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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대 교체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수십 년간 성장제일주의를 대표한 과거의 정치인이고 이미 유통기간이 끝났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지난 9일 오후 서울 합정동 ‘정치바로’ 사무실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등판론’을 가시화하면서 위기상황을 돌파하려 하지만, 심상정 대표는 생각이 달랐다.

심상정 대표는 “한나라당이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를 대표하는 대선주자의 책임도 국민이 주목할 것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표는 복지를 주장하지만 한미FTA 비준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왔고 성장제일주의로 대표되는 그런 과거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대표는 담담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박근혜 정치’에 대해 진단했다. 심상정 대표는 여러 면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여전히 남성중심인 한국정치 무대에서 주목받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삶의 과정과 지향점은 너무나 달랐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로서 권력의 정점을 경험하던 1978년, 심상정 대표는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했다. 교육자가 되겠다는 꿈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대학 입학 후 심상정 대표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CBS노컷뉴스

 

구로공단에서 야학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의 열악한 삶과 노동현장의 참담한 현실을 깨닫게 됐고 당시 경험은 그가 평생을 노동운동에 몸담게 한 계기가 됐다.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의 주동자로 구속되면서 9년에 걸친 수배자의 삶을 살았다.

 

수배자 삶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서울노동운동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등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을 이어갔고, 민주금속연맹 금속산업연맹 전국금속노조 등 노동운동의 메카였던 금속노조를 이끄는 주요 인사가 됐다.

박근혜 전 대표가 육영재단 이사장 역할을 하던 1980년대, 심상정 대표는 노동운동의 한복판에서 독재정권과 맞섰다. 2004년 17대 총선 때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이끌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원내 입성한 인물이 바로 심상정 대표이다. 

심상정 대표는 ‘정치의 변화’, 그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와 평화 생태라는 진보적 가치가 재조명되는 시대라는 얘기다. 심상정 대표에게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진보신당 대표를 역임한 지 3년 만에 정당대표로 돌아왔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진보 선명성에 방점을 찍은 정치행보를 이어왔다면 이제는 진보정치가 실질적인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는데 중심을 둔 정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을 떠나 2008년 진보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2011년 진보신당을 떠나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그의 선택은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는 자신이 대표를 맡던 진보신당을 나왔다.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걸었던 국민참여당, 과거 국회의원을 지냈던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정치인 심상정의 선택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간판 정치인이었던 심상정 대표는 2010년 6월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가 선거 막판 후보직에서 물러난 경험이 있다. 지방선거의 후보직 사퇴는 ‘심상정 정치’의 터닝 포인트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대표. ©심상정 대표 제공

 

범야권 단일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한 결정으로 국민들은 그의 선택을 평가했지만,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심상정 대표는 “흩어진 진보세력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부터 시대적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했다. 통합해서 대중적 진보정당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문제인식 속에서 지방선거 후보를 사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서 “진보정치 의제인 더 많은 노동자 서민을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겠느냐하는 고뇌와 성찰의 과정이었다”면서 “진보적인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대중적인 힘을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대중적인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몸부림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심상정 대표는 “진보가 이념적 순수성을 고집하고 독자로 갈 것이냐, 진보의 비전과 집권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 진보 중심으로 하면서 다원적 틀을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고민의 지점을 전했다.

심상정 대표는 ‘진보신당’의 역할도 존중하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명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도 존중한다. 그러나 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다. 저는 제도권 내에서 진보를 실현하는, 정치적 희망을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은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이정희 강기갑 권영길 유시민 등 스타급 간판정치인을 보유한 정당이 됐지만, 그것만으로 정치 변화를 이끌 중심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상정 대표는 “진보적 가치나 프로그램, 정책은 더욱 더 단단하게 벼려나가야 한다. 편협하고 낡고 칙칙한 관행들은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입장에서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은 중요한 시험대다.

심상정 대표는 “최소한의 목표는 원내 20석 이상의 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진보적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정당 지지율은 최소한 15%에서 20%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2030 세대와 여성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이 총선 전략에서 가장 중요하다. 전국대학 투어 콘서트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고 좋은 정책과 깨끗하고 유능한 인물을 발굴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대표. ©심상정 대표 제공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상정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을 소통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분노와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다. 그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소통 공간으로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나꼼수 열풍’을 진단했다.

 

그는 ‘떨거지 특집’에 초대돼 <나는 꼼수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진보정당 간판급 정치인이 ‘떨거지’라는 타이틀의 특집에 초대된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

그는 “떨거지 특집에 나오라고 했을 때 야속한 생각보다는 굉장히 위로가 됐다. 떨거지라는 말에는 지난 번 총선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원외에 있음으로써 책임이 크다는 추궁이라고 보고 앞으로의 총선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격려와 주문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심상정 대표는 통합진보당 대표로서 19대 총선을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됐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는 합당했고, 민주당과 혁신과통합 등이 만들 통합 정당과는 협력적 경쟁관계를 맺게 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연대에 유연한 입장이다. 민주당과의 합당은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만 한나라당 정권재창출을 막고자 대선 과정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심상정 대표도 “서로 힘을 합쳐서 정권 교체하는 것이 국민의 절대적 중론”이라고 말했다.

진보정당의 핵심 인사들이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힘들 민주당과의 대선연대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이명박 시대’에 대한 깊은 우려 때문이다. 심상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국민을 너무 괴롭히고 국가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 대한민국과는 악연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에 한미FTA 비준을 강행한 것을 보면서 멕시코에서 나프타가 발효될 때 미국으로 쫓겨 갈 수밖에 없는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이 생각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재임 기간에 했던 일에 대한 책임을 두고두고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