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이런거 왜 하려는지…고역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2.05.27 01:43 / 수정 2012.05.27 08:11“한양도성 복원해 8조원 부가가치 창출하겠다”
취임 7개월 맞은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박원순 서울시장. 그는 1980년 사법시험 합격 뒤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느닷없이(?) 출사표를 던지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가 몸 담은 참여연대와 본인 주도로 만든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는 시민운동의 한 획을 긋는 단체들이었다. 그는 또 영국·독일·일본 등 해외 각국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가치 사전 등 10여 권의 책을 썼다. 그에겐 ‘진보적 실용주의’ 또는 ‘실용적 진보주의’라는 수식어가 어울릴지 모른다. 그는 7개월간 서울시장으로 일한 경험을 묻자 “사람들이 왜 이런 거 하려나 싶다. 고역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심 끝에 좋은 정책을 발표할 때 참 기분이 좋다”고 강조했다. 중앙SUNDAY가 26일 오후 한 시간가량 박 시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박원순 시정’의 브랜드는 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버넌스(Governa nce·공공경영)’다. 협치(協治), 시민중심. ‘시민이 시장입니다’와 마찬가지다. 정책 입안가 몇 명이 책상머리에서 결정하고 시행하면 현실 타당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 반발을 사거나 실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한 변화가 있다고 본다. 내 트위터를 지금 50만 명쯤 팔로(follow)하는데 실시간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다 볼 수 있다. 여기 가만히 앉아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서울시의 문제가 뭔지, 어디에 어려움이 있는지 다 포괄할 수 있다.”
-트위터를 주로 언제 이용하나.
“차로 이동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이 날 때 한다. 요즘엔 밤에 주로 한다. 예전에는 행사를 중계방송하다시피 했는데 지금 그렇게 하면 공무원들이 죽어난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한다.”
-시정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갈등사안은 좀 힘들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부분은 원만하게 처리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뉴타운이나 재개발 분야는 사실 전임 시장님들이 시작했던 부분인데 현재 1300곳 넘는 뉴타운 지정구역이 있다. 한마디로 서울이 아수라장이었다. 용산 참사도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10년은 가야 제대로 정리될 것 같다. 취임 후 ‘갈등조정담당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해 예산안을 짤 때부터 갈등이 예상되면 그걸 해당 부서와 조정해가고 있다.”
-서울시 부채가 25조원에 이른다. 선거 공약으로 부채 7조원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가능한가.
“쉽지 않다. 공약 가운데 복지예산을 30% 늘리겠다고도 했고 임대주택 8만 호를 공급한다고 했는데 양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격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부터 모든 걸 20% 감축했다. 업무추진비와 시장실을 줄이고 차량도 연비가 높은 카니발로 바꿨다. 가장 큰 건 SH공사의 부채 15조원인데 이게 쉽지 않다. 보유 부동산이 많은데 그걸 싹 처분해 버리면 부채는 줄겠지만 공공의 목적을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요하거나 신중한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부채를 줄이기 위해 계획을 잡고 있다.”
-최근 버스파업 위기를 해결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대중교통 지원을 위해 연 1조원을 쓰고 있다. 근본 대책은 요금 인상 아닌가.
“지난번에 150원 올렸는데 사실 350원을 올려야 정상화된다. 그렇지만 시장이라는 자리가 정치적 자리 아닌가. 어쨌든 시민에게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중교통요금이 아직 외국보다 싼 편이어서 더 올릴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유럽 재정위기를 과도한 복지정책 탓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무상복지를 확대하면 정부 재정이 약화될 수밖에 없지 않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경제력은 10위권인데 복지는 하위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와 전환의 문턱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질 수준을 높이는 게 창조적 경제혁신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거다. 대기업과 달리 우리 중소기업들은 또 하나의 턱을 넘어서야 한다. 그게 디자인이거나 지식 같은 거다. 복지가 낭비인 것 같지만 교육·보육 투자를 통해 새롭게 도약할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육에 연 8000억원쯤 쓰면 국공립 보육원이 늘어나서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사회적 일자리들도 계속 생겨날 거다.”
-동아시아 대도시들과 비교할 때 서울의 차별화 포인트는.
