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사제의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핵심이다. 순교다. 불의에 항거하다 죽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 영광일 뿐이다. 나는 후배 사제들이 주저 없이 이 길을 택하길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