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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잘 돌아가나?

"현위원장, 아주 잘 하고 있어" 누구 눈엔 그렇게 보일려나? 뻔뻔한 위원장

by skyrider 2010. 11. 18.

[사회]인권 쫓고, 권력 좇고 ‘이상한 인권위원장’

위클리경향 | 입력 2010.11.18 14:04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전라

 
ㆍ현병철 위원장 "독재라도 할수없다"…위원 속속 사퇴 파문 확산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11월 8일, 방청객과 취재진 40여명이 주목하는 가운데 2010년 17차 국가인권위 전원회의가 시작됐다. 현 위원장의 입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떤 말이 나올까.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사퇴한 지도 일주일째. 인권위 내부게시판에는 '국가인권위를 사랑하는 직원 일동'이라는 명의로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결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돼 온 위원회 운영이 두 상임위원의 중도 사퇴를 몰고 왔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 11월 8일 오전 전직 국가인권위원들이 환경재단 레이첼카슨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 운영과 최근 인권위원의 사퇴 등과 관련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11월 8일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17차 전원회의에서 장향숙 상임위원(왼쪽)이 현병철 위원장에게 두 상임위원의 사퇴에 대한 의견을 물으며 따지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의안상정에 앞선 현 위원장의 발언은 길었다. "…두 위원의 사퇴 소식을 들은 것은 전남대학교와 MOU를 체결하러 간 자리였다. 원래대로 하면 지난주에 임시 전원위원회를 열어 이 사태 처리를 논의하려고 했으나 약속 일정 등이 맞지 않아 되지 않았다.…" 안팎에서 '위원장의 거취표명'을 요구했지만 그 긴 발언 중 답은 없었다. 두 위원의 사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운영해왔지만 혹시 부족한 부분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어려울 때일수록 인권위의 독립성과 국민들이 맡겨준 인권위 직무수행이라는 소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말을 마친 현 위원장이 이날 회의 안건을 상정하려 하자 장향숙 상임위원(전 국회의원)이 발언권을 신청했다. 현 위원장은 "그에 대해서는 별도의 안건이 상정되어 있으니…"라며 발언을 제지하려고 했다. 장 위원은 "안건 상정 전에 발언할 권리가 나에겐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발했다. 실랑이 끝에 장 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두 상임위원 사퇴는 인권위 독립성과 합의제 운영이라는 법의 기본과 원칙을 이 안에서 무시하고 위원장의 입맛에 맞게 끌고 가려고 하는 독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치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의 권한 다툼인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것 같다. 무책임한 태도로 이번 사태를 '넘어가면 그만이다. 곧 조용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한다는 것은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현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두 상임위원 사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왜 사퇴하는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나는 현 위원장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인지…."

이어 장주영 위원(변호사)도 신상발언을 했다. "위원장은 인권위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동안 결정된 사안을 보면 권력이나 정권에 부담되는 사안은 철저히 외면해왔다. 민간인 사찰, PD수첩 사건, 야간시위 사건 등이 부결되었다. 인권위가 풍전등화처럼 흔들리고 있는데,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안건을 심의하는 것은 의미없다. 유야무야로 넘어가면 그만이라는 식의 지금 인권위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따라서 안건을 계속 심의하려면 저는 퇴장하려고 한다."

그런데 때마침 밖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소속 노인들이 '인권위가 군대 내 동성애를 인정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전원회의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회의장 문이 떨어져나갔고 경찰이 출동했다. 장향숙, 장주영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현 위원장은 상정된 안건을 보고하라고 직원에게 재촉했다. 방청석에 있던 인권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일어서서 야유를 보냈다. "현 위원장 스스로 용퇴하는 것이 그나마 인권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현 위원장은 사임하십시오." 현 위원장은 "회의 방해하는 사람은 자제하도록 담당자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했다. 인권위 직원들이 제지에 나섰다. 회의장에 난입한 어버이연합 관계자와는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전직 주요 위원 15인 '긴급 의견표명'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날 오전에는 전직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들을 포함해 15명의 전직 상임·비상임 위원들의 '긴급 의견 표명'이 있었다. 이들은 '의견'에서 "현병철 위원장이 사무처의 안건 상정을 사전에 차단하고 상임위원의 권한을 축소하려 했다는 내용과 국가인권기구의 수장이 '독재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며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위원장의 인권의식과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현 위원장은 오늘의 파행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처신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책임있는 처신'이 사임 등을 포함하는 것을 뜻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최영애 전 상임위원은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표현이며, (사퇴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 국회 운영위원회 인권위 국감. 김유정 민주당 위원이 질의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나. 자진사퇴가 마땅하다. 2명 상임위원이 사퇴하고 나서 내부게시판에 오른 직원들의 목소리를 읽어봤나. 직원들은 인권위를 흔들리는 난파선이라고 했다. 두 명 사퇴 이유조차 모른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제 귀를 의심했다." 현 위원장이 답한다. "인권위는 제 생각에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 설전이 이어졌다. -부끄럽지 않나. "떳떳하다." -무슨 말씀이냐. "제 취임 이후 진정이 40% 늘었다.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서 격려하는 사람도 많다." 김 의원이 어이없어 하면서 말한다. "위원장님, 안드로메다에서 오셨어요? 정말로 양심있는 분이면 이 자리에 오지도 말았어야 한다."