“서울의 장점은 세 가지다. 자연, 역사, 사람이다. 자연에 대해서 서울은 랜드마크가 따로 필요 없다. 북한산 등 많은 산이 있고 한강 같은 큰 강도 있다. 세계 웬만한 도시들을 가봤는데 이런 아름다운 자연은 없다. 그걸 잘 살리면 외국 사람들이 다 놀란다. 역사도 궁궐을 가봐야 한국의 역사가 살아있는 줄 아는데 그런 걸 다 훼손시키지 않았나. 이번에 한양도성을 복원하려고 한다. 한양도성 박물관, 연구소, 사업단을 만들기로 했다. 돈도 80억원밖에 안 들어간다. 이런 사업은 8조원 정도의 부가가치를 금방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과 청년 창업, 디자인 등을 잘 결합하면 서울이 도쿄·싱가포르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대선 출마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도울 건지 생각해 봤나.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건 없다. 만약 출마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울 거다. 돕는 방식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는 것 같다. 내가 자유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서울시장으로서 일을 잘한다고 소문나면 그게 최고로 안 교수에게 도움 주는 것 아니겠나. 취임 후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봤다. 만나본 지가 3~4개월 넘었다. 당시엔 본인이 결심 안 한 상태였고, 그런 거 갖고 상의할 분도 아니다.”
-안 교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더욱이 정말 큰 직책을 꿈꾼다는 것은 개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결단해야겠지만 역사와 시대와 하느님이 이끌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소명(召命)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오면 하는 것이고, 안 오면 못 하는 것이다. 안 교수가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의 인기가 있으면 출마선언을 할 만하지 않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본인이 과연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닐까.”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정운찬 두 분과 함께 박 시장도 다크호스로 손꼽혔다. 그때 박 시장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희망제작소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소명의식이 없어서였나.
“그때는 시민운동가로서 평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확고했고, 내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26 보궐선거 때까지 어마어마한 요청들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바꾸게 된 건 ‘계속 거절하는 것은 역사에 대해 죄를 짓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면 4~5년 뒤에,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새로운 소명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석해도 되나.
“그거야 그때 가봐야 아는 거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다음 일이 저절로 마련된다. 그걸 게을리하면서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4·11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때문에 논란이 거세다. 진보가 가야 할 길, 지켜야 할 원칙은 뭔가.
“보수든 진보든 상식·합리·기본·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전반적으로 위협받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한 이유는 그런 기본이나 원칙·철학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아서다. 통진당에서 민주주의 기본 룰인 투표에서의 부정이 있었던 것은 용납하기 힘든 거라고 본다. 또 국회의원 특권이 200가지가 된다고 어느 신문이 썼던데 중요한 일을 하는 분들이니 그런 특권을 드리는 건 좋은데 그렇게 하면 그분들이 시민들의 삶을 잘 모를 거 같다. 생활정치로 되돌아오는 게 필요하다. 독일 연방의원 중엔 자전거 타고 다니는 이도 많다.”
-서울시장으로서 지키려는 인사 원칙은.
“공정인사·소통인사·책임인사·감동인사·공감인사·성장인사의 6대 원칙을 만들었다. 공정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울시 공무원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산하기관들을 보면 (전임 시장 때 임명된 사람들이) 아직도 안 물러나고 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다. 숫자는 안 헤아려 보았는데 산하기관 이사 가운데 아직도 다수인 곳이 있어서 힘들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임기를 지켜주는 것도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그렇게 (쫓아내지는) 않겠다. 가장 실력 있는 사람, 그 분야에 최고로 잘하는 사람 모셔놓으면 내가 그 분야를 걱정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평소 생각하는 롤모델은 누군가.
“멀리 보면 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경우는 개혁주의자면서 실용주의자다. 잡지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들었던 한창기 사장도 롤모델이다. 그분은 잡지를 만들다 ‘점 하나 잘못 찍어도 총살한다’는 분이다. 고문변호사를 3년간 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다. 또 판단력과 통찰력 이런 것은 고 조영래 변호사한테 참 많이 배웠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버스를 기다리기만 하다 영원히 버스가 안 오면 목적지에 도착 못한다. 지금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점진적이지만 단호한 통일정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참여연대 할 때 통일부 장관에 우파 인사인 강인덕씨를 임명했는데 나중에야 잘한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기 뒤 시민들이 ‘박원순 시장은 OOOO이었다’라고 기억해줬으면 하는 말은.
