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때 한미 FTA 협상을 책임졌던 김종훈 당시 수석대표(현 통상교섭본부장)가 개성공단 문제를 협상 초기에 다루라는 청와대의 훈령을 어기고 협상의 마지막으로 미룬 사실이 드러났다. 또 당시 조태용 북미국장(현 주호주 대사)은 이같은 김 대표의 생각을 미 관리에게 유출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2006년 6월 14일자 주한 미 대사관 외교전문에 따르면, 조태용 당시 북미국장은 그 며칠 전인 11일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현 주한 미대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스티븐스 부차관보가 "한미 FTA 협상에 개성공단을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가 또 하나의 관심사"라고 하자, 조 국장은 김종훈 대표가 "정치적인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겨두겠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외교전문에 따르면, 김종훈 대표는 청와대로부터 개성공단을 협상의 초기 제안에 포함시키라는 강한(firm) 훈령을 받았으나 그는 이 문제를 협상의 초기나 중기에 다루지 않으려고 했다고 조 국장은 말했다.
이 전문이 사실이라면, 김종훈 대표는 청와대로부터의 훈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협상을 한 것이 되며, 조태용 국장은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중요한 정보를 상대국 관리에게 알려준게 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당초 참여정부가 한미FTA를 하겠다고 한 가장 큰 명분 중의 하나가 '개성공단 상품의 미국 수출'이었기 때문에 개성공단 문제는 맨 앞순위에 다루라고 훈령을 보낸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협상 대표라는 사람이 맘대로 협상의 우선순위를 바꾼 것은 재량권을 일탈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 결과 오늘날까지 개성공단 상품의 미국 수출길이 막혀있다"고 개탄했다.
이 교수는 또 "협상의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것은 우리 측의 협상 비밀과 전략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으로 조 국장의 처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국장과 스티븐스 부차관보의 대화가 이뤄진 2006년 6월 11일은 워싱턴에서 한미FTA협상 1차 공식협상이 열린 6월 5~9일 직후이며 7월 10일~14일 서울에서의 제2차 협상을 앞두고 있었다.
박주선 의원실 "위키리크스 청문회 열어야"
한편, 박주선 민주당 의원(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이 위키리크스 청문회 개최를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의원은 9일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등 한국의 통상협상 책임자 및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밝혀진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 대로라면, 지금 대한민국 외교는 중대한 위기상태"라며 "기밀을 유출하고 국민을 기망한 고위관료를 문책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 김종훈 수석대표의 한미FTA 개성공단 훈령 위반과 함께 ▲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밀약 ▲ 대선 전 BBK 김경준 송환 연기하면 이라크 파병 확대하겠다는 약속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미국위해 죽도록 싸웠다' 발언 ▲ 역시 김현종 본부장이 의약품 가격 적정화 방안 입법예고 절차가 청와대 회의에서 토론됐다는 내용을 유출한 것 등을 대표적인 '국익포기외교'로 꼽았다.
한편,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위키리크스가 다량의 문서를 유출하고, 그것을 공개한 것은 기본적으로 무책임하고 부적절하다"며 "불법적으로 유출-공개된 문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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