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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컬럼,글

수천억 해 먹은 물태우보다도 못한 정권? 왜? 거꾸러 가니까!

by skyrider 2011. 1. 27.

편집국에서] 차라리 노태우 정부가 그리운 이유 / 정의길
한겨레
» 정의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
나의 기자생활은 노태우 정부와 함께 시작됐다. 보수세력으로부터는 유약한 정권이라고, 민주화 진영으로부터는 군사독재의 잔재 정권이라고, 어느 쪽에서도 평가를 못 받는 정권이다. 수장인 노태우 전 대통령도 수천억원의 뇌물을 챙긴데다, 5·17 군사반란으로 단죄를 받았듯이 그 정권은 일단 공식 평가를 마친 셈이다.

당시 사회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참 모자랐다. 검사들의 인사발령이 나던 날 검찰청에 갔더니, 변호사들이 발령이 난 검사들에게 전별금을 돌리고 있었다. 기자인 내가 버젓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변호사와 검사들은 당당히 전별금을 주고받았고, 기자인 나도 별생각 없이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한 동료 기자는 신임 경제부처 장관의 방에 들어갔다가 책상 서랍에 가득한 봉투들을 우연히 목격한 사건을 전해줬다. 동료가 웬 봉투냐고 묻자, 그 장관은 “새로 취임하니 은행장들이 봉투 하나씩 들고 오더라”고 별거 아닌 듯이 말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신임 장관에게 주는 은행장들의 봉투 협정가는 1000만원이었다고 한다. 은행이 통폐합됐던 외환위기 전이라 그때 시중은행은 20개가 넘었다. 신임 장관은 당시 고급아파트 값을 넘는 2억~3억원을 단숨에 챙긴 것이다.

그런 시절의 정권이었지만, 요즘 그 정부를 다시 평가하게 된다. 지내놓고 보니, 아니 이명박 정부의 치하에 있다 보니 그렇게 됐다. 노태우 정부는 적어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6월 민주화항쟁과 여소야대라는 정치환경에 의해 떠밀렸다 해도, 우리 사회의 앞선 역사에서 도출됐던 시대적 과제를 나름대로 수행했다.

야당에 떠밀렸고 내부 권력투쟁의 성격이 있었지만, 5공청문회와 광주청문회를 선선히 수용해 전두환·정호용 등 5공 인물들을 청산한 것도 결과적으로 민주화 과정을 순항시킨 것이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 등 당시 집권층도 가담했던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재평가한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인데도 수용했다. 위헌으로 판결났지만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를 도입해 경제분야에서 힘센 자와 가진 자들을 규제하려고 시도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특히 남북관계나 외교에서 그랬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화해의 최대 산물인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말해준다. 노태우 정부가 남북관계 회복에 적극 나선 것은 당시 4대 강국의 남북한 교차승인, 남한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소련과의 수교 때문이었다. 어쨌든 시대의 흐름을 읽었고, 능동적으로 나서 중·소와의 수교를 발빠르게 이뤘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남북관계 회복으로 미국과 일본의 북한 승인도 눈앞에 두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으나, 미·일의 내부 정권 문제와 북한의 핵문제 등으로 불발에 그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당시 남북관계 회복 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위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남북대결적 시각을 가진 진영에서 봐도, 큰 이득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남북관계 회복과 북방외교 추진에 보수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민병돈 당시 육사 교장이 졸업식에서 대통령을 앞에 놓고 ‘주적이 분간이 안 간다’고 북방외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항명까지 했다. 지금 보면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물태우’라고 비아냥을 받으면서 노태우 정부가 그런 정책들을 추진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당시 당국자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피를 뿌리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적어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시늉은 했다. 노태우 정부 이래 남북화해, 경제정의, 환경보호 등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대결, 중국과의 관계 악화, 부자감세, 콘크리트 개발 등 온통 과거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구제역이 창궐하고 물가가 치솟는데, 청와대는 삼호주얼리호 인질 구출작전 성공 소식을 대통령이 발표하도록 기자들의 1보를 막으려고나 했다. 노태우 정부를 내가 다시 평가하게 된 것을 이명박과 그 측근들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