“‘동행자’ 내지는 ‘위로해 주는 사람’ ‘우리와 함께 간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다. 일본 부부들이 서로를 ‘쓰레아이(連れ合い·동행자)’라고 부른다. 동행, 동반이라는 말이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이양수 기자 yaslee@joongang.co.kr
정리=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박원순 시정’의 브랜드는 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버넌스(Governa nce·공공경영)’다. 협치(協治), 시민중심. ‘시민이 시장입니다’와 마찬가지다. 정책 입안가 몇 명이 책상머리에서 결정하고 시행하면 현실 타당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 반발을 사거나 실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한 변화가 있다고 본다. 내 트위터를 지금 50만 명쯤 팔로(follow)하는데 실시간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다 볼 수 있다. 여기 가만히 앉아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서울시의 문제가 뭔지, 어디에 어려움이 있는지 다 포괄할 수 있다.”
-트위터를 주로 언제 이용하나.
“차로 이동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이 날 때 한다. 요즘엔 밤에 주로 한다. 예전에는 행사를 중계방송하다시피 했는데 지금 그렇게 하면 공무원들이 죽어난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한다.”
-시정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갈등사안은 좀 힘들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부분은 원만하게 처리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뉴타운이나 재개발 분야는 사실 전임 시장님들이 시작했던 부분인데 현재 1300곳 넘는 뉴타운 지정구역이 있다. 한마디로 서울이 아수라장이었다. 용산 참사도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10년은 가야 제대로 정리될 것 같다. 취임 후 ‘갈등조정담당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해 예산안을 짤 때부터 갈등이 예상되면 그걸 해당 부서와 조정해가고 있다.”
-서울시 부채가 25조원에 이른다. 선거 공약으로 부채 7조원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가능한가.
“쉽지 않다. 공약 가운데 복지예산을 30% 늘리겠다고도 했고 임대주택 8만 호를 공급한다고 했는데 양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격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부터 모든 걸 20% 감축했다. 업무추진비와 시장실을 줄이고 차량도 연비가 높은 카니발로 바꿨다. 가장 큰 건 SH공사의 부채 15조원인데 이게 쉽지 않다. 보유 부동산이 많은데 그걸 싹 처분해 버리면 부채는 줄겠지만 공공의 목적을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요하거나 신중한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부채를 줄이기 위해 계획을 잡고 있다.”
-최근 버스파업 위기를 해결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대중교통 지원을 위해 연 1조원을 쓰고 있다. 근본 대책은 요금 인상 아닌가.
“지난번에 150원 올렸는데 사실 350원을 올려야 정상화된다. 그렇지만 시장이라는 자리가 정치적 자리 아닌가. 어쨌든 시민에게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중교통요금이 아직 외국보다 싼 편이어서 더 올릴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유럽 재정위기를 과도한 복지정책 탓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무상복지를 확대하면 정부 재정이 약화될 수밖에 없지 않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경제력은 10위권인데 복지는 하위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와 전환의 문턱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질 수준을 높이는 게 창조적 경제혁신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거다. 대기업과 달리 우리 중소기업들은 또 하나의 턱을 넘어서야 한다. 그게 디자인이거나 지식 같은 거다. 복지가 낭비인 것 같지만 교육·보육 투자를 통해 새롭게 도약할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육에 연 8000억원쯤 쓰면 국공립 보육원이 늘어나서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사회적 일자리들도 계속 생겨날 거다.”
-동아시아 대도시들과 비교할 때 서울의 차별화 포인트는.
