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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체육의 병폐? 이 것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군사문화'의 병폐다!

by skyrider 2012. 8. 21.

펜싱 칼 한번 잡아본 적 있나?”

미디어오늘 | 입력 2012.08.16 10:45

[미디어현장] 윤범기 MBN 기자 "엘리트 체육은 사기다"

[미디어오늘윤범기 MBN 기자] 올림픽이 끝났다. 성적도 좋았다. 금메달 13개, 세계 5위. 하지만 기자로서 또 시청자로서 올림픽을 지켜보는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다.

너무나 길었던 신아람의 '1초'와 또 다른 미녀검객 김지연을 낳은 펜싱. 이번 올림픽을 통해 또 다른 금메달 효자종목으로 떠올랐다. 다들 어리둥절했다. 우리가 펜싱을 이렇게 잘 했어?

외신에서는 양궁과 사격에 이어 펜싱까지 금메달을 휩쓸자 "한국은 분단국가라 무기류를 잘 다룬다"는 웃지 못 할 분석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펜싱 칼 한번 잡아 본적 있나? 양궁 활은 얼마나 무거운지 들어는 봤나? 국민은 아무도 안 해봤는데 선수들만 잘 하는 운동을 우리는 엘리트 체육이라고 부른다.

엘리트 체육의 병폐를 지적하는 기사는 한국 언론의 단골 메뉴다. 하지만 이렇게 막상 엘리트체육이 빛을 보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시즌이 되면 쑥 들어간다. 다들 그들이 받을 연금이 얼마인지, 병역 혜택은 어떻게 될 지에만 관심이 쏟아진다. 하지만 체육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가장 높은 지금이야말로 엘리트체육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국 여자 펜싱 대표팀의 신아람(계룡시청) 선수의 '멈춰버린 1초'가 로이터통신의 2012 런던올림픽 명장면 20선에 선정됐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온라인 매체 블리처리포트도 '2012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할 말한 30대 장면'에서 22번째로 신아람 오심 사건을 언급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새벽(한국시간)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에페 개인전이 열린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 피스트에서 신아람인 종료 1초 전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에게 5-6 아쉬운 패배를 당한 뒤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 ©연합뉴스

사건팀 시절 친한 후배의 제보를 받고 '체육보조강사' 제도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후배는 한체대를 나온 역도 꿈나무였다. 어쩌면 '남자 장미란'을 목표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체육 교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수도권의 한해 체육 교사 선발 TO는 0~1명. 결국 하게 된 것이 초등학교의 '체육보조강사'였다.

초등학교 교사의 여초현상이 심해지면서 체육수업의 위기가 찾아왔다. 한 선생님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초등학교의 특성상 여자 선생님들이 10분이라는 쉬는 시간동안 옷도 갈아입고, 운동 기구 준비도 하는 등 체육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문화체육부와 교육부가 적당히 타협해서 만든 제도가 '체육보조강사'다.

하지만 체육보조강사가 정식으로 '선생님'이 되는 것은 교육부가 결사 막았다. 혹시라도 교대를 나온 교사들 몫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육보조강사들은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월급으로 선생님도 정규직도 아닌 어정쩡한 직원이 됐다. 초등학생들은 그 친구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체육보조강사로는 결혼도 미래도 기약할 없게 된 그는 방과 후 헬스트레이너 등을 전전하다 결국 유명 기숙학원의 훈육담당 선생님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스포츠학생들의 학습권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었다. 인권위에 취직한 대학 선배가 1년간 스포츠학생 선수들의 인권 문제를 꾸준히 추적 조사해서 자료를 낸 것이었다.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전 언론이 크게 그 기사를 받았다. 이제는 공부 안하고 교실 뒤에서 잠만 자던 스포츠 학생들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직 그런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는 것 같다.

남들처럼 공부해야 할 때 공부를 안하다보니 외국 선수들처럼 스포츠 외교관이나 세계적인 한국인 심판이 되기도 어렵다. 문대성 의원의 논문표절 사건에 대해 일부 체육인들이 억울해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누가 그들에게 제대로 책 읽고 논문 쓰는 법을 가르쳐주기나 했었나?

더구나 문제는 운동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금메달을 따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생활 체육이 부재하다보니 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는 종목도 몇 개 안된다. 나머지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영업이나 사교육 시장을 전전하다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윤범기 MBN 기자

엘리트 체육의 병폐는 국민들의 체력 저하로도 나타난다. 서른 넘어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네들의 엄청난 체력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식축구, 야구, 치어리더로 단련된 체력은 서른 넘어서 빛을 본단다. 며칠 밤을 세면서 박사논문을 쓰다가도 수영장가서 물질 한번 하면 다시 도서관에서 피자를 씹으며 책을 본다고 한다. 우리는 그 나이에 하룻밤만 세면 며칠을 골골댄다.

국가인권위에서 일했던 그 선배는 엘리트체육은 사기라고 했다. 학창시절 체육선생들은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먼저 운동을 권한다고 한다. 사교육 없이 대학 갈 수 없는 나라에서 운동으로라도 대학 갈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이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기분 좋게 끝난 올림픽에 초를 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이 바로 엘리트체육의 병폐를 꼬집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다. 그래야 참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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