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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잘 돌아가나?

7만원 월세 사는 화물차주 내는 한달 세금이 은마아파트 1년보유세와 같다?

by skyrider 2011. 4. 11.

월세7만원 사는 화물차주 한달 세금 190만원
은마아파트 1년 보유세와 같아..."화 치민다"
[세금혁명⑤] 23년차 운전자 김재봉씨 "추워도 히터 안튼다"
11.04.11 09:32 ㅣ최종 업데이트 11.04.11 09:49 선대식 (sundaisik)

날로 커져만 가는 나라 빚에, 시민들의 삶의 질은 뒷걸음질입니다. 20조원이 넘는 4대강 사업에, 대통령 형님과 부인 예산까지. 지방 자치단체 역시 이런저런 건설사업으로 빚더미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세금혁명'을 외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12회에 걸쳐 우리 주변 곳곳서 벌어지는 세금낭비 실태와 현장을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 편집자 말
  
4일 오후 경기 양주시의 한 도로에서 김재봉씨가 짐을 싣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화물차 안에서 운행 기록 등을 살펴보고 있다.
ⓒ 선대식
화물노동자

김재봉(50)씨는 23년 동안 화물차를 운전했지만, 내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김씨 부부와 두 자녀의 보금자리는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있는 월세 7만 원(보증금 2500만 원)짜리 낡은 집이다. 김씨는 "20평(66㎡)인데, 재개발 지역이라 싸게 얻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가장 큰 재산은 1억2800만 원(할부이자 포함)짜리 25톤 벤츠 화물차다. 할부금은 반쯤 남았다. 그에게 "화물차가 아니라, 아파트를 샀으면 돈을 더 벌었겠다"고 하자 "차 운전밖에 할 줄 모르니, 먹고 살려고 화물차를 샀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 치솟은 기름 값 얘기를 꺼내자, 김씨의 억양은 거세졌다.

 

지난 2005년 분신해 목숨을 끊은 동료 김동윤씨의 이름을 꺼내며 "그때와 지금이나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기름 값이 폭등한 상황에서 유류세를 내려달라고 해도 꼼짝하지 않는데, '부동산 부자' 세금은 알아서 다 깎아주는 모습에 화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후부터 김씨와 17시간 동안 함께했다. 경기 동두천·양주시에 화물을 싣고 부산항으로 내려가는 여정이었다. 그 시간 동안 김씨가 땅을 밟은 건 1시간이었고, 눈을 붙인 건 2시간에 불과했다.

 

냉기 가득한 화물차 안... "기름 값 아껴야죠"

 

이날 오후 동두천지방산업단지에서 김씨의 화물차에 올랐을 때, 차는 이미 536km를 달린 터였다. 새벽 1시 부산항에서 화물을 싣고 오전 9시 서울 김포공항에 화물을 내린 뒤, 다시 화물을 싣기 위해 오후 2시 이곳까지 왔다. 차 안에서 쪽잠을 자려해도 쉽지 않다. 계속 울려대는 전화 때문이다.

 

김씨는 "잠을 못자는 것보다 힘든 것은 '무한 대기'"라고 했다.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적재 준비를 마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식사라도 하라"는 말 한 마디 듣기 힘들다. 돈을 더 얹어주는 것도 없다. 그는 "외딴 도시에서 차량 안에서 홀로 기한 없이 기다려야할 때, 나 스스로가 처량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김씨의 화물차는 자정이 넘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기 시간만 10시간이 넘었다. 오후에는 산책도 했지만, 밤이 되자 꼼짝 없이 차 안에 갇혔다. 적막한 시골길에 서 있는 차량 주변은 깜깜했다. 동두천의 밤은 추웠다. 곧 차량 안에서도 냉기가 느껴졌다. 김씨에게 "춥지 않느냐"고 물었다.

 

"기름값 아껴야죠. 히터 틀려면 시동 걸어야 하잖아요. 기름 값이 얼만데…. 전력 변환기가 있으면, 시동 안 걸고 배터리에 전기난로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근데 가격이 40만 원이나 해요. 3년 뒤 차 할부 끝나고 살 생각입니다."

