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교수 "내 양심이 말한다… 독도는 한국땅"
나이토 세이추 "돗토리번 문서 본 이상 양심 속일 수 없었다"
"일본정부 주장 정면 반박했다는 점에서 학자로서 보람 느껴"
"한국, 日학자들과 만나 토론해야… 토론한다고 안뺏겨" 조언
"일본정부 주장 정면 반박했다는 점에서 학자로서 보람 느껴"
"한국, 日학자들과 만나 토론해야… 토론한다고 안뺏겨" 조언
- (연합뉴스)
- 입력시간 : 2012.09.13 09:05:54
- 수정시간 : 2012.09.13 14:27:11
- 일본 최고 독도 전문가 나이토 세이추 교수. /연합뉴스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주장은 정말 이상합니다. 요즘 일본 학계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83) 일본 시마네(島根)현립대학 명예교수는 12일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유가와라(湯河原)로 찾아간 한국 기자를 만나자마자 제 나라 총리의 독도 관련 발언부터 비판했다.
2년 전 병을 앓고 나서 거동이 불편해져 외부 활동을 못한다는 일본 내 최고 독도 전문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학자로서의 자부심은 강하게 느껴졌다.
"1990년대 중반에 시마네대를 정년퇴직하고 돗토리(鳥取)단기대로 옮겼을 때 돗토리에 다케시마와 관련된 여러 자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만 해도 다들 도쿄 외교 자료관을 이용할 때인데 내가 처음으로 돗토리현의 자료를 세상에 전면적으로 끌어냈죠."
이 자료가 바로 돗토리 번(藩)이 1695년에 도쿠가와 막부의 질의에 대해 '울릉도와 독도는 돗토리 땅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문서이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를 근거로 1696년에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지금 와서 "당시 가지 말라고 한 건 울릉도뿐이고 독도는 제외됐다"며 "17세기에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주장하지만 나이토 교수가 세상에 끌어낸 돗토리 번의 문서를 보면 당시 독도도 일본 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는 게 분명해진다.
나이토 교수는 그 후 약 20년을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다'라고 외쳐왔다.
2008년에는 일본 외무성이 펴낸 팸플릿 '다케시마 10문 10답'을 일일이 비판하기 위해 '다케시마=독도 문제 입문'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 정부가 못하는 일을 일본 학자가 했다'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 '일본 고유영토론'은 일본 학계에서 발을 못 붙이게 됐다.
'일본인이면서 왜 그런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돗토리번의 문서를 본 이상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죠.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교토(京都)대 출신인 그는 학자로서 양심을 지켜온데 대한 긍지도 대단하다.
"가장 큰 보람은 정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는 점이죠. 학자로서 그만큼 보람있는 일은 없죠"
하지만 나이토 교수의 노력으로 곧바로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고유영토론 비판'은 '일본 영토도 아니지만 한국 영토도 아닌 주인없는 땅'이라는 논리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 학계의 대세가 바로 이런 양비론이다. 나이토 교수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
"한국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얘기하려면 일본이 1905년에 독도를 편입하기 전인 1900년에 대한제국이 내린 칙령 41호 속의 석도(石島)가 독도라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당분간 논쟁이 계속될 겁니다"
무조건 흥분할 게 아니라 논쟁의 쟁점을 파악하고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자료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일본 학자들과의 토론까지 거부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상대가 뭘 주장하고 뭘 궁금해하는지 알아야 설득을 하든 싸움을 하든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끼리 서로 자료를 내놓고 토론할 필요가 있죠. 토론한다고 해서 한국이 독도를 반쯤 내놓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요."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더 진지하게 독도에 대해 고민해온 일본인 노교수의 조언이었다.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83) 일본 시마네(島根)현립대학 명예교수는 12일 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유가와라(湯河原)로 찾아간 한국 기자를 만나자마자 제 나라 총리의 독도 관련 발언부터 비판했다.
2년 전 병을 앓고 나서 거동이 불편해져 외부 활동을 못한다는 일본 내 최고 독도 전문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학자로서의 자부심은 강하게 느껴졌다.
"1990년대 중반에 시마네대를 정년퇴직하고 돗토리(鳥取)단기대로 옮겼을 때 돗토리에 다케시마와 관련된 여러 자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만 해도 다들 도쿄 외교 자료관을 이용할 때인데 내가 처음으로 돗토리현의 자료를 세상에 전면적으로 끌어냈죠."
이 자료가 바로 돗토리 번(藩)이 1695년에 도쿠가와 막부의 질의에 대해 '울릉도와 독도는 돗토리 땅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문서이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를 근거로 1696년에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지금 와서 "당시 가지 말라고 한 건 울릉도뿐이고 독도는 제외됐다"며 "17세기에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주장하지만 나이토 교수가 세상에 끌어낸 돗토리 번의 문서를 보면 당시 독도도 일본 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는 게 분명해진다.
나이토 교수는 그 후 약 20년을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다'라고 외쳐왔다.
2008년에는 일본 외무성이 펴낸 팸플릿 '다케시마 10문 10답'을 일일이 비판하기 위해 '다케시마=독도 문제 입문'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 정부가 못하는 일을 일본 학자가 했다'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 '일본 고유영토론'은 일본 학계에서 발을 못 붙이게 됐다.
'일본인이면서 왜 그런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돗토리번의 문서를 본 이상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죠.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교토(京都)대 출신인 그는 학자로서 양심을 지켜온데 대한 긍지도 대단하다.
"가장 큰 보람은 정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는 점이죠. 학자로서 그만큼 보람있는 일은 없죠"
하지만 나이토 교수의 노력으로 곧바로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고유영토론 비판'은 '일본 영토도 아니지만 한국 영토도 아닌 주인없는 땅'이라는 논리로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 학계의 대세가 바로 이런 양비론이다. 나이토 교수도 이런 점을 지적한다.
"한국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얘기하려면 일본이 1905년에 독도를 편입하기 전인 1900년에 대한제국이 내린 칙령 41호 속의 석도(石島)가 독도라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당분간 논쟁이 계속될 겁니다"
무조건 흥분할 게 아니라 논쟁의 쟁점을 파악하고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자료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일본 학자들과의 토론까지 거부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상대가 뭘 주장하고 뭘 궁금해하는지 알아야 설득을 하든 싸움을 하든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끼리 서로 자료를 내놓고 토론할 필요가 있죠. 토론한다고 해서 한국이 독도를 반쯤 내놓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요."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더 진지하게 독도에 대해 고민해온 일본인 노교수의 조언이었다.