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운명' 찾은 입양 한국계 美다큐감독
연합뉴스 | 입력 2010.10.19 11:59 | 수정 2010.10.19 13:54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제주
`진짜 차정희' 찾아다닌 `차정희'의 번민 PBS 방영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8세 때 미국에 입양된 한국계 다큐멘터리 감독 디안 볼셰이(53.여)씨는 `차정희', `강옥진'이라는 이름까지 해서 모두 3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고 뒤바꾼 이름들이다.
미국인 볼셰이 부부는 지난 1966년 전주의 한 고아원 아동 중 후원하던 여덟살의 `차정희'를 입양하기 위한 절차를 마치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볼세이 부부가 한국에 도착하기 불과 며칠전 차정희의 아버지가 고아원에 나타나 딸을 데려갔다.
난처해진 고아원은 차정희와 가장 닮은 여자아이였던 같은 나이의 `강옥진'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볼셰이 부부에게 차정희라고 속여서 입양시켰다. 입양아 강옥진의 여권 이름도 차정희로 기록돼 있다.
차정희라는 이름으로 입양된 강옥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디안 볼셰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유복한 미국인 양부모 밑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된다.
낯선 이국땅에서 입양아로서 성장한 볼셰이는 다큐멘터리 투자.제작.배급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인 `아시아 아메리카 미디어센터'에서 일하며, 여러 국제영화제의 상을 받은 다큐 감독으로서도 성공했지만 진짜 차정희와 뒤바뀐 운명을 산다는 번민을 떨치지 못했다.
"차정희의 이름으로, 차정희의 신발을 신고 미국으로 건너와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할 운명을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볼셰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자신의 뿌리는 물론 진짜 차정희를 찾아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또 자신의 운명을 소재로 입양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했다.
결국 한국에서 자신을 낳은 생모를 만났고, 양부모도 함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이 과정을 담은 2000년작 다큐멘터리 'First Person Plural'은 에미상 후보로 올랐고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공영방송 PBS를 통해 미 전역에 방송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뒤바뀐 운명인 진짜 차정희를 찾는 노력도 계속됐다.
2004년 8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입양인대회에 참석하고, 2007년에는 한국 KBS의 입양아 가족 찾기 방송에도 출연해 "차정희씨를 찾고 싶다"며 수소문하는 등 수차례 한국을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자랐던 전주의 고아원이나 입양관련 기관들의 기록들을 추적하고, 차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수십명의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직접 집을 찾아다녔으나 `뒤바뀐 운명'의 주인공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볼셰이는 포기하지 않고 차정희 찾기를 계속했고, 그녀의 사연을 듣고 추적에 나선 경찰 등의 도움으로 지난해 겨울 `진짜 차정희'를 결국 찾아냈다.
진짜 차정희는 볼셰이와 만나 옛날 기억을 회고하며 "어릴 적 전주의 작은 아버지댁에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가 미아가 돼 고아원에 맡겨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가까스로 나를 찾아내 고아원에서 데려갔다"며 "아버지가 말하기를 '조금만 늦었으면 네가 미국으로 가버려 못 찾을 뻔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 차정희와 한나절을 함께 보내며 볼셰이는 "미국에서 살면서 당신의 자리에서 내가 살아왔다는 죄의식을 가져왔다"고 미안함을 표시했고, 차정희는 "나는 아버지를 찾고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오히려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가 그 문화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내가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그런 미안한 마음 전혀 갖지 말라"고 다독였다.
볼세이는 진짜 차정희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차정희 문제'(In the Matter of Cha Jung Hee)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달 미 PBS 방송을 통해 다시 방영됐다.
국제 입양문제를 다루는 시리즈물 중 하나로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볼셰이가 진짜 차정희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 속에 한국전쟁 이후의 입양실태는 물론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룬 지금도 '아동 수출국'이라는 이름을 듣는 상황 등 사회.정치적 관점도 녹아있다.
볼셰이 감독은 18일(미 동부시간) 워싱턴 D.C의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에서 이 다큐멘터리 시연회를 한 후 국제입양문제에 대한 토론회도 가졌다.
볼셰이는 "44년 전 차정희의 여권에 내 사진이 붙여져 차정희의 이름으로 미국으로 오게 됐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나의 운전면허증 등 각종 법적 서류에는 차정희의 생일이 기록돼 있다"며 "법적으로 차정희로 살아온 것"이라고 회고했다.