 

차량에 부착된 운행기록계를 살폈다. 4일 하루 동안 155리터(ℓ)의 경유를 소비했다고 기록됐다. 이날 오전 리터당 1799원에 경유를 넣었으니, 기름 값만 28만4297원이다. 그의 통장에는 보름 뒤 부산-서울 간 운송료 44만 원이 입금된다. 이날 운송료가 적은 구간에다가 화물이 무거워 기름이 많이 소모됐다. 그렇지 않은 때도 기름 값은 매출의 절반 이상이다.

 

김씨는 "지난 1991년 330원이던 경유 가격은 20년 동안 5배 이상 올랐고, 밥 값도 몇 배로 올랐다"며 "그런데도 운송료는 그대로다, 최대한 아껴야 한다"고 전했다.

 

화물운전자 한 달 세금 190만 원, 은마아파트 1년치 보유세와 같아

 

  
5일 오전 부산 남구 우암동 우암(UTC)부두에서 대형 지게차(리치 스태커)가 김재봉씨의 화물차에 있는 컨테이너를 야적장에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선대식
컨테이너 하차

 

김씨의 화물차는 5일 새벽 2시를 넘어서야 부산항으로 향했다. 기자는 피곤함에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보다 못한 김씨가 기자를 운전석 뒷좌석에 눕게 했다. 김씨와 기자는 충주 휴게소에서 2시간 휴식을 취했다. 어스름 속 여명이 밝자, 화물차엔 다시 시동이 걸렸다.

 

그는 2005년 9월 분신해 목숨을 끊은 동료 김동윤씨 얘기를 꺼냈다. 화물차 운전자는 기름 값을 제외한 매출의 10%를 1년에 2~4번으로 나눠 부가가치세라는 이름으로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고인은 부가세를 낼 돈을 벌지 못했다. 2002~2005년 밀린 부가세만 1300만여 원이었다.

 

관할 세무서는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유가환급금 420만 원을 압류했다. 결국 그는 며칠 뒤 부산 신선대부두 정문에서 몸에 불을 붙였고 사흘 뒤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세금 낼 돈도 없는 사람한테 세금을 내라고 했다, 서민 피 빨아먹는 이 나라는 잘못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3월 운행 일지를 기자에게 건넸다. 살펴보니, 부산-서울을 12번 왕복해 1214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3627리터 654만 원어치의 경유를 사용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경유 가격의 38%는 세금이다. 리터당 340원의 유가환급금을 제외하고, 김씨가 부담한 유류세는 125만 원이다.

 

여기에 기름 값을 제외한 나머지 매출(560만 원)의 부가세 56만 원과 이달 낸 15만5000원의 자동차세를 더하면, 김씨가 3월 부담한 세금만 196만5000원이다. 김씨는 "매달 189만 원의 할부금, 보험료, 식대, 차량 유지비, 톨게이트비, 알선료 등을 내고 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청에 따르면, 9억 원대에 거래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7㎡(30평)형의 재산세는 1년에 190만 원가량 된다. 공시가격이 7억 원대라는 이유로 종합부동산세는 안 내도 된다. 결국, 김씨가 한 달 동안 낸 세금은 은마아파트 1년 보유세와 비슷한 셈이다.

 

"우리 세금은 꼬박꼬박 걷어가면서, 부동산 투기자 세금은 다 깎아준다"

 

오전 10시 김씨의 화물차는 부산 시내에 진입했다. 고층 아파트 너머로 부산항이 보였다. 그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미분양이 그렇게 많다는데, 우리 가족이 들어갈 집은 없다"며 "화물운전자한테는 세금을 꼬박꼬박 걷어가면서,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들의 세금 다 깎아주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5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신용카드 빚 1000만 원이 남았다, 차 할부를 다 갚아도 차의 감각상각이 진행되고 연비가 나빠지기 때문에 크게 남는 것은 없다"며 "만약 아파트를 샀다면, 큰 돈을 벌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김씨는 한 시간 뒤 부산항 우암(UTC)부두에 컨테이너 박스를 내려놓았다. 그는 곧 월세 7만 원짜리 집으로 향했다. 이날 밤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해 잠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