“서울의 장점은 세 가지다. 자연, 역사, 사람이다. 자연에 대해서 서울은 랜드마크가 따로 필요 없다. 북한산 등 많은 산이 있고 한강 같은 큰 강도 있다. 세계 웬만한 도시들을 가봤는데 이런 아름다운 자연은 없다. 그걸 잘 살리면 외국 사람들이 다 놀란다. 역사도 궁궐을 가봐야 한국의 역사가 살아있는 줄 아는데 그런 걸 다 훼손시키지 않았나. 이번에 한양도성을 복원하려고 한다. 한양도성 박물관, 연구소, 사업단을 만들기로 했다. 돈도 80억원밖에 안 들어간다. 이런 사업은 8조원 정도의 부가가치를 금방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과 청년 창업, 디자인 등을 잘 결합하면 서울이 도쿄·싱가포르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본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대선 출마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도울 건지 생각해 봤나.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건 없다. 만약 출마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울 거다. 돕는 방식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는 것 같다. 내가 자유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서울시장으로서 일을 잘한다고 소문나면 그게 최고로 안 교수에게 도움 주는 것 아니겠나. 취임 후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봤다. 만나본 지가 3~4개월 넘었다. 당시엔 본인이 결심 안 한 상태였고, 그런 거 갖고 상의할 분도 아니다.”
-안 교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더욱이 정말 큰 직책을 꿈꾼다는 것은 개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결단해야겠지만 역사와 시대와 하느님이 이끌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소명(召命)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오면 하는 것이고, 안 오면 못 하는 것이다. 안 교수가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의 인기가 있으면 출마선언을 할 만하지 않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본인이 과연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닐까.”
-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정운찬 두 분과 함께 박 시장도 다크호스로 손꼽혔다. 그때 박 시장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희망제작소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소명의식이 없어서였나.
“그때는 시민운동가로서 평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이 확고했고, 내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26 보궐선거 때까지 어마어마한 요청들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바꾸게 된 건 ‘계속 거절하는 것은 역사에 대해 죄를 짓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면 4~5년 뒤에,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새로운 소명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석해도 되나.
“그거야 그때 가봐야 아는 거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 다음 일이 저절로 마련된다. 그걸 게을리하면서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4·11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때문에 논란이 거세다. 진보가 가야 할 길, 지켜야 할 원칙은 뭔가.
“보수든 진보든 상식·합리·기본·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전반적으로 위협받고, 새로운 흐름이 필요한 이유는 그런 기본이나 원칙·철학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아서다. 통진당에서 민주주의 기본 룰인 투표에서의 부정이 있었던 것은 용납하기 힘든 거라고 본다. 또 국회의원 특권이 200가지가 된다고 어느 신문이 썼던데 중요한 일을 하는 분들이니 그런 특권을 드리는 건 좋은데 그렇게 하면 그분들이 시민들의 삶을 잘 모를 거 같다. 생활정치로 되돌아오는 게 필요하다. 독일 연방의원 중엔 자전거 타고 다니는 이도 많다.”
-서울시장으로서 지키려는 인사 원칙은.
“공정인사·소통인사·책임인사·감동인사·공감인사·성장인사의 6대 원칙을 만들었다. 공정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울시 공무원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산하기관들을 보면 (전임 시장 때 임명된 사람들이) 아직도 안 물러나고 자리를 차지한 분들이 많다. 숫자는 안 헤아려 보았는데 산하기관 이사 가운데 아직도 다수인 곳이 있어서 힘들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임기를 지켜주는 것도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그렇게 (쫓아내지는) 않겠다. 가장 실력 있는 사람, 그 분야에 최고로 잘하는 사람 모셔놓으면 내가 그 분야를 걱정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평소 생각하는 롤모델은 누군가.
“멀리 보면 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경우는 개혁주의자면서 실용주의자다. 잡지 ‘샘이 깊은 물’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들었던 한창기 사장도 롤모델이다. 그분은 잡지를 만들다 ‘점 하나 잘못 찍어도 총살한다’는 분이다. 고문변호사를 3년간 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다. 또 판단력과 통찰력 이런 것은 고 조영래 변호사한테 참 많이 배웠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버스를 기다리기만 하다 영원히 버스가 안 오면 목적지에 도착 못한다. 지금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점진적이지만 단호한 통일정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참여연대 할 때 통일부 장관에 우파 인사인 강인덕씨를 임명했는데 나중에야 잘한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기 뒤 시민들이 ‘박원순 시장은 OOOO이었다’라고 기억해줬으면 하는 말은.
“‘동행자’ 내지는 ‘위로해 주는 사람’ ‘우리와 함께 간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다. 일본 부부들이 서로를 ‘쓰레아이(連れ合い·동행자)’라고 부른다. 동행, 동반이라는 말이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이양수 기자 yaslee@joongang.co.kr
정리=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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