뒤바뀐 운명을 처음 내디뎠던 입양 때 신었던 신발을 진짜 차정희에게 돌려주고 싶었다는 볼셰이는 "그동안 간직한 신발을 그녀에게 되돌려주면 그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신발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차정희의 신발을 신고 미국에서 살아온 삶이 나 자신의 삶이었음을 이제야 볼 수 있게 됐다"고 그동안의 번민을 다소나마 털었음을 밝혔다.
sgh@yna.co.kr
(끝)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8세 때 미국에 입양된 한국계 다큐멘터리 감독 디안 볼셰이(53.여)씨는 `차정희', `강옥진'이라는 이름까지 해서 모두 3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고 뒤바꾼 이름들이다.
미국인 볼셰이 부부는 지난 1966년 전주의 한 고아원 아동 중 후원하던 여덟살의 `차정희'를 입양하기 위한 절차를 마치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볼세이 부부가 한국에 도착하기 불과 며칠전 차정희의 아버지가 고아원에 나타나 딸을 데려갔다.
차정희라는 이름으로 입양된 강옥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디안 볼셰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유복한 미국인 양부모 밑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된다.
낯선 이국땅에서 입양아로서 성장한 볼셰이는 다큐멘터리 투자.제작.배급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인 `아시아 아메리카 미디어센터'에서 일하며, 여러 국제영화제의 상을 받은 다큐 감독으로서도 성공했지만 진짜 차정희와 뒤바뀐 운명을 산다는 번민을 떨치지 못했다.
"차정희의 이름으로, 차정희의 신발을 신고 미국으로 건너와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할 운명을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볼셰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자신의 뿌리는 물론 진짜 차정희를 찾아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또 자신의 운명을 소재로 입양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했다.
결국 한국에서 자신을 낳은 생모를 만났고, 양부모도 함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이 과정을 담은 2000년작 다큐멘터리 'First Person Plural'은 에미상 후보로 올랐고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공영방송 PBS를 통해 미 전역에 방송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뒤바뀐 운명인 진짜 차정희를 찾는 노력도 계속됐다.
2004년 8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입양인대회에 참석하고, 2007년에는 한국 KBS의 입양아 가족 찾기 방송에도 출연해 "차정희씨를 찾고 싶다"며 수소문하는 등 수차례 한국을 드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자랐던 전주의 고아원이나 입양관련 기관들의 기록들을 추적하고, 차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수십명의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직접 집을 찾아다녔으나 `뒤바뀐 운명'의 주인공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볼셰이는 포기하지 않고 차정희 찾기를 계속했고, 그녀의 사연을 듣고 추적에 나선 경찰 등의 도움으로 지난해 겨울 `진짜 차정희'를 결국 찾아냈다.
진짜 차정희는 볼셰이와 만나 옛날 기억을 회고하며 "어릴 적 전주의 작은 아버지댁에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가 미아가 돼 고아원에 맡겨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가까스로 나를 찾아내 고아원에서 데려갔다"며 "아버지가 말하기를 '조금만 늦었으면 네가 미국으로 가버려 못 찾을 뻔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 차정희와 한나절을 함께 보내며 볼셰이는 "미국에서 살면서 당신의 자리에서 내가 살아왔다는 죄의식을 가져왔다"고 미안함을 표시했고, 차정희는 "나는 아버지를 찾고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오히려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가 그 문화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내가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그런 미안한 마음 전혀 갖지 말라"고 다독였다.
볼세이는 진짜 차정희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차정희 문제'(In the Matter of Cha Jung Hee)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달 미 PBS 방송을 통해 다시 방영됐다.
국제 입양문제를 다루는 시리즈물 중 하나로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볼셰이가 진짜 차정희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 속에 한국전쟁 이후의 입양실태는 물론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룬 지금도 '아동 수출국'이라는 이름을 듣는 상황 등 사회.정치적 관점도 녹아있다.
볼셰이 감독은 18일(미 동부시간) 워싱턴 D.C의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에서 이 다큐멘터리 시연회를 한 후 국제입양문제에 대한 토론회도 가졌다.
볼셰이는 "44년 전 차정희의 여권에 내 사진이 붙여져 차정희의 이름으로 미국으로 오게 됐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나의 운전면허증 등 각종 법적 서류에는 차정희의 생일이 기록돼 있다"며 "법적으로 차정희로 살아온 것"이라고 회고했다.
뒤바뀐 운명을 처음 내디뎠던 입양 때 신었던 신발을 진짜 차정희에게 돌려주고 싶었다는 볼셰이는 "그동안 간직한 신발을 그녀에게 되돌려주면 그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신발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차정희의 신발을 신고 미국에서 살아온 삶이 나 자신의 삶이었음을 이제야 볼 수 있게 됐다"고 그동안의 번민을 다소나마 털었음을 밝혔다.
sgh@yna.co.kr
(끝)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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