이날 국감장에서 현 위원장은 전날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거취 표명을 분명히 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과 설전 와중이다. -사퇴할 의향 없나. "사퇴할 의향 없다." -대한민국 인권이 추락하고 있는데 사퇴 안하나. "외국에서는 굉장히 한국인권위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세계 언론 자유지수가 추락하고 있고, 얼마 전 방한한 프랭크 라뤼 특별보좌관이 우리나라에 와서 상임위원들 면담을 요청했는데 인권위가 거부했다. 위원장이 인권 추락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

8일 다른 일정과 겹쳐 전원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조국 위원(서울대 법대 교수)은 국감 다음날인 10일 새벽, 인권위원 사퇴서를 냈다. 조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현 정부가 촛불 이후에 인권위를 탈환·무력화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이 있었는데, 어제 국정감사로 확인됐다. 인권위를 이렇게 운영하게 되면 나라 전체의 위상이 떨어지고 인권위 자체를 추락시키는 것인데, 이런 행동을 집권 핵심세력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여당과 현 위원장의 지금 상황에 대한 인식은) 마치 좌파들의 발악·음모쯤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빨리 나가지 왜 진작 안 나갔느냐'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뚜렷이 느껴졌다. 다른 국가권력은 이미 점령했는데 너희는 뭐냐는 식이다. 보수정권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말 소탐대실하는 것이다. 계속 존재해야 하는 기구를 저런 식으로 생각하니…."

조국 교수 "인권위 무력화 시도 확인"


10일 오후, 일단의 법학자·변호사들이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직 법학자 124명, 변호사 210명이 참여한 공동선언문을 통해 이들은 "이 모든 문제의 일차적인 책임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있으며, 현 위원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선언 발표에 참여한 서경석 인하대 법학과 교수(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는 "현 위원장이 인권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그 어떤 연구업적이나 논문도 본 적이 없다"며 "행정보직 경험을 두루두루 갖춘 행정전문가라는 평도 있지만, 행정을 잘 했으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겠느냐"고 비판했다.

인권위 독립성 수호를 위한 교수모임 회원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인권위원장을 반드시 인권법을 공부했거나 인권운동을 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며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 얼마나 발언 기회를 주고 공간을 만들어줬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현재 존재하는 법령이나 판례를 집행하라는 것이 인권위에 부여된 책무가 아니라, 앞서나가는 권고를 통해 사회와 국민을 설득하라는 것이 인권위에 부여된 독특한 역할"이라며 "그런 법적 구속력 없는 권고마저도 위원장 취임 이후 식물기구가 되다시피해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인권위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 상실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서 김희정 대변인은 "유남영 상임위원의 후임으로 김혜영 시민과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 공동대표를 임명한다"고 밝혔다. 조치는 신속했다. 유 상임위원의 사퇴를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인사로 교체한 것이다. 김혜영 변호사가 시변 공동대표로 취임한 것은 지난 5월. 그 이후에도 시변은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를 한 조전혁 의원 지지활동 ▲촛불시위로 피해를 본 상인소송 지원 ▲PD수첩의 의도적 왜곡방송으로 인격권과 시청자 권리가 희생되었다는 네티즌 소송 등을 지지해왔다. 한 전직 인권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현병철 문제에 말려들어가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동시에, 지난번 민동석 인사에서 드러났듯 '너희는 짖어라 나는 간다'는 식으로 민주정부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인사"라고 비난했다.

정책권고·의견 성과 멋대로 독차지


궁금한 것은 이런 사태 진행에도 현 위원장이 '인권위는 잘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근거가 과연 뭐냐는 것이다. 「Weekly경향」이 인권위 커버스토리를 다룰 당시, 인권위 측에서 보낸 해명자료를 보면 그 단초가 드러난다. "인권위원회가 설립 이후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총 17건의 정책권고·의견표명을 했는데 그 중 7건(41.2%)이 2009년 7월(현병철 취임) 이후 결정된 건임." (「Weekly경향」 894호 관련 기사 참조)

한 인권위 현직 직원은 "위원장의 아전인수격 인식이 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진정 건수가 늘어났다든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의견표명이 늘어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 후퇴 때문에 일어난 '객관 조건'을 반영한 것이지 현 위원장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의 성과라고 평가받는 양천서 고문사건이나 스포츠선수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퇴한 문경란 상임위원과 사직한 직원 등이 주도했다는 것이 이 현직 관계자가 전한 속사정이다.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사실이 지적되자 현 위원장은 "안건이 상정되기 전에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며 자신의 '지분'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 위원장 쪽이 주장하는 각종 수치의 증가도 앞으로는 담보하기 힘들 것 같다. 한 전 인권위 관계자는 "11월 중순부터 인권위의 각 소위에 참여하는 정책전문위원들도 현 위원장의 독선에 항의해 사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인권위의 주요정책을 생산하는 민간전문 파트너십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현 위원장은 "여전히 잘 되고 있다"고 강변할까.

11월 8일 17차 전원회의는 파행을 거듭하며 40여분 만에 끝났다. 장향숙, 장주영 위원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그동안 '인권위원으로서 자질이 의심된다'고 지적받은 위원들과 현병철 위원장만 남았다. 인권위 직원의 안건보고는 소란 속에 진행되다가 서면으로 대치되었고, 추가로 논의할 사항도 서면으로 하자고 현 인권위원장은 제안했다. 토론은 거의 없었다. "동의하느냐"는 현 위원장의 질문에 위원 중 한 사람이 "동의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날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공식기록이라고 할 회의록에는 이날 벌어진 '사태'의 일부분만 기록된다. 회의록 검토를 통해 발언 내용들이 '마사지'되기 때문이다. 실제 "독재라도 할 수 없다"는 현 위원장의 발언은 공식 회의록에서는 삭제되어 있다. 2010년 11월, 난파한 인권위의 침몰 순간에 대한 기록을 이 지면을 통해 남겨둬야 하는 까닭이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