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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잘 돌아가나?

그래! 세금 잘 낼테니 제대로 만 써다오, 4대강? 이런 거 하지말고...

by skyrider 2011. 4. 7.

우리 세금 제대로 써주시오 ‘세금혁명당’ 떴다
선대인씨 책 ‘세금혁명’ 에 공감 일주일만에 2650명 참여
“납세 거부 아니다…꼭 필요한 곳에 잘 써달라는 요구”
실제 정당 조직은 아닌 ‘풀뿌리 시민모임’의 형태
하니Only 허재현 기자기자블로그
 1848년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부르주아 계급에 수탈당한 노동자들은 한동안 ‘노동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위대한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공산당을 만들었다.

 2011년 또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세금혁명’이라는 유령이. 세금을 내고도 정당한 복지를 누리지 못하는 납세자들은 ‘조세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세금혁명당’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 4월6일 저녁 7시30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건물. 이 건물에 자리한 100평 남짓한 강당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강당 입구에는 ‘세금혁명당 준비모임’이라고 적힌 종이가 나붙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빼꼼히 문을 열고 강당 안쪽으로 슬글슬금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8시가 되자 50여 좌석이 가득 찼다. 선대인(40) 김광수 경제연구소 부소장이 청중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보십시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의 멎쩍은 웃음소리만 조금씩 들릴 뿐이었다. 이어서 선씨가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입니다.”

  분노한 납세자들이 세금혁명당(가칭)의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당원이 되겠다는 이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달 29일 새벽 선대인 부소장이 트위터 상에서 “‘페이스북’(사회 관계망 기능을 가진 누리집)에서 ‘세금혁명당’을 개설하자”고 제안하자 불과 8시간만에 누리꾼 800명이 모여들었다.(http://www.facebook.com/taxre) 문용식 아프리카 대표,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를 포함해 ‘성실 납세자’들 2650여명이 7일까지 ‘당원’으로 모였다.

  선 부소장은 국민들이 낸 세금을 정부가 어떻게 낭비하고 있는지를 폭로한 책 ‘프리라이더’(2010.12)와 직장인들만 손해보는 우리 나라 조세제도에 대해 기술한 ‘세금혁명’(2011.3)의 저자다. 잇달아 나온 이 두권의 책은 직장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뒷 목 잡고 쓰러질 뻔한” 몇몇 독자들이 선 부소장에게 “책만 쓰지 말고 모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선 부소장은 하루도 안돼 행동에 옮겼다. ‘세금혁명당’의 출범 배경이다.


  선 부소장의 책을 읽고 분노한 납세자들은 선 부소장의 ‘모이자’는 외침에 즉각 화답했다. 6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세금혁명당의 첫 모임에는 20대 이상의 납세자 50여명이 참석했다. 퇴근길에 트위터를 통해 모임소식을 접하고 발길을 돌려 찾아온 사업가 김아무개씨(49)씨도 있었다. 김씨는 선씨가 펴낸 책을 읽고 ‘공산당 선언’ 못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1930년대까지 스웨덴 노동자들은 이웃 나라를 떠돌아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어요. 복지국가로 발돋움을 시작한 게 1950년대부터입니다. 걷은 세금을 국가가 복지정책에 쓰기시작하면서부터예요. 복지국가는 강대국이 되고나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걷은 세금을 국민 복지를 위해 적절히 쓰기시작하는 게 복지국가의 첫 걸음입니다. 세금혁명당이 우리나라를 스웨덴처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 모인 이들은 ‘납세 거부’를 결의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세금 잘 낼테니 꼭 필요한 곳에 잘 써달라’는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고 싶어했다.

  “세금을 내기 싫어 모인 게 아닙니다. 선진국처럼 복지를 하려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합니다. 하지만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잘 써야 합니다. 국공립대에 재학 중인 26만명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14년간 면제해줄 수 있는 돈 22조원을 4대강 사업에만 쏟아붓고 있습니다. 세금을 이렇게 쓰면 안됩니다.”

  4살 짜리 아이의 아버지 민신태(37)씨의 견해다. 우리나라에서 복지란 민씨의 눈에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민씨처럼 정부가 세금을 쓰는 방식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선 부소장은 서민들에게만 ‘가렴주구’의 모습을 띄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며 “지금 당장 조세제도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4조5000억원이라는 비자금을 조성하고도 상속세 과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 한푼의 상속세도 안냅니다. 주택을 거래하는 사람들의 95%가 세금을 안냅니다. 3억짜리 집을 9억에 내다 팔아도 세금 한 푼 안냅니다. 주식으로 대박을 터뜨려서 수억원을 벌어도 세금을 안냅니다. 이것을 성실한 납세자들이 납득할 수 있습니까.”

  선 부소장은 “정부가 토건 정책에만 매달려 건설 재벌들의 배만 불리고 복지에는 제대로 돈을 쓰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50여명의 ‘혁명 당원’들은 그의 이야기를 숨죽이고 경청했다.

  “저출산 고령화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생산경제는 위축되고 복지비용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뭔가 대비 재원을 마련해야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토건 정책에만 신경 쓰느라 공공부채만 450조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 개혁은 나라살림의 틀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날 모임은 3시간을 넘긴 열띤 토론 끝에 밤 11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모임을 끝내고 귀가하는 ‘혁명 당원’들에게 물어봤다. “‘세금 개혁’으로는 안되는 거냐. 꼭 혁명까지 해야 할 수준이냐.”

  김태동 교수(성균관대 경제학부)는 “수십년간 많은 납세자들이 잘못된 조세제도에 익숙해져있다. 기득권 세력의 힘이 그만큼 견고했기 때문에 제도를 고치지 못한 것이다. 개혁의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세금혁명당’은 이름처럼 실제 정당조직은 아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선 부소장이 제안한 ‘풀뿌리 시민모임’의 형태로 조직을 성장시키기로 했다. 선 부소장은 “미국의 ‘무브온’(move on)과 ‘티 파티’(Tea Party) 같은 형태의 모임으로 성장해 내년 대선에서 후보자들에게 ‘탈토건 친생활’ 조세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게 하자”고 제안했다. ‘세금혁명당’은 연말까지 적게는 10만명의 당원, 내년 대선 이전까지 50만명의 당원을 모집하기로 했다.

  “저는 호소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조세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재정 구조개혁을 위한 한 그루 나무를 각자의 생활 영역 속에서 심어 가자고. 저는 지금 우리의 결의와 행동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중략) 지금처럼 반칙의 제왕들인 특권층 프리 라이더들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세금을 쓰도록 놔둘 것이냐, 아니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희망찬 미래를 만드는 데 쓸 것이야 결정할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세금혁명’ 서문 중에서. 선대인. 